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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구의 NEAR 와치] 이제는 퇴행화된 국책금융기관을 재건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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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구
NEAR 재단 이사장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부실화와 산업은행의 동반 부실, 그리고 둘 사이의 영합관계에 대한 숨겨진 사실들이 검찰 수사로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다음달에는 이에 대한 국회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배태한 근원적 원인을 규명하지도, 그 처방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또 한번 미봉하려는 듯하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금세기 들어 우리의 생존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소홀했다는 생각이다. 바로 산업구조의 퇴행화 현상을 막지 못한 것이다. 특히 중국의 등장으로 산업구조의 전환 시기가 빨리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일시적 중국 특수에 탐닉했다. 그 사이 한국 주력산업들이 퇴로를 찾지 못하고 심각한 존립 위기에 빠져들었고 세계는 제4차 산업혁명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우리는 대안이 필요하고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시기에 미적거리다 결단의 순간을 자주 놓치며 실기해왔다.

최근의 대우조선 부실정리 과정을 지켜보더라도 구조조정한다면서 산업정책 당국은 국책금융기관 뒤에 숨어 보이지 않고 검찰의 칼날만 번뜩인다. 불행하게도 지난 10여 년간 정부는 우리 경제가 본격적인 전환기에 진입하는데도 산업 개편에 따른 혼란과 정치적 비용을 두려워하며 국책금융기관을 부실 산업의 연명 수단으로 이용하고 중국의 파상적인 도전을 국책금융기관이라는 방패로 대응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국책금융기관들은 구조적으로 퇴행화되고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들게 됐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제 우리는 산업의 국제 경쟁구도와 융·복합 시대의 흐름에 맞도록 산업 지도를 새로 그리고, 국책금융기관을 재건축하는 등 산업정책의 골격을 재구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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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과거 국가재정이 취약하고 금융시장이 미발달된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서 우리는 정부의 공공성과 보증력을 시장의 유연성·확장성과 융합해 잘 구축된 중간지대를 운영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산업은행·수출입은행·신용보증기금 등 국책금융기관의 탄생 배경이다.

그들은 자금이 부족한 양적 확대 경제에서 그 한계를 극복하며 쇄빙선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장화·개방화의 확대와 질적 성숙 경제에 이르러 그들의 독자 영역은 축소되고 민간과의 경합성이 커지면서 그 정체성과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중간지대의 순기능은 줄고 역기능은 늘었다. 그러나 변화가 필요했던 그들은 현실에 안주했고 정책금융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그들이 안고 있는 부실기업, 좀비기업도 큰 규모로 늘어났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정치권, 관료권, 국책금융기관, 거대 주력 기업, 노동조합 등 5자 간의 공고한 영합관계, 공생관계 때문이었다. 이러한 공고한 공생관계를 바탕으로 첫째, 정책금융이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며 기득권화됐고 둘째, 전리품 부족에 허덕이던 집권 세력이 국책금융기관과 부실기업의 인사를 승리의 전리품으로 활용해왔고 셋째, 반복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책금융기관이 주력 부실기업의 폭탄 돌리기 수단으로 이용됐으며 넷째, 중국의 추격에 대응한 정책 대안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산업의 정체기가 오래 진행됐고, 산업정책의 실패비용을 포함한 모든 비용을 산업은행 등 중간지대에 집중시키면서 그들은 부실·좀비기업들의 파킹장, 하수종말처리장, 또는 상시 배드뱅크의 위치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이에 영합해 국책금융기관들 스스로도 정체성을 잃고 권력기관화되며 도덕적 해이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그저 ‘신이 내린 직장’의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가 현재 융·복합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게 됐다. 전리품으로 내려온 낙하산들은 시한부 과객이었고 임직원들은 강성 노조와 영합해 자기들 몫의 파이를 키워나가는 데 급급했다. 부실 규모는 쌓여갔고 조금 썩었던 사과는 반 이상 썩어 들어갔다.

이제 우리는 퇴행화돼 말기적 현상에 빠져 있는 국책금융기관들을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산업 환경과 수요에 맞추어 재건축해야 한다.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중 대나무 편을 보자.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윤선도 선생은 중간자인 국책금융기관들에 대나무처럼 곧아야 하고, 마음을 비워야 하고, 늘 변함없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재건축에 대해 여섯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5자 간의 영합 구조를 해체하고 법적·정치적으로 중립적 지배구조를 확립할 것. 둘째, 업무영역을 국제적으로 광역화하고 국내 직접 지원 대상을 엄선할 것. 셋째, 정책금융수단(financial arms)을 재정형에서 금융형으로 재건축할 것. 넷째, 난립된 기관들은 가능한 한 통폐합할 것. 다섯째, 자기 책임 원칙을 정립할 것. 여섯째, 산하 부실기업은 단기간 내에 정리할 것 등이다.

앞으로 여러 가지 대안을 놓고 폭넓은 여론 수렴을 거쳐 조속히 결론을 내야 할 것이다. 위의 재건축 방향에서 볼 때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개발금융, 수출입금융, 중소기업금융, 지역금융, 주택금융을 모두 통합해 운영해 온 독일부흥은행(KFW)·싱가포르개발은행(DBS)·일본정책금융공고(JFC)와 같은 통합형 중간지대 발전 사례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개혁과 재건축 작업이 일시적으로 고통스럽고 충격을 줄 수 있지만 앞으로 한국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이 고비를 슬기롭게 이겨내야 한다.

정덕구 NEAR 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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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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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