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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혼자가 아니었다, 연해주 민족혼이 연출한 필연

모든 ‘떠나는 노래’는 아직 실현되지 못한 시간에 바쳐지는 노래이다. ‘떠나는 노래’는 어둠의 그림자가 침범하지 못하는 미지의 노래이다. 이루어질 가망이 크지 않은 꿈과 견뎌내기 어려운 모험을 서슴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 더 크고 높게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다. 그래서 어떤 거침없고 담대한 영혼들은 늙어서도 그 노래를 그칠 줄 모른다.

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다니던 동행들이 셋째 날 모두 극동연방대학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실에서 연 제1차 세미나에서 한 발표들은 어쩌면 이번 ‘평화 오디세이’ 뱃머리에서 부르는 ‘떠나는 노래’일 수도 있겠다. 별 준비 없는 출발이 슬며시 불안해진 나는 그 이틀 틈틈이 그들이 발표할 논문 요약이나 발언 요지를 구해 살펴보았다. ‘한·러 관계 현황’이나 ‘러시아의 국가개발 전략과 극동 그리고 북한’ ‘러시아가 바라는 한·러 경제협력 프로젝트’ ‘러시아 극동 지역 철도·항만 인프라 현황과 향후 한·러 간 협력 방향’ 같은 것들로 ‘유러시아 연합’을 가장 큰 테두리로 한 유라시아 국가 간의 협력체제 구축이나 그 개별적 실천 방안에 대한 논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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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남아 있는 ‘최재형 고택’에서 생각에 잠긴 이문열 작가. ‘연해주 항일 독립운동의 대부’라 불렸던 최재형(1860~1920)은 생면부지의 안중근 의사를 물심양면 후원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그런 주제들은 내게 익숙한 것이 아닐뿐더러 검토되고 있는 전략이나 방안들도 내가 쉽게 신뢰나 거부를 드러낼 수 있을 만큼 깊이 있게 다루어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다음 날 세미나의 발표자나 토론자의 명단에 내가 들어 있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며 특별히 긴장하지 않고 그것들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그런 방심이 이 오디세이 첫 번째로 내 채신머리없는 부적응 증세를 드러내게 만들었다. 전날 밤 난폭하게 마셔대는 사공들 간의 술자리에서 습관적인 이취(泥醉)에 빠져들고만 일이 그랬다. 다음 날 스태프 중 한 명이 출발을 재촉하러 내 객실을 두드렸을 때 나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 샤워를 하고 방을 나섰지만 이미 일행은 모두 떠나고, 호텔에 남아 있던 스태프 하나가 덤덤하게 내가 세미나 참석의 의무에서 면제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나는 텅 빈 방 안에 누워 칠순을 앞두고도 버리지 못한 일탈과 반칙의 습성을 자책하며, 그 때문에 더 매섭게 청구될 내 노래를 떠올려 보았다. 생각을 굴리고 굴리다 보니 휑한 머리에도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하기는 나도 나름의 떠나는 노래를 구상해보기는 했다. 항해를 떠나기 위한 노래, 망망한 뱃길에 안내가 될 노래. 그런데 그 대상은 내 땅 밖에 있는 것이 아니었고, 답도 남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이었다.

나는 몇 해 전부터 우리 사이에서 점점 더 심해지는 어긋남과 삐걱거림, 자라나는 부정과 미움에 가슴 졸여 왔다. 갈수록 잦아지는 우리 내부의 충돌과 격화되는 반발계수, 머지않아 감출 수 없는 살의로 주고받을 것 같은 종북좌파와 수구반동의 시비. 하지만 그런 것들을 근심하는 노래는 떠나지 않고 함께 남아서도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 마주 보고 같이 남아 더불어 찾아야 할 그 대안을 멀리 떠나와서 거침없이 불러대는 노래 끄트머리에 앞뒤 없이 끼워 넣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래잖아 뜻밖의 암시가 왔다. 늦도록 함께 퍼마셨는데도 용케 일어나 세미나에 참석하러 갔다가 오래 배기지 못하고 돌아온 문단 선배로부터였다.

“아, 그거 뭘 걱정하슈? 당신이야 안중근이면 되지 않소?”

나와 점심을 하고 오후를 함께 보내려고 내 방을 찾아온 선배는 내 고심을 몇 마디 듣기도 전에 그렇게 핀잔처럼 말했다. 선배는 아마도 『불멸』을 쓴 나의 안중근에 관한 전기적(傳記的)인 지식으로 때우란 뜻 같았으나 나는 다르게 알아들었다. 안중근 의사가 마지막 2년을 보낸 이 연해주에 그때 무슨 축복처럼 자우룩이 내려앉았던 민족 대동(大同)의 정신을, 그때 망국의 원흉에 대한 보수(報?) 일념으로 하나가 되었던 우리의 집단적인 자아를 내가 원래 찾던 답안으로 써보면 어떨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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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에 있는 단지동맹비 기념석에 새겨진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 문양. 한국산 오석 위에 새겼다.

이제 와서 부끄럽게 돌아보는 바로 나는 안 의사의 생애를 엮어감에 있어 어쩔 수 없이 개별적인 영웅으로서의 그를, 그의 위대함을, 탁월함을 드러내는 데 힘을 다했다. 그의 순수하고도 불꽃같은 영혼을 분식하여 거룩함과 장엄함의 언저리까지 끌어올리며, 우리 속에서 꺼지지 않은 불꽃으로 남아 있기를 기원하였다. 하지만 그의 삶이 끝으로 다가갈수록 나는 어둡고 막막한 유예의 감정에 휘말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안 의사의 생애가 영웅적인 위대함을 넘어 거룩함과 장엄함의 언저리로까지 끌어올려질 수 있는 것은 그 고유의 품성과 덕목만에 의한 것은 아니다. 그를 둘러싼 민족의 정신문화사적 환경과 수천 리 떨어진 이국에서의 디아스포라에서의 삶이 오히려 고양시킨 집단적 자아와 함께 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안 의사의 삶이 『불멸』이란 제목의 책으로 찍혀 나오는 순간에도 내 마음속에는 그런 의구에서 비롯된 주저들이 남아 있었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김달하가 안 의사의 집으로 찾아와 국외 망명을 권하는 순간부터 그의 삶은 제자들을 구해 전도여행을 떠나는 예수의 생애처럼 공생애(公生涯)로 접어든다. 이전에도 그는 자신을 공적인 가치나 정통의 신념에 내던져 왔지만 김달하의 집으로 옮겨 앉고, 그곳에서 여러 인물과 교유하며 자신을 마지막으로 다듬는 것은 거기서 형성되고 있는 한 갈래 민족의 집단혼에 자신을 바치는 제의로 읽혀질 수도 있다.

멀리 북쪽으로 망명해야 될 사람이 남쪽 끄트머리 부산으로 내려가 여권도 사증(査證)도 없이 러시아령으로 가는 큰 배를 구하는 일이나, 바로 연해주에 내릴 수 있는 길이 없어 간도로 돌아 연추로 가는 길은 우연이나 기연의 연속 같은 헤맴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뒤따라가며 맞춰 보면 어딘가 정밀하게 기획된, 조심스러운 우회(迂廻) 같은 느낌이 있다.

경계가 적은 러시아 국경을 넘어 연추에 이르고, 거기서 최재형 선생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도 그렇다. 안중근 자신이 비틀어 놓은 ‘안응칠 역사’에도 대강 얼버무려져 있고, 내가 민담이나 구전에 가까운 자료들을 바탕으로 『불멸』 속에 엮은 것도 그렇지만, 그 길은 막연한 떠돎 끝의 우연한 해우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무언가를 드러내는 게 싫어 아주 주의 깊게 진행된 연출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리 지사(志士)가 지사를 알아보는 시대라지만, 그날부터 안중근이 순국으로 가는 길에 오를 때까지의 2년 남짓 최재형의 지우(知遇)와 후의도 예사롭지 않다. 그가 비록 고국 조선을 위한 대의에 사는 사람이라고는 해도 우연히 찾아온 생면부지의 청년을 의기투합만으로 그렇게 세밀하게 보살피고 후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안 의사의 국내 진공 작전 참가나 그 참혹한 도주 생환의 길에서도 드러나지 않은 민족 집단혼이 이끌고 있는 흔적은 곳곳에서 보인다. 기록과 전언으로 남은 안 의사의 행적은 홀로 떠다니다 운때 맞아 의병 행렬에 끼게 된 외로운 총잡이가 아니다. 틀림없이 무언가에 고무되고 격려 받아 조직적으로 행군하는 대오의 일원이다.

안 의사가 블라디보스토크를 드나들며 보여주는 행각이나 만나보게 되는 사람들은 더욱 연해주에 집약된 민족혼의, 또는 느슨하게라도 조직된 자주독립을 지향하는 민족정신의 그림자를 더욱 진하게 느끼게 한다. 그는 거기서 13도 의군(義軍)을 결성하고 항일전을 계획하던 의암 유인석과 안창호의 신민회 결성에 참여했던 이동휘를 만나는데, 그 역시 그들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것으로 되어 있지만 우연이기는 어렵다. 의암 유인석과 이동휘는 그가 망명 전 김달하의 사랑방에서 이미 만나보았던 사람들이었다.

안중근이 마지막까지 몸담았던 해삼위의 한인신문 ‘대동공보’는 더욱 수상쩍다. 그 주필이었던 이강은 미국의 안창호가 연해주의 동포들을 위해 뽑아 보낸 신민회 사람이다. 이강이 이끄는 ‘대동공보’ 편집진은 안중근을 취재원으로 삼아 하얼빈 역두에 접근할 수 있는 신분을 확보해주고, 그 여름 국내 진공전에 참여했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우덕순을 수금원으로 받아들여 안중근과 나란히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포살의 길을 떠나게 한다. 더하자면 이토 히로부미의 하얼빈 방문을 알려주기 위해 전보로 연추에 있던 안중근을 불러낸 것도 ‘대동공보’고, 총기를 구해주고 자금 조달처까지 일러준 뒤 블라디보스토크 역두에서 마지막으로 두 의사를 보낸 것도 ‘대동공보’의 사주 유진률과 주필 이강이다.

공교롭기는 황해도 의병장 이진룡과 안중근의 조우도 그렇다. 그는 의암 유인석의 제자로서 의병의 무기를 구매하러 해삼위로 나왔다가 군자금 상당 부분을 안중근에게 강탈당한다. 안중근 일행 세 사람이 멀리 하얼빈까지 가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일 때까지 필요한 자금으로 쓰겠다는 명목인데, 아무래도 조작 냄새가 난다. 돌아가는 체코여단에서 흘러나온 신식 장총이라도 몇 자루 구해볼까 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잠입한 이진룡을 누가 알아보았으며, 그 군자금을 뺏어 거사자금으로 쓰라고 누가 안중근에게는 일러주었고, 이진룡은 또 왜 그렇게 허술하게 군자금을 간수하다 빼앗겼을까. 어쩌면 나중에 안 의사에게 거사자금을 대었다는 추궁을 피하기 위한 자작극은 아니었을까.

냉정히 살펴보면 안 의사를 둘러싼 공교로운 우연과 기연의 연쇄는 끝이 없다. 분명 처음과 끝이 가지런하게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안 의사의 눈부신 거사 뒤에는 집단혼이나 민족정신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민족적 에너지가 일사불란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안 의사의 순수하고도 불꽃같은 영혼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을 우리 내부의 일치와 단합이 그때의 연해주 조선인들을 지배하는 내부적 규율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나는 안 의사를 한 고결한 의지로, 외롭지만 빛나는 결단의 존재로, 불멸의 가치를 위해 스스로를 투척하는 실존으로 그려내는 데 급급해서 100년 전 이 연해주에서 연출된 아름다운 민족혼의 향연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닐지.

만일 이 깨달음이 옳은 것이라면 나는 제법 그럴듯하게 이 오디세이의 ‘돌아오는 노래’로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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