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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포트리스 (The fortress) #4. 드라이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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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희경은 침실에서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말을 하진 않았기에 어색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희경이 스스로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원진의 머릿속엔 현실적인 문제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당장은 시체 처리에 대한 일이었다.

공들여 가꾼 뒷마당에 시체를 저렇게 짐짝처럼 쌓아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혹시나 시체들 속에서 변종 에볼라 바이러스라도 생겨나면 약을 먹지 않은 원진과 희경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약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변종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병했을 때 정부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대응했다. 질병관리본부의 리더십으로 신약은 값싸게 충분히 공급이 되었다. 심지어 노숙자들에게조차 몇 알씩 공급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원진은 약 기운 때문에 몸의 밸런스가 망가질까봐 몸이 아파도 약을 먹지 않고 견뎠고, 희경 또한 민간요법에 의지하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아스피린도 잘 먹지 않았다. 그랬기에 두 사람은 분노로 미치지 않고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청부업 시절엔 뒤처리를 해주는 직원들이 있었기에 시체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을 프로였고 원진이 현장에 무슨 짓을 해 놨던 말끔하게 치웠었다. 물론 심하게 해 놨을 땐 핀잔을 듣곤 했지만.

뭐든 직접 해봐야 한다는 신조를 지니고 있는 원진이었지만 시체 처리만큼은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요새와 같은 집을 설계할 때도 시체 처리에 대한 시설은 생각지도 않았다. 세상에 어떤 인간이 자신이 살 집에 시체를 처리할 시설을 고려하겠는가?
 
하지만 원진은 바로 후회했다.

그냥 길가에 내다 버릴까도 생각해 봤지만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었다. 집 주변에 시체를 던져놓으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약탈자들을 겁주기보다 분노를 더 돋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은 분노의 시대니까.

시체를 산이나 강에 몰래 버리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효율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약탈을 목적으로 한 침입자들은 계속 생길 것이고, 그때마다 죽여서 멀리 묻으러 나간다면 집을 자주 비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집을 비우는 건 원진이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 중 하나였다.
 
가장 깔끔한 방법은 화장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한 명 소각하는데 얼마나 많은 화력이 소비되는지 알게 되면 이런 아이디어는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지금처럼 에너지가 귀한 시기엔 특히나 더.

침입자들을 막아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시체를 처리하는 것이 골칫거리가 될 줄은 몰랐기에 원진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원진은 방금 결심했다. 내 집 마당에서는 누구도 죽이지 않겠다고.
 
모니터 룸에 앉아 CCTV 화면을 지켜보던 원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마당 구석에 대충 가려놓은 시체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시체는 곧 부패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러면 치우기가 더욱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시체의 썩은 내가 얼마나 고약한지 원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해가 지기를 기다린 원진은 희경이 들어가 있는 침실 문에 대고 말했다.
 
“나 좀 나갔다 올 게. 문 꼭 잠그고 있어.”
 
딱히 대답을 기다리고 한 말은 아니었기에 말만 남기고 곧장 현관을 나섰다.
 
원진은 간이 소독실에서 소독 호스를 빼내 들고 시체를 향해 소독약을 뿌렸다. 빨간 핏물과 까만 땟물이 소독 약제와 섞여 시체를 타고 흘러내렸다. 소독을 끝낸 원진은 바디백 대신 구석에 쑤셔두었던 비닐을 꺼내 시체를 꽁꽁 싸맸다. 꼼꼼한 원진의 성격 때문에 시체 세 구를 모두 감싸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시체를 질질 끌어 차고에 주차해 둔 자동차 트렁크에 쑤셔 넣었다. 시체 두 구를 넣으니 트렁크가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남은 한 구를 뒷좌석에 그냥 실을까도 생각했지만 계엄군의 눈에 띄기라도 하는 날엔 현장에서 바로 체포될 것이 분명했다.

트렁크 공간을 눈짐작으로 계산한 원진은 발로 트렁크 안의 시체들을 안쪽으로 밀어 넣고 남은 한 구를 트렁크에 쑤셔 넣었다. 무게로 인해 차가 아래로 주저앉았다. 발로 있는 힘껏 밀어 넣자 얼추 모두 실린 것 같았다. 뚜껑을 닫으려는 순간 시체 하나의 팔이 툭 튀어나왔다. 억지로 싣는 바람에 비닐이 찢어진 모양이었다.
 
“에이, 쯧.”
 
뒷마당 공구함에서 덕테이프를 꺼내들고 다시 차로 향했다. 팔을 몇 번이고 안으로 밀어 넣었지만 잘 들어가지 않자 할 수 없이 부러뜨렸다. 부러진 뼈가 살갗을 찢고 나오는 것을 본 원진은, 피가 나오기 전에 재빨리 비닐로 감싸 덕테이프로 마무리하고 트렁크를 닫았다. 이제야 비로소 외출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차에 오른 원진은 차고 위쪽에 붙어있는 모니터로 밖의 상황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원진은 차 안에 버튼을 눌러 차고 문을 열었다. 이때가 가장 침입에 취약하기 때문에 원진은 온 신경을 집중해서 밖으로 나섰다. 차고 문이 굳건히 닫힌 것을 확인한 원진은 그제야 길을 따라 차를 몰기 시작했다.
 
계엄령으로 야간 통행을 통제받고 있는 데다 시민군의 무력시위는 주로 4대문 안과 강남, 여의도 등 주요 경제 중심지에서 발생했기에, 제대로 된 극장 하나 없는 이런 외곽지역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고요한 곳도 가끔은 소란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그것은 계엄군 때문이었다.

계엄군은 시민군 주요 간부들의 은닉처를 찾아 수색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대부분은 허탕 치는 날이 많았고 그때마다 일반 가정집을 부수고 들어가 죄 없는 민간인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그들은 제복을 입은 또 다른 약탈자들일 뿐이었다. 계엄군들은 전투에 적합한 장비와 훈련을 받았기에 원진은 그들을 더욱 경계했다.

엔진 소리를 최대한 적게 내기 위해 골목길을 거의 기다시피 가던 원진은 한 골목 앞에서 멈춰 섰다. 골목 안에서 계엄군 두 명이 왜소한 사람 한 명을 두들겨 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엄군은 사람을 때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어서였는지 원진의 차 소리를 듣지 못하고 여전히 때리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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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에 관심이 없던 원진은 그들의 눈에 띄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그냥 지나치려다가 또다시 차를 우뚝 세웠다. 계엄군 한 명이 바지를 내리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원진은 그제야 쓰러져 있던 사람이 여자란 것을 깨달았다. 그것도 십 대로 보이는 어린 소녀.

원진은 그들이 벌이는 짓을 잠시 지켜보았다. 짜장면 맛을 알면서도 TV에 나오면 지켜보고 있듯이, 굳이 지켜보지 않아도 골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호기심 때문에 바라보고 있었다.
 
원진의 의식구조는 가족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릴 때 개나 고양이를 죽이는 일은 없었지만 뭔가 잘못된 것인지 정의감이나, 신뢰, 의협심 따위는 태어날 때부터 결핍이었다. 그런 원진이었기에 저 참혹하고도 위험한 상황을 못 본 척하고 지나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책을 느낄 도덕심은 청부업 시절에 이미 고갈되었으니까.

그렇게 얻어맞았지만, 소녀의 저항은 심했고 계엄군은 쉽게 덮치지 못했다. 생각보다 상황이 길어지자 원진은 흥미를 잃고 차를 출발시켰다.

그때 누군가 유리창을 세게 치며 소리를 질렀다.
 
“정지, 정지!”
 
원진이 구경거리에 정신을 빼앗겨 눈치채지 못한 또 다른 계엄군이었다. 스무 살을 갓 넘겼을까. 앳된 얼굴엔 거만함만 잔뜩 묻어 나왔다.
 
“이 새끼가 미쳤나! 창문 열어!”
 
소란스러운 소리에 골목 안에서 일을 벌이던 계엄군들도 화들짝 놀라며 원진 쪽을 돌아보았다. 손목시계를 확인한 원진이 창문을 조금 내리고 비굴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줄 몰랐습니다. 그래도 통금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만….”
 
앳된 놈의 얼굴이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렸다.
 
“뭐?”
 
찌푸린 얼굴조차 풋풋한 놈의 모습에 원진은 아주 잠깐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놈은 창문을 거칠게 두드리며 말했다.
 
“내려.”
 
곤란했다. 최대한 비위를 맞춘다고 맞춘 건데, 이것도 맘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평범한 시민도 계엄군의 비위에 거슬리면 시민군으로 둔갑이 되어 맞아죽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트렁크에 실려 있는 시체까지 보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빨리 지나가겠습니다. 한 번만 봐 주세요.”
 
“말대꾸 그만하고 어서 내리라고!”
 
그는 허리에 차고 있는 진압봉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이대로 조용히 지나가긴 틀렸다고 생각한 원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차에서 내렸다. 골목길을 힐끗 보니 놈들은 소녀를 밟고 서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최대한 등을 움츠려 나약한 모습으로 서 있는 원진에게 놈이 말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디 가는 거야?”
 
원진은 최대한 순박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가는 게 아니라 들어가는 길이었습니다. 조금 늦었죠? 헤헤.”
 
그는 손가락으로 원진의 가슴을 콕콕 찌르며 말했다.
 
“통금 시간 두 시간 전부터는 준비를 해야 할 거 아니야. 준비성이 그렇게 없어서야 요즘처럼 험한 시기에 목숨이나 부지하겠어?”
 
“이렇게 든든한 군인분들이 보호해 주신 덕분에 목숨 부지하고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헤헤.”
 
원진을 위아래로 훑어본 놈은 괜찮다고 판단했는지 괜찮다는 듯 골목 쪽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놈들은 쓰러져 있는 소녀를 끌고 안쪽 골목 더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아마도 원진에게 방해받은 일을 마저 끝낼 모양이었다.

놈과 단둘이 남게 된 원진은 습관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비위를 맞추고 지나갈 생각에 몇 만 원을 꺼내 건넸다.
 
“얼마 안 되지만 성의니까 받아주세요.”
 
돈을 보는 놈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원진은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더 꺼내 얹어주며 말했다.
 
“나라를 위해 고생하시는 거에 비하면 이건 너무 약소하지만 성의를 생각해서 받아주세요.”
 
그제야 놈은 돈을 받으며 말했다.
 
“이번만 봐줄 테니까 앞으로 조심해. 알겠어?”
 
“아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원진은 미소를 지으며 물러서는 그에게 머리를 조아려 인사를 하고는 다시 차에 올랐다.
놈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차를 출발시키던 원진은 룸미러로 뒤를 보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원진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놈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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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중앙대학교 졸업. IT 회사 입사, 경영기획, 전략기획, 사업제휴 등의 다양한 직무 경험.
1999년 포털사이트에 <왼팔> 연재. 2001년 출간. 이후 소시오패스를 전면에 내세운 액션 스릴러 <Business is business>(2010), <유령 리스트>(2015)로 액션물 출간.
 
2001.08 「왼팔」
2003.03 「왼팔II」
2005.07 「적경」
2008.06 「피해의 방정식」 (한국 스릴러문학단편선)
2010.01 「위험한 오해」 (한국 스릴러문학단편선II)
2010.10 「Business is business」
2013.11 「사이비」 (원작 : 연상호)
2014.03 「조난자들」 (원작 : 노영석)
2015.08 「유령 리스트」
2015.10 「살인의 기원」 2015 부산영화제 북투 필름 피칭작 선정
2016.04 「왼팔 rebuild」
2016.04 「블랙러시안」, 「증오」, 「복수의 미학」 (맨 헌터 태성 시리즈)
2016.05 「십이 죄」
2016.07 「세일즈 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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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