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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인플레이] 임창용 사건, 야구장의 '합의된 위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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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마무리 투수 임창용은 8월 27일 광주 홈 경기 9회초 2사에서 두산 2루 주자 오재원의 머리 쪽으로 강한 견제구를 던졌다. 이 플레이는 두산의 항의와 임창용과 오재원에 대한 주심의 경고, 그리고 이틀 뒤 KBO의 임창용 3경기 출장정지 징계로 이어졌다. 이 사건에 대해 생각을 정리했다.


1. 임창용은 '미친짓'을 했다. 고의든, 실수든, 사고든 주자 머리로 강속구 견제구를 던진 건 여햐튼 '미친짓'이 맞다고 본다.


2. 하지만 '살인미수'니 '선수생명이 걸린 문제' 같은 수사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시속 140킬로미터짜리 야구공을 맞으면 물론 죽을 수도 있고, 크게 다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야구라는 경기의 특성에서 이를 '위험'의 문제로만 보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3. 야구란 본디 시속 140㎞ 넘는 공을 타석당 너댓개씩 봐야 하는 경기다.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 위험은 야구란 경기에 참가할 때 이미 합의된 범위라는 것이다. 본질은 위험하다 위험하지 않다가 아니라, '합의된 방식'의 위험이냐 아니면 '합의 밖의 위험'이냐다. 즉 위험의 정도 문제가 아니라 규칙과 매너의 문제다.


4. 시속 140㎞짜리 야구공보다 100배쯤 더 위험한 물건은 우리 일상생활 안에 있다. 시속 60㎞ 이상으로 달리는 800㎏짜리 쇠덩어리들이다. 시속 140㎞ 속도의 야구공과 900g짜리 몽둥이라는 물리적 도구의 확률적 위험을 말한다면, 자동차 운전대를 잡는 모두가 미필적 고의 살인미수범이다.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되는 논리다.


5. 타자가 타석에서 공에 맞을 수도 있고, 2루로 슬라이딩하는 주자가 유격수와 부딪혀 다칠 수도 있다. 야구에서의 '합의된 위험'이며, '정상적인 플레이'로 불리기도 한다. 복싱 링 안에서의 구타 역시 '합의된 위험'이다.


6. 야구에서 '합의된 위험'을 제어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명문화된 규칙과 이에 근거한 심판의 조치. 다른 하나는 이른바 '불문율'에 따른 판단과 그에 따른 보복.


7. 승리를 위해 규칙 범위 내 플레이로 초래된 위험은 서로 양해된다. 하지만 승부에 이로운 플레이였다 해도, 그로부터 초래되는 위험이 정도를 넘으면 외부의 규칙이 제어한다. 타자 머리로 날아가는 투구의 위험은 타자 1명 출루라는 반대급부로는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즉시 퇴장 조치가 내려진다. 홈 충돌방지 규칙 역시 마찬가지다.


8. 그런데, 명문화된 규칙은 흔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만 주로 규정한다. 야구규칙에는 '사각'이 있다. 자신의 팀에게 해로운 플레이를 징계하고 제한하는 규정은 거의 없다. 수비수가 주자 등짝에 대고 강속구를 날린다면, 명백하게 합의된 적 없는 위험이다.  하지만 이런 짓을 하는 경우는 없다. 승부에 불리하니까. 따라서 제재하는 규정도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니까. 그런데, 임창용이 그걸 해버렸다.


9. 이제 규칙의 '사각'이 문제가 된다. 심판이 벌을 주고 싶어도 벌을 줄 규정이 없다. 물론 벌을 주는 기준을 아주 폭넓게 잡아두면 상관없겠지만, 합당하지 않다.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에 의존하는 규정은 더이상 규정이 아니게 된다.  누군가가 밉디고 규칙에 없는 벌을 주자하는 건 합당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규칙 위에 군림할 권한을 주자는 말이 된다.  야구장 안에서든 밖에서든 절대적으로 공평하고 전지한 판관은 없다. 그런 판관을 기대해서 권한을 주면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릴 뿐이다. 인간이 무리짓고 살며 깨달은 아주 중요한 지혜다.


10. 또 한가지 논점. '의도'를 따지는 것은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의도를 따지기 시작하면 많은 경우, 약자가 다치는 법이다. 객관적 근거를 찾기 어려우니 힘의 논리, 다수의 논리가 말을 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그 의도를 알까. 의도가 있을 것이라 추측하며 벌주자는 건 넌센스다. 동시에 악의가 없었을테니 용서하자는 것도 넌센스다. 무슨 수로 의도를 밝힐 것인가. 신은 행위보다 마음을 볼지 몰라도, 우리는 사람이다. 우리는 ①드러난 결과로 ②정해진 규칙에 따라 ③벌주든 넘어가든 해야 한다. 그게 인간이 사는 방법이다.


11. 임창용은 주자 머리를 향해 공을 던졌다. 위험했고, 합의되지 않은 위험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위험에 대해서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 있을 수가 없다. 자신과 팀에 손해가 될 플레이였기 때문에 이런 규칙을 만들어두기도 어렵다. 이런 짓을 아무도 안하는 게 정상이니까. 그렇다면 '야구'라는 제도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12. 임창용을 벌 줄 기회 한 번을 오재원이 놓쳐버렸다. 3루로 가서 득점 가능성을 높여 '물을 먹일’ 권리를 얻었지만 사용하지 못했다. 칭찬받기 어렵다.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자는 게 아니다. 야구라는 시스템에서는 상대를 벌주는 방법이란 게 본디 '경기 안에서의 이익을 얻어가라'였다는 게 중요하다. 오재원의 평소 행동을 빌미로 그를 공격한다면 추한 일이다. 다만, 임창용이 던진 공이 외야로 빠진 타이밍에 3루로 달리지 않은 것에 한해서는 오재원이 잘못했다. 임창용을 벌줄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기 때문이다.


13. ▷자신의 팀에 해로운 이상한 플레이로 ▷상대팀을 위협했을 때 ▷여기에서 주고받는 게임상의 이득과 손실이 지나치게 기울었다. 규칙이 개입해야 할 상황이지만 이에 대한 규칙은 불분명했다.


14. 이럴 경우 야구에서는 ‘보복’이라는 불문율이 작동하기도 한다. 법치사회에서 사적보복은 당연히 금기다. 득보다 실이 많다는 사회적 합의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장 안에서의 ‘합의된 수준에서 주고받는’ 보복은 일리가 있다. 도를 넘는 위험은 명문 규칙으로 통제하되, 그렇지 않은 위험은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이 자치적 해결로 제어하기도 한다. 선수들은 동업자 관계다. 같은 목표를 가진 것이 아닐지라도 비슷한 위험을 나눠야 한다. 단, 보복이 필요할 때는 신인 투수에게 맡기지 말고 고참급이 나서는 게 맞는 것 같다.  


15. 다음날 두 감독이 만나 웃었다. 그래서 ‘보복 시스템’은 봉인됐다. 하지만 프로야구에는 심판 말고도 어떤 종류의 플레이에 대해 판정을 하는 데가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다. 상벌위원회 징계는 불문법적인 성격을 띤다. 선례에 구속된다. 임창용의 '주자타겟 빈볼'은 선례가 없는 일이다. 상벌위원회 징계로 '선례'가 만들어졌다. 이제 투수는 임창용처럼 2루 주자의 머리로 강속구를 던져서는 안 된다.

 
신동윤(한국야구학회 데이터분과장)
데이터는 신비로운 마법도 절대적 진리도 아니다. 대신 "당신 야구 얼마나 해봤는데?" 라고 묻지도 않는다. 그것은 편견 없는 소통의 언어이며 협력의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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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