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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김종인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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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말은 힘이다. 언어는 세상을 규정한다. 한국 사회는 쪼개졌다. 분열은 거칠고 깊다. 계층 갈등은 위험수위다. 그 속에서 ‘경제민주화’는 활개 친다. 그 어휘의 정치적 지위는 압도적이다.

 경제민주화는 시대 흐름과 얽혀 있다. 흙수저, 헬조선, 재벌 갑질-. 그 조어들은 경제·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반영한다. 그것에 좌절·분노하는 사람들은 언어에 기댄다. 경제민주화는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온다.

 경제민주화는 헌법(119조 2항)에 들어 있다. 그 구절의 삽입은 김종인 더민주 전 대표의 작품이다. 그는 말의 묘미를 오래전에 간파했다. 그는 최고령 국회의원(비례대표만 5선)이다. 시작은 11대 국회(81년)다. 장수 비결은 언어의 위력에서 나온다. 경제민주화는 그의 독보적인 자산이다. 거기에 경륜과 투지가 얹혀 있다. 이제 그는 제3지대에서 정치판을 흔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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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는 명분 우위다. 실질은 밀린다. 유교적 전통은 단단하다. 평등, 정의, 민주주의, 통합, 사회적 합의-. 신념의 단어들이다. 그 이미지는 격정적이다. 경제민주화는 그 반열에 진입했다. 그 말들은 상투적이다. 때로는 피로감을 준다. 하지만 패배하지 않는 어휘다. 어느 순간 대중은 그 말들에 환호한다. 그런 현상은 정권의 오만과 무능력 때 전개된다. 대중은 그런 수사(修辭)에 자신의 열망을 투입한다.

 경제민주화는 진보적 어젠다(의제)다. 새누리당은 5년 전 그 용어를 선점했다. 그 말은 대선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집권 후에 달라졌다. 박근혜 정부는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새누리당은 정체성 회복에 나섰다. 경제민주화는 근신처분됐다.

 재반전이 일어났다. 경제가 어려워서다. 경제정책 성과는 미흡하다. 정부 경제팀은 허약하다. 시장경제론의 매력과 미덕은 제대로 생산되지 못했다. 그 흐름에서 경제민주화는 재등장했다. 기묘한 역설이다. 올해 초 김종인은 더민주에 들어갔다. 말의 위력은 녹슬지 않았다. 지난 4·13 총선 때 그 기세가 확인됐다.

 경제민주화는 모순이다. 경제는 차등(差等)이다. 민주화는 균등이다. 대칭적 조합은 말의 파괴력을 높인다. 김종인은 “경제민주화는 재벌 해체가 아니다. 재벌의 탐욕 통제”라고 한다. 경제민주화의 지평은 넓다. 그만큼 모호하다. 재벌 해산, 노조의 경영 참여, 반(反)시장, 퍼주기 복지까지 걸쳐 있다. 그것은 좌파식 인기영합주의 목록이다. 그런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한 비판은 실감 난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위세는 꺾이지 않는다. 그 말은 이미지 전투, 용어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리더십은 언어로 작동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말의 힘을 터득했다. 박정희의 ‘싸우면서 일하자’는 산업화의 언어다. 70년대 북한의 군사적 도발 속에 이룬 성취다. 김영삼의 ‘문민정부’ 수립은 민주화의 영감을 제공했다. 김대중은 말에 신바람을 넣었다. “역사의 주인, 국민이 나라를 구한다-.” 그 구절은 금 모으기의 동력이다. IMF 환란을 견뎌냈다.

 박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 초점은 자긍심 회복이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비하의 낱말은 헬조선, 흙수저다. 경축사는 논리적으로 맞다. 하지만 설득력은 제한적이다. 조어(造語)의 해체는 논리만으론 힘들다. 새롭고 강렬한 조어로 압박해야 한다. 뚜렷한 일자리 정책이 덧붙여져야 한다.

 내년 대선의 핵심 이슈는 경제 살리기다. 양극화 해소, 불평등 타파는 시대적 염원이다. 그 속에서 경제민주화의 영향력은 커진다. 새누리당은 그 말의 상징성을 탈환하려 한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경제민주화의 프레임을 되찾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8월 23일 새누리당 세미나). 여당의 대선 잠룡들은 어휘 개발에 분주하다. 격차 해소(김무성), 공존과 상생(오세훈), 정의로운 경제(유승민), 공유적 시장경제(남경필), 사회적 대타협(원희룡)-. 하지만 이들 구호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그 말들은 진보 쪽으로 쏠려 있다. 새누리당의 정체성은 시장경제다. 거기서 멀어지면 짝퉁 신세가 된다. 경제민주화의 유사 용어로 전락한다.

 경제민주화는 과잉이다. 국회에 관련 법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유혹이다. 말의 의미는 확장하면서 탈선한다. 그 상황은 좌파 포퓰리즘과의 밀착이다. 그럴 경우 불안과 피로감이 퍼진다. 그때쯤 다수 국민은 외면할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장래는 밝으면서 어둡다.

 정치 언어는 실질을 확보해야 한다. 행동 프로그램은 선명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력이 오래간다. 그렇지 않으면 말은 허망해진다. 대선은 용어 전쟁이다. 리더십은 언어로 승부한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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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