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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기부천사 바이올리니스트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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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이상희의 인터뷰 통보를 받고 사진 검색을 해봤다.
검색되는 사진은 달랑 몇 장뿐이었다.
웬만한 바이올리니스트를 검색하면 수백여 장의 사진이 검색된다.
그런데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을 First class로 졸업한 그녀의 경력에 비하면 사진이 없어도 너무 없는 편이었다.

기사 검색도 해보았다.
국제백신연구소(IVI)와 관련된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와 국제백신연구소가 함께 언급되는 사정은 이랬다.

그녀는 2005년부터 매년 자비로 자선음악회를 열고, 수익금 전액을 국제백신연구소에 기부해오고 있었다.

음악으로 기부를 하는 ‘기부천사’였다.

검색된 기사 중에 심장이 덜컥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녀가 만삭 중에도 자선음악회를 열고 연주를 했다는 것이었다.
만나기 전부터 그녀가 들려줄 삶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녀와 인터뷰를 하게 된 게 2006년 5월이었다.
비 오는 날이었다.
사무실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5월의 빗방울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바이올린 가방을 메고 우산을 든 그녀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담한 키에 비해 유난히 커보이는 바이올린 가방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귀를 곧추 세우고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만삭의 몸으로 연주한 내막이 궁금했기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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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국제백신연구소는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을 예방하는 백신을 개발해 개발도상국에 보급하는 비영리 국제기구다.
1만 원이면 개도국 어린이 3명이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다.
11년 동안 기부한 누적금액이 약 8800만원이다.
2016년 8월에 열릴 자선연주회를 통해 1억 원을 돌파하는 게 목표다.
달성하게 되면 3만 명의 어린이에게 백신을 기부하는 셈이 된다.”

자비로 연주회를 연다고 알려진 터라 취재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십 년 된 차를 탈 정도로 검소하다고 들었습니다. 벌이는 괜찮으신가요?”

“여기저기서 시간강사도 하구요. 학생들 가르치기도 합니다만 많지 않습니다.
덜 먹고, 덜 쓰면 됩니다. 사실 우리 아기 돌잔치도 안 했습니다.”

아이 이야기가 나온 김에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만삭의 몸으로 연주회를 했다면서요?”

“2013년 9회 연주회 때의 일입니다. 사실 2012년 8회 연주회를 며칠 앞두고 유산했습니다. 결혼 후 7년 만에 겨우 생긴 아기였습니다. 병원에서 아기가 숨을 안 쉬니 당장 수술을 하자고 했습니다. 회복이 더디면 연주회를 못하잖아요. 그래서 뱃속에 아기를 둔 그 상태로 연주회를 했습니다. 남들은 임신했다며 축하인사를 하는데 뭐라 말할 수 없었어요.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콘서트인데 분위기를 제가 망칠 수 없잖아요. 연주회를 마치고 다음날 뱃속의 아기를 꺼냈습니다.”

그녀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숨을 쉬지 않는 당신의 아기를 뱃속에 두고 연주를 했다는 이야기에 맘이 아렸다.

위로의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무거운 침묵이었다.

호흡을 고른 후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 일로 인해 회의가 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회의에 빠져있는데 어린 제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언제 또 연주회를 하냐고 묻는 겁니다. 스스로 남을 돕겠다는 의지가 생겨버린 제자의 기특한 마음에 힘을 얻었습니다. 연주회를 다시 준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금의 아이가 생겼죠. 만삭의 몸으로 연주한 게 그때입니다.”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무대에 섰을 때 눈물이 났다고 덧붙였다.
그건 감사의 눈물이었다고 했다.
영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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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일정 때문에 사진 찍을 준비를 해야 했다.
준비를 하며 계속 맘에 걸리는 게 있었다.
사진검색 시 그녀의 사진이 별로 없었던 게 머리에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구태여 묻지는 않았지만 사진이 거의 없는 이유도 짐작되었던 터였다.

그래서 두 가지 콘셉트의 사진촬영을 준비했다.
한 가지는 신문에 게재할 사진, 또 다른 한 가지는 그녀에게 줄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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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게재용 사진을 찍은 후, 다음 사진 준비를 하는 동안 그녀가 연주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카메라에 담았다.
잠깐의 연주에도 혼을 담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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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재를 발굴하고자 설립된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을 First class로 졸업한 그녀의 연주 혼이었다.

그녀는 그러한 자신의 연주 혼을 기부에 전력을 다해온 게다.

촬영 후 돌아가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남을 돕다 보면 더 큰 사랑이 내게 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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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 그녀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8월 27일 공연입니다. 오신다면 자리 마련하겠습니다.”

하필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다.
못 갈 형편이라 답하며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목표는 달성하셨나요?”

“여러분의 도움으로 거의 맞추어 졌습니다” 라는 답이 왔다.

‘거의’라는 말에 안타까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연주회 전에 이 뒷담화로나마 힘을 보태지 못한 미안함이었다.

유산된 아이를 품고도, 만삭의 몸으로도 연주를 했으며, 아이의 돌잔치 비용까지 기부한 그 사연을 알기에 더 그랬다.

연주회가 있던 지난 토요일(27일) 늦은 밤, 그녀와 전화 통화를 했다.
목소리가 심하게 잠겨 있었다.

“목소리가 왜 이렇게 쉬었습니까?”

“연주단원이 68명이었는데요. 이번엔 아이들이 좀 많았어요. 아무래도 큰 소리로 통제하다 보니….”

쉰 목소리에도 뿌듯함이 배어 있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목표달성 소식을 덧붙였다.
특히 누적금액을 이야기할 땐 숫자 하나하나마다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8월 초 이후에도 계속 후원금이 있었구요. 티켓과 CD와 DVD 판매금액을 합친 게 1379만 5000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누적금액이 총 1억 222만 9500원이 되었습니다. 참! 올해 연주회를 한번 더 할 겁니다. 1억 목표 달성 기념으로요.”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날짜와 장소는 정해졌습니까?”
“11월 27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홀입니다.”

과연 ‘기부천사 이상희’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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