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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추미애가 문재인의 ‘아바타’가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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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논설위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이하 경칭 생략)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한 ‘마지막 2인’의 한 사람이었다. 2004년 3월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노무현의 총선 개입 발언을 문제 삼아 탄핵을 추진하자 추미애 최고위원(당시)은 ‘3불가론’으로 맞섰다. ①탄핵 대신 개혁으로 지지층의 동요를 막고 ②탄핵 찬성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지지층이 주도하고 있으니 현혹되면 안 되며 ③그래도 탄핵을 강행하면 역풍을 맞아 총선에 참패할 것이란 논리였다. 그러나 이에 동조한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남은 지도부 전원은 “당내 2인자가 당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너 혼자 잘났느냐”는 비난도 쏟아졌다. 그래도 추미애가 말을 듣지 않자 민주당은 구치소에 수감된 의원 2명에게 달려갔다. 그들의 서명까지 추가해 탄핵을 밀어붙이기 위해서였다.

이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 추미애가 입장을 바꾼 것이다. “범죄 혐의로 수감된 의원들까지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묻는 탄핵을 한다면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회고록 『물러서지 않는 진심』에서 직접 밝힌 얘기다). 추미애는 선언했다. “감옥 간 분들 표까지 긁어모아 탄핵을 한다면 말이 안 된다. 숯댕이(범죄자)가 검댕이(노무현)를 나무랄 순 없다. 민주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내가 기꺼이 표(탄핵 찬성)를 드리겠다.”

며칠 뒤 추미애는 한 발 더 나가 탄핵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기에 이른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내 잘못이 뭔지도 모르는데 시끄러우니 그냥 사과하고 탄핵을 모면하자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일갈하자 기자들에게 “이러면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해버린 것이다.

추미애의 투항으로 민주당은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밀어붙였다. 더욱 가관인 건 수감된 의원 2명의 서명까지 끝내 받아내 탄핵에 나선 것이다. “더러운 손까지 빌리겠다면 차라리 내 표를 가져가라”고 했던 추미애의 헌신은 결국 이용만 당한 셈이다.

탄핵의 결과는 참혹했다. 민주당은 17대 총선에서 노무현당(열린우리당)에 의석 대부분을 빼앗겨 9석짜리 미니 정당으로 추락했다. 그저께 막 내린 더민주 대표 경선에서 추미애는 “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이자 과오가 탄핵에 찬성한 것”이라고 했다. 그의 현실주의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표를 얻기 위해선 말 바꾸기는 물론 보스 등에 칼을 꽂는 것도 서슴지 않는 게 정치인이다. 그 어렵다는 서울에서 여성으로 5선 고지에 올랐음에도 존재감이 약했던 추미애로선 친문 표를 얻어서라도 대표직에 오르겠다고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추미애는 직접 쓴 회고록에서 비이성적으로 탄핵을 밀어붙인 민주당의 근시안을 비난했다. 하지만 노무현에 대해서도 “탄핵 직격탄을 맞고 정면승부하겠다는 냉혹한 전략에만 몰두해 사생결단식 혈투를 벌였다. 국민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잘난 분이 못 배운 시골 친형(노건평)에 머리 조아리며 청탁했다”는 노무현의 담화에 충격 받은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의 자살 소식을 듣고 “더 이상 침묵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한 대목도 있다. 모두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생각들이다. 그러나 추미애는 더민주 대표 경선 과정에서 이런 얘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종인이 탄핵에 긍정적이었다”는 책임 전가성 발언으로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 같다”(김종인)는 역풍을 자초했다.

추미애는 강단 있는 정치인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여성 정치인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失政)으로 주가가 추락한 상황에서 제1야당 대표가 됐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자신의 회고록 제목처럼 ‘물러서지 않는 진심’으로 친문 패권주의를 깨부숴야 한다. 자신을 낳아준 태반(胎盤)을 부정하는 용단이 있어야 더민주를 수권 정당으로 만들 수 있다. 친문들 앞에서 “노무현도 문재인도 잘못한 게 있다. 과(過)는 과대로 인정해야 국민이 받아준다”고 설복하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아무리 재주를 부려도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려고 친문이 조직적으로 띄운 아바타 대표”란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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