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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차이잉원 집권 100일…대만의 ‘탈중국’ 행보에 초점 맞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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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림 호서대 교수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지난 27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그간 어떤 발걸음을 내디뎠나. 요약하면 조용하지만 꾸준한 ‘탈중국(脫中國)’ 행보다. 소리 높여 ‘대만 독립’을 외치는 게 아니라 중국에 대한 의존도 줄이기를 통해 실질적으로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모양새다. 과도한 중국 기대기는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중국 경제에 많이 기울어져 있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차이의 탈중국 행보는 어떻게 진행돼 왔나.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 출신인 차이잉원의 가는 길을 알기 위해선 우선 그의 말부터 들어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게 차이잉원의 5월 20일 총통 취임사였다. 취임사는 최고 통수권자의 정치적 지향을 파악할 수 있는 열쇠다. 차이는 취임사에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는 ‘92공식(九二共識·중국과 대만이 1992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되 하나의 중국이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각자 해석에 맡기기로 합의한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관계의 격변을 예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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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대만 총통

반면 차이는 대만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대만’ ‘중화민국’ 등의 표현과 함께 중국에 대해 대만의 체제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는 ‘민주’ ‘인권’ 등의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다. 또 ‘중국 경사’에서 탈피하겠다는 의미에서 ‘남향정책’ 등의 키워드를 썼다. 대만의 정체성을 유난히 강조한 것이다. 이에 차이의 취임사가 사실상 ‘대만 독립선언문’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인가. 차이가 집권 후 100일간 역점을 둬 실시한 네 가지 정책 역시 대만의 정체성 확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먼저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경제구조부터 뜯어고치고 있다.

전임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의 경제협력으로 대만의 성장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그 결과 지난해 대만 국내총생산의 16%가 중국에 의존하고, 대만의 대외투자 중 중국 비중은 절반 가까운 49.2%에 달했다. 그러나 역효과만 났다. 대만인 대다수가 중국으로의 밀착이 가져온 낙수효과를 맛볼 수 없었다. 혜택이 대만 대기업에 쏠린 것이다. 오히려 대만 사회의 양극화만 심화됐다. 또 중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대만의 산업 공동화와 청년실업을 촉진했고 대륙으로 달려간 대만 기업은 중국 경기가 침체되면서 이젠 숨조차 고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반면 중국은 자신의 방대한 시장을 무기로 대만을 경제뿐 아니라 정치·외교 모든 영역에서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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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차이잉원의 해법은 신남향정책(新南向政策)이다. 이는 90년대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이 중국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동남아에 대한 대만 기업의 투자와 진출을 장려했던 남향정책의 새 버전이다. 아세안 10개국과 남아시아 6개국을 상대로 수출시장 다변화를 꾀한다는 차이의 신남향정책은 탈중국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단순히 투자 진출만 늘리는 게 아니라 이들 국가들과의 심도 있는 협력관계 구축을 꾀한다는 점이 과거의 남향정책과 다르다. 특히 동남아 진출에 적극적인 일본과, 동남아를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의 한 축으로 생각하는 중국 간의 각축전 속에 대만이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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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중국화의 두 번째 정책은 양안관계에서의 ‘현상 유지’ 노선이다. 차이가 ‘92공식’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이후 현재 중국과 대만의 소통 채널은 거의 중단된 상태다. 중국의 불만은 대만을 찾는 중국 유커(遊客·관광객) 축소로 분출하고 있다. 지난 5월 대만 방문 유커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나 줄었다. 특히 중국 당국의 입김이 미치는 단체 유커는 31%나 줄었다. 이런 추세라면 대만의 올해 관광객은 목표치인 1050만 명의 절반인 50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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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관광업계는 울상이지만 차이는 꿈쩍 않는다. 유커가 과거 대만의 무료 관광지와 중국인이 경영하는 상점과 숙박업소를 주로 찾았기에 실제로 대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오히려 유커가 마치 대만을 중국 것으로 여기며 제멋대로 행동하던 모습을 보지 않게 돼 기쁘다는 대만 사회 일각의 이야기에 힘을 얻고 있다. 최근 대만 여론조사에선 ‘하루빨리 통일해야 한다’는 응답이 1.9%였던 데 반해 ‘현상을 유지하거나 현상 유지 후 상황을 봐 독립이나 통일로 나가자’는 대답이 88.9%에 달했다. ‘현상 유지’ 세력이 강하다. 차이로서는 양안관계 진전을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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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성균중국연구소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체제의 통일’과 ‘이념의 통일’ 그리고 ‘사회·문화 및 정서적 통일’이 필요하다. 독립을 추구할 경우엔 이와 같은 조건을 반대로 적용하면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사회·문화 및 정서적 통일’인데 대만인들은 중국과의 통일보다는 현상 유지나 독립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대만은 ‘지금같이 살아도 불편함이 없으니 지금과 같아라’는 식이다. 과거 국민당 시절엔 대만의 문제를 중국에서 찾았고 대만의 미래를 중국을 통해 봤지만 차이잉원 정부의 대만은 이제 그게 싫다는 것이다. 대만은 대만이고 중국은 중국일 뿐이란 이야기다.

중국과 거리를 두려는 차이잉원의 세 번째 정책은 국제 무대에서 대만의 공간 확보다. 이와 관련해 눈에 띄는 건 새로운 국호 채택 여부다. 지난 5월 27일 차이잉원 정부는 대만 입법원(국회) 보고에서 ‘중화민국대만’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마잉주 전 총통이 고수해 온 ‘중화민국 정부’라는 표현에서 대만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어 지난 6월 말 파나마 운하 개통식에 참가했던 차이는 스스로를 ‘대만 총통(President of Taiwan)’이라고 서명해 ‘대만’을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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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성균중국연구소

차이잉원은 또 지난 6월 초 일본 주재 타이베이(臺北)경제문화대표처 대표로 선임된 셰창팅(謝長廷) 전 행정원장을 ‘대사’라 호칭했다. 대만은 그동안 중국과의 관계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한 상대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대사’란 호칭을 자제해 왔으나 차이는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아울러 마잉주 전 총통의 친중 정책에서 탈피해 친일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중국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서 유연한 모습을 보이고 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어머니와 함께 일본 NHK 교향악단의 대만 공연을 관람하는 등 일본에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탈중국을 향한 차이의 네 번째 정책은 대륙의 공산당과 함께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는 대만의 국민당에 대한 압박으로도 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국민당의 재정적 보루인 국민당 자산 국고 환수 작업이다. 49년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패퇴한 뒤 대만으로 온 국민당은 당시 중앙은행이 보유하던 10억 달러 상당의 황금 등을 가져왔으며 일제 패망 이후 대만의 일본인 부동산 등을 몰수해 이를 토대로 사업을 펼쳐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특히 국민당은 철권통치 시절 국고와 구분 없이 대만 전역의 많은 자산을 당고(黨庫)에 넣었다. 국민당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정당이 된 배경이다. 이에 민진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대만 입법원은 지난달 26일 국민당이 전후 장기 집권하며 축적한 재산을 국고로 돌리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부당하게 취득한 자산이 정당 간 공정한 경쟁을 방해한다’는 이유에서다. 국민당으로선 당세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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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성균중국연구소

그러나 차이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국정 수행 지지도 조사에서 6월 30일 ‘잘하고 있다’가 54.6%였던 게 8월 14일엔 45.5%로 1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고, ‘잘못하고 있다’는 23.5%에서 39.8%로 15% 포인트 이상 올랐다. 고전하는 모습이다. 잇따른 악재가 꼬리를 물고 터진 까닭이다. 검소한 식단으로 일관한 마잉주와 달리 차이는 전속 요리사를 고용했는데 이게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또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미온적인 대응으로 ‘대만의 왜소화’를 낳았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렇다고 차이의 탈중국 행보가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니다. 중국에 진출한 대만 기업에 대해 대만으로 생산 공장을 복귀시키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을 꿋꿋하게 추진 중이다. 이는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불만을 품은 중국이 경제 보복 카드를 꺼내 드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중국에의 경사’는 자칫 ‘중국에의 종속’을 강요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가림=정치학 박사.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을 졸업했다.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충남경제비전위원회 위원, 대륙전략연구소 이사로 활동 중. 홍콩 주재 한국총영사관 선임연구원 및 호서대학교 중국산둥성웨이하이 창업보육센터 사장 등을 역임했다.

전가림 호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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