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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조중훈, 박정희 권유로 설립…해운업 장기침체 부채비율 1076%

한진해운의 역사는 우리나라 해운업의 역사다.

국내 1위·세계 7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은 1977년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 선사로 설립했다. 당시 항공사업을 궤도에 올려놓은 조 창업주는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로 해운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수송보국(輸送報國)의 창업정신으로 육·해·공 종합물류 기업을 꿈꿨다.

한진해운은 78년 중동 항로, 79년 북미서안 항로 를 개설하며 글로벌 해운사로 성장했다. 88년엔 대한선주를 합병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49년 정부가 만든 대한해운공사가 대한선주의 전신이어서 한진해운은 국적 해운사란 명예도 얻었다.

이후 한진해운은 승승장구했다. 92년 국적선사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고 95년 거양해운, 97년 독일 세나토라인 등을 인수하며 유럽·중국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96년엔 국내 최초로 53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대)급 컨테이너선을 취항했다. 2003년엔 중국 코스코, 대만 양밍, 일본 K-라인 등과 동맹을 결성해 글로벌 컨테이너선사로 입지를 굳혔다.

2002년 조중훈 창업주가 사망한 뒤 그룹이 계열 분리하면서 한진해운은 3남 조수호 회장이 맡게 됐다. 하지만 3년 뒤 조 회장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부인 최은영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섰지만 세계 해운업이 장기침체에 들어가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동성 위기가 심해졌다.

2013년 2423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는 등 3년 연속 적자로 난파 위기에 몰리자 2014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조 회장은 2년간 1조2000억원을 투입했지만 해운업 불황 장기화와 호황기 때 빌린 높은 용선료, 눈덩이처럼 불어난 선박금융 비용 등으로 다시 좌초 위기에 몰렸다. 지난해 말 847%(연결 기준)였던 부채비율은 올해 6월 1076%로 치솟았다. 지난 4월 조 회장은 경영권을 포기하고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해운업계에선 한진해운의 몰락 원인으로 유동화할 자산이 부족했던 점을 꼽는다. 현대증권 매각으로 신규 자금 지원 없이 유동성을 확보했던 현대상선과 달리 2009년 이후 한진해운은 ‘돈 될 만한 자산’을 모두 매각해 자체 유동성 확보가 어려웠다. 부채 가운데 선박금융 비중이 과도하게 높았고, 비싼 용선료 부담이 가속화한 것도 침몰의 원인이 됐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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