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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에 개성공단 같은 유라시아경협체제 만들자…그게 한반도 평화 찾는 길

극동 러시아의 연해주는 발해(698~926)의 고토(故土)였다. 그래서 이 지역은 오늘의 우리와는 생명선으로 이어져 있다. 크라스키노를 중심으로 한 연해주는 1860년대 조선 관북 지방의 가난한 농민들이 최초로 조·러 국경을 넘어가 새로운 삶의 터를 잡은 땅이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우리의 깊은 한이 서려 있다. 20세기 초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이후 이 지역은 안중근 의사 같은 독립지사들이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斷指同盟)까지 하면서 항일독립운동을 기획하고 전개한, 우리 민족의 의기가 충천하던 무대다. 연해주를 발판으로 아시아·태평양 진출을 노리는 오늘의 러시아는 무거운 지정학적 요소로 한반도 정세에 작용한다. 한반도의 28배나 되는 극동 시베리아는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경제의 블루 오션이다.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와 미래가 중첩되는 극동 시베리아를 빼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말할 수 없다.

김영희 대기자의
오디세이가 남긴 것

박 대통령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푸틴 신동방정책 접점은 극동지역
에라스뮈스의 상업평화론처럼
통상하는 나라는 전쟁 안 하게 돼
한·중·일 다자협력체 만들어
북한 동반한 러시아도 오게 하면
각국 이해관계, 용광로에 녹게 돼

특히 오늘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미·중 및 미·러의 대결이 한반도에 극도의 긴장을 몰고온 동북아시아의 엄혹한 지정학이 평화 오디세이를 연해주로 인도했다. 남북한의 강 대 강 대결로 한반도는 실존적 위기를 만났다. 우리가 위기 돌파를 주도해야 하지만 주변 4강의 협력 없이는 안 된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국 배치 결정으로 한·미 동맹과 한·일 안보협력은 황금시대를 맞은 반면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조기 진화하지 않으면 한반도는 다시 냉전, 더 나쁘게는 열전의 전장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위기상황의 출구전략의 단초라도 찾아보자고 연해주를 찾은 것이다. 연해주는 푸틴의 신동방정책과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만나는 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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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극동 관문인 블라디보스토크항 야경. 2012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맞춰 건설된 금각만대교는 3.1㎞ 길이의 세계 최장 사장교다. 러시아의 미래를 극동에서 찾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의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사진 김현동 기자]

김정은은 4차 핵실험에 이어 불꽃놀이 하듯 연일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거의 실전 배치가 가능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에도 성공했다. 개성공단을 단칼에 폐쇄한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결정한 것은 김정은에게는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다.

중국은 우리의 사드 배치에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는 스마트 보복을 해 오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유커들의 짐 검사를 강화하고 중국인들이 열광하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상영 계획을 취소하고 K팝 스타들의 공연도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없던 일로 해버린다.

중국은 사드가 미·일 미사일방어망에 편입되는 것을 경계한다. 미국은 글로벌 군사작전을 일체화 쪽으로 재편 중이다. 공중의 정찰위성과 지상의 최첨단 레이더가 실시간으로 지역 작전사령부에 적의 움직임을 알리면 네덜란드의 시골 도시나 미국 네바다사막 작전통제본부의 컴퓨터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그리고 결국은 한반도의 작전을 원격 지시하는 네트센트릭 오퍼레이션(Netcentric operations) 체제다. 이걸 아는 중국에 사드는 미사일방어(MD) 체제와는 별개라는 설명은 먹혀 들지 않는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사드는 중국의 자업자득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진작 눌렀더라면 사드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탄이 우리가 당면한 지정학적 현실을 바꿔주지 않는다. 인내심을 갖고, 공공외교까지 총동원해 중국과 러시아를 이해시키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 9월 초 박근혜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에서 푸틴을 만나고 잇따라 중국 항저우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시진핑을 만나게 되는 것은 천금 같은 기회다. 그러나 대통령과 외교라인 사람들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민관, 특히 기업들의 외교자산을 적기에 총동원하지 않으면 시기를 놓친다.

평화 오디세이는 동방경제포럼을 앞두고 임시 폐쇄된 극동국립연방대학 당국의 특별배려로 정상회의가 열릴 바로 그 회의실에서 제1차 포럼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각 분야의 최고전문가들은 남북한과 중국과 러시아가 만나는 연해주, 아직 개발이 안 되었기 때문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연해주가 네 나라 경제협력의 허브로 최적지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다만 아직은 인프라의 미비, 당장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의 부재로 토론은 개념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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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하바롭스크 시민공원에 있는 김정일 방문 기념 표지판. 2001년 8월 17일 방문했다고 돼 있다.

정덕구 니어(NEAR)재단 이사장은 한국이 동북아의 틀(Matrix)에만 갇혀 있지 말고 러시아와 인도까지 포함한 6각 구도를 제안했다. 무서운 기세로 부상하는 인도를 시야에 두고 판을 키우자는 구상이다.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이 빠지면 일본과 인도가 몸을 사린다. 인도가 동남아 국가들을 건너뛰어 연해주의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참가할지도 의문이다.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는 동북아의 한·중·일이다. 이 3국이 주도하는 다자협력체에 러시아가 북한을 동반하고 들어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다. 이런 다자협력체라는 큰 용광로에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야망과 이해관계를 쓸어 담아 녹여내는 방법이 아니면 강대국들끼리의 의심 암괴는 풀리지 않는다. 지금처럼 일본의 아베가 기세를 올리면 중국의 시진핑이 긴장한다. 시진핑이 긴장하면 오바마, 그리고 아마도 힐러리 클린턴이 편한 잠을 못 잔다. 한국은 이런 안보환경을 활용해 다자협력체제를 만들어내는 역사적인 과제를 떠안았다. 우리가 당면한 동북아 지정학의 저주다.

한·중·일 프레임에 익숙한 우리에게 러시아는 새로운 참여자다. 한·러 관계의 현실은 어떤가. 하바롭스크의 아무르강을 굽어보는 우초스(Учёс) 언덕에서 보는 한·러 관계는 가시밭길이다. 거기에는 러시아가 한국에 보내는 불신의 메시지가 새겨진 기념비 하나가 있다. 북한 김정일이 2001년 하바롭스크를 방문했다. 북한은 김정일 방문 기념비를 당장 우초스 언덕에 세우고 싶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정치적인 기념비 건립을 13년이나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3년 11월 10일 서울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을 고비로 한국에 대한 러시아의 불신이 싹트고 자랐다. 마침내 러시아 정부는 북한의 숙원을 들어주었다. 기념비의 글귀는 간단하다. “조선 노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이신 김정일 동지께서 2001년 8월 17일 하바롭스크를 방문하시었다.” 러시아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우초스 언덕에서 김정일 방문 기념비의 형식을 빌려 서울에 불만의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는 것이다.

푸틴에게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으로 열린 창이다. 우크라이나 문제로 유럽에서 희망이 꺾인 러시아는 아시아·태평양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는다. 신동방정책이 그것이다. 푸틴은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아시아·태평양 진출의 원년으로 삼았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 리모델링과 회의장으로 쓸 극동국립연방대학을 루스키섬에 새로 짓고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보다 아름다운 사장교로 섬과 도시를 연결했다. 총투자 11조8000억원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아시아·태평양 진출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푸틴의 불굴의 의지의 표현이다.

푸틴 신동방정책의 실천적 큰 사업이 나진-하산 프로젝트다.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적극 참여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러시아는 인식한다. 토론에 참가한 이규형 전 러시아 주재 대사는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불발은 “쌍방 과실”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한국 기업들을 유치할 만한 사업성 있는 프로젝트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건 사실(Fact)이다. 문제는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논리로 보면 연해주는 미래의 블루 오션이다. 그러나 정치논리는 지금 당장 한·러 경제협력을 압박한다. 한·러 경제협력 프로젝트에는 러시아가 북한의 노동력을 동원한다. 남북관계가 완전히 막힌 지금 우리는 작은 접촉, 러시아를 통한 간접대화 창구라도 열어야 하는 처지다.

상충하는 경제논리와 정치논리 간에 조화를 찾는 것이 박근혜 정부와 후속 정부들의 역사적인 사명이다. 박 대통령은 그 정도의 치적은 남기고 물러나야 한다. 연해주를 발판으로 한·유라시아 경제협력체제가 북한의 도발 수준을 낮추고 핵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잠정적 타협(Modus vivendi)이라도 성사시키는 방도의 하나다. 극동시베리아는 푸틴의 신동방정책과 한국의 북방 진출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의 열망이 만나는 이상적인 접점이다.

극동 시베리아는 우리에게는 경제적인 매력과 정치적인 자력(磁力)을 동시에 갖춘 지역이다. 거기에는 역사적인 당위성도 있고 현실적인 절실함도 있다. 이 지역은 1860년까지는 중국 영토였다. 1858년 2차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 제국이 서구 열강들의 먹잇감이 되었을 때 러시아가 이 넓은 강토를 차지했다. 그래서 러시아는 미·일과의 대결구도로 중국과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맺고 극동 시베리아의 시장을 중국인들에게 내어주고는 있어도 중국에 의한 실지회복을 경계한다. 극동 시베리아 시장은 이미 중국에 장악됐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에서 러시아는 균형추로서 한국과, 그리고 종내는 일본과의 협력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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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기자

이반 톤키 전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 고문은 토론에서 한국의 무성의를 비판하고 러시아가 북한에 경제적 작용은 할 수 있어도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러시아에 바라는 것은 중국에 바라는 것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러시아에 관한 한 경제협력은 북한으로 가는 정치적인 우회로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직선으로 통하는 길이 막혔기 때문에 아시아·태평양 진출이 아쉬운 러시아와 손잡고 연해주의 경제회로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평화를 원하거든 친구보다는 적과 대화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러시아라는 중간자를 통해 북한과 간접대화라도 시작해야 한다.

이마누엘 칸트(1724~1804)는 민주평화론을 제창했다. 공화국(민주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다. 그러나 동해 물이 말라도 북한의 김씨 왕조가 공화국(민국국가)이 될 가망은 없다.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는 뜬구름 잡기인가. 네덜란드 사상가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뮈스(1466~1536)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의 우리에게 적실성(relevancy)이 있는 답을 내놓았다. 통상을 하는 나라들은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상업 평화론이다. 오늘의 용어로는 경제 평화다. 한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힘을 빌려 북한 경제의 대외의존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빠른 한반도 평화의 길이다. 지금 확산 추세에 있는 북한의 장마당에 바깥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연해주에 제2의 개성공단을 세우는 것도 실천 가능한 방안의 하나다. 국제적인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 지도부는 벌써 고난의 행군을 말하고 있다. 줄줄이 이어지는 탈북도 경제적인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탈북 사태가 북한 붕괴를 가져오지 않는다. 붕괴론을 전제한 대북 강경정책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비핵화는 손도 못 대고 남북관계만 악화시킬 뿐이다. 북한의 배후에 두 개의 거대한 경제가 버티고 있음을 두 번의 평화 오디세이에서 확인했다. 평화의 길은 일직선의 포장길이 아니다. 거칠고 구불구불한 길이다. 연해주에서 본 러시아는 험난한 평화 오디세이의 필요 불가결한 동반자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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