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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미의 취향저격 상하이] ⑤100년 묵은 상하이 서민의 집, 스쿠먼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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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먼은 상하이만의 독특한 주거 건축 양식이다.[사진 왕강펑]


상하이에 도착한 뒤, 한동안 런민공원(人民公園) 근처의 6인실 도미토리에 묵었다. 거기서 중국인 친구를 하나 사귀게 됐는데, 그녀는 나처럼 아침잠이 많았다. 느즈막히 눈을 뜨면 늘 건너편 침대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어느 날 그녀가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 단골 국숫집이 있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사실 동네가 썩 청결한 인상은 아니라 속으로 좀 꺼려졌지만, 붙임성 좋은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긴 싫었다. 국숫집은 숙소에서 다섯 발자국이면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점심에만 마당에서 국수를 파는 허름한 3층짜리 집이었다. 상하이의 독특한 주택 양식 ‘스쿠먼(石庫門)’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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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대문을 들어섰을 땐 한창 점심을 준비 중이어서 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우린 둘 다 가만히 있는 성격이 못됐다. 그녀는 이곳이 바로 상하이의 ‘스쿠먼’이라며 집을 구경하자고 했다. 그러더니 나를 마당 뒤쪽의 복도로 데려갔다. 이곳은 여러 세대가 다닥다닥 모여 사는 연립주택이었고, 본인이 사는 방을 빼고는 주방이나 화장실, 복도가 모두 공용 공간이었다. 그래서 외부인이 시치미 떼고 들어가면 의심의 시선은 보낼지언정 누구 하나 가로막는 사람은 없다. 그저 ‘저런 사람이 여기 살았던가?’ 할 것이다. 
카메라를 멘 나는 누가 봐도 여행자 행색이었다. 예의 바른 그녀는 마주치는 주민들에게 나를 한국에서 온 여행 기자라 소개하며 스쿠먼을 안내하고 싶다고 양해를 구했다. 마주치는 사람은 대부분 노인이었는데 흔쾌하게 길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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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먼은 상하이가 반식민 지배를 받던 조계 시대(1850~1940년대)에 지어졌다. 유럽식과 중국식이 결합된 이 건축 양식은 당시 사회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외관은 유럽식 연립 주택과 비슷하고, 내부 구조는 정원을 사이에 두고 삼면이 가로막힌 중국 삼합원(三合園) 형태다. 대문 위 상인방의 넝쿨 장식과 박공, 툭 튀어나온 베란다 역시 유럽 건축의 영향이다. 스쿠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돌(石)로 문틀과 기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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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쿠먼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딱 ‘고시원’이었다. 한 건물에 11세대나 살고 있다는 걸 수많은 가스 계량기를 보고 알 수 있었다. 건물 안 복도와 계단은 컴컴했고, 집 한 칸이 무척 작았다. 길을 잘못 들어 남의 집에 들어가는 바람에, 우린 신문 읽던 할아버지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상하이 남자들은 가정적이라 요리도 잘한다더니, 정말 할아버지가 공용 부엌에서 요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슬쩍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할아버지는 잽싸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녀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예수(爺叔)’라고 불러보랬다. 내가 어설프게 따라하자 할아버지가 허허허 웃으며 못이기는 척 포즈를 취해주셨다. ‘예수’는 아저씨를 친근하게 부르는 상하이 사투리다. 말하자면 제주도에 온 외국인이 지나가는 할아버지에게 ‘하르방’ 하고 부른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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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친구와 함께 국수를 먹으러 갔다가 남의 집구석 ‘스쿠먼’을 구경하게 됐다.


남의 집을 한 바퀴 구경하고 나자 국숫집은 어느새 문전성시였다. 그녀와 나는 국수 그릇을 앞에 두고서야 통성명을 했다. 그녀의 이름은 런샤오옌. ‘작은 대나무’라는 뜻이었다. 나중에 더 친해진 뒤 알게 됐지만, 상하이 토박이인 그녀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이 국숫집처럼 오래된 스쿠먼에서 외할아버지 손에 자랐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지금은 선양(沈陽)에 살고 있다. 가끔 상하이로 출장을 오면, 늘 이 국숫집에 들른다고 했다. 그러면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했다. 내가 너무 짠하게 쳐다봤는지, 그녀가 씩씩하게 국수를 들이켰다. 그 멋쩍은 후루룩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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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먼 농탕은 따뜻한 골목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사진 왕강펑]


1930년대에는 이런 스쿠먼 가옥이 9000동에 달했다. 당시만 해도 스쿠먼은 도시 건축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널리 퍼져있었고, 스쿠먼 한 채에는 단일 대가족이 살았다. 지금처럼 한 스쿠먼 지붕 아래 열 가족이 살며 화장실, 부엌을 공유하게 된 것은 1949년 마오쩌둥 집권 이후다. 개인 자산이 국유화되고 일부 시민들은 부여 받은 정치 계급에 따라 강제로 이주해야 했다. 자본가들은 특히 낮은 계급으로 분류돼 스쿠먼의 작은 방 한 칸으로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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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먼 여러채가 모인 골목을 ‘농탕’ 이라고 한다. [사진 왕강펑]


스쿠먼 가옥은 하나의 조밀한 주택 단지를 이룬다. 앞집 뒷문과 뒷집 앞문이 서로 서로 연결돼 복잡한 통로와 골목을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스쿠먼의 ‘농탕(弄堂)’이다. 아이들은 농탕 첫번째 집부터 마지막 집까지 일직선으로 내달리며 뛰어 놀고, 엄마들은 공용 부엌에서 만나 시시콜콜한 일상다반사를 주고받았다. 노인들이 골목에 모여 앉아 장기를 두는 풍경도 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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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먼 농탕은 일부 보존 지구로 지정된 곳을 제외하면 도심 재개발로 하나둘 허물어지고 있다. [사진 왕강펑]


오랫동안 상하이 서민들의 생활 터전이었고, 따뜻한 골목 정서의 상징이었던 스쿠먼 농탕은 이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100년 된 낡은 집보다는 새로 지은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고, 상하이 도심의 집값이 치솟으면서 재개발도 끊이지 않는다. 런샤오옌의 옛 스쿠먼 집도 이미 오래 전에 허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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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스쿠먼 농탕은 장위안(張園)이다. 미식거리로 유명한 우쟝루(吳江路) 바로 뒤에 있는데, 많은 사람이 이곳을 그냥 지나친다. 나는 상하이의 사진작가 왕강펑(王剛峰)과 함께 이 지역을 둘러보는 행운을 누렸다. 그는 실제로 농탕 안에 스튜디오를 둔 주민으로, 여행객을 대상으로 농탕 안에서 기념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한다. 그를 따라 다시 한 번 스쿠먼을 탐방하면서, 상하이를 보다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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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면, 도시 개발로 사라지기 전에 스쿠먼 농탕을 찾아가봐야 한다. [사진 왕강펑]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기고 있는 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만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니다. 도시 개발로 상하이의 스쿠먼 역시 머지 않아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앞으로도 상하이에 갈 때마다 나는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런샤오옌이 소개한 국숫집과 왕강펑이 소개한 장위안을 찾을 것이다. 상하이의 오래된 흔적이 영영 사라지기 전에.
 
 ※ 상하이에서 활동 중인 베테랑 사진작가 왕강펑의 홈페이지(gangofonephotography.com)에 가면 더 많은 스쿠먼과 상하이의 사진을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스쿠먼 농탕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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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