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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하드고어한 오후 한 시 #4. 눈 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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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쿵쿵쿵 나무 문짝에 가해지는 낮고 묵직한 진동이 낡은 건물의 구조물을 타고 방 전체에 퍼졌다. 벽과 천정에 붙어있던 먼지가 들고일어나면서 씨의 눈을 찔렀다. 

“이봐, 어서 나오라고! 차근차근 얘기를 해보자고.”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씨는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먼지는 쉽게 빠지지 않아 안구에 거북살스러운 이물감을 남겼다. 

“불이라도 지르면 어떻게 하죠?” 

“그렇게 서 있지 말고 빨리 열쇠를 찾아!”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우왕좌왕 뛰어다니는 기척도 들렸다. 그들의 움직임이 남긴 진동이 신체 안쪽으로 흘러들면서 씨는 전신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집기라고는 두 개의 책상 외에 키 작은 장식장이 전부인 보잘것없고 비좁은 방이었다. 사면이 유리로 된 장 안에는 각종 공구들이 예술품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드라이버, 멍키스패너, 리머, 망치, 송곳······. 가지런히 놓인 철물은, 단단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기획실로 명명된 이 방을 배정받았을 때만 해도 씨는 한껏 고무된 상태였다. 이곳에 뼈를 묻으리라. 

손작업용 공구에 주력하는 소규모 업체일 뿐이었지만 취업 준비 이태 만에 어렵게 얻은 직장이었다. 4대 보험이 적용됐고, 24인치 모니터가 딸려있는 최신형 PC와 서랍마다 오피스 용품으로 가득 찬 책상이 그의 몫으로 주어졌다. ‘보쉬’ 부럽지 않은 일터였다. 

“당장 나오지 않으면 문을 부술 거야!” 

조용해졌나 싶더니 다시 조 팀장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렸다. 골이 단단히 난 듯했다. 

“어이, 드라이버 가져와!”

다시들 우왕좌왕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씨는 벽에 붙은 작은 거울 앞에 섰다. 군데군데 더러운 물 얼룩이 져 있었지만 씨의 모습을 반사해내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오렌지 빛 석양이 좌에서 우로 비스듬하게 핥고 지나간 씨의 얼굴은 우스운 듯 슬퍼 보였다. 비정상적일 만큼 커다란 눈이었다. 아버지를 닮은 눈이었고 할아버지를 닮은 눈이었다.

큰 것으로는 모자랐는지 앞으로 툭 튀어나온 것이 도무지 세상살이에 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두 분 모두 살아생전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다. 아버지의 경우, 악단의 밴드마스터를 할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었는데 생계를 위해 야마하 스테이지 커스텀 같은 드럼을 수입해다 팔았다. 소리가 깊고 울림이 풍부한 일제 드럼은 그러나 주 소비층의 주머니 사정과 내내 불협화음을 이루다가 창고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눈은 그렇다 치고 주름이 자잘하게 잡힌 눈꺼풀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런 큰 눈을 감싸려면 주름 말고는 방법이 없었던 걸까.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표정이 어눌하고 어리하게 변하는 것 역시 그 자바라처럼 생긴 눈꺼풀 때문이었다. 아무리 빨리 깜빡여도 많은 주름이 일제히 펴지면서 눈이 닫히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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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때문에 씨는 학창시절 내내 별종 취급을 받아야 했다. 눈이 이상하게 생긴 사람은 생각이나 행동까지 이상할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그런 자의식이 순조로운 연애를 방해했으며 사회생활에까지 불운을 몰고 온 게 틀림없었다. 이태나 사귀어 온 여자는 결혼을 코앞에 두고 이별을 통고해왔고 어렵게 구한 일자리는 곧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때 씨에게 있어 삶의 전부라고까지 여겨지던 것들이었다. 그런 만큼 그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씨는 눈 쇼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늘 그렇듯 회식의 2차 순서는 노래방이었다. 그날은 특별히 전 전무도 동행했다. 회사의 실질적인 보스라고 할 수 있는 그는 100kg에 이르는 비대한 몸집의 소유자였다. 덩치에 대비되어 유난히 작은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광채가 왠지 특별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회사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었는데 창립자인 전 사장이 세상을 뜨면서 외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고 했다. 어린놈이 노는 것만 좋아하지 통 회사 일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출근도 제대로 하지 않아 그때까지 씨도 사장이라는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자리가 정돈되자 전 전무가 손을 들어 씨를 지명했다. 살찐 성대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 톤이 유난히 낮았다. 신입이 먼저 하지.

씨는 건너건너 넘어오는 마이크를 받았다. 마이크는 달궈질 대로 달궈져 있었다. 그들이 오기 전, 벌써 누군가들이 신들린 열창으로 한껏 데워 놓은 것이다. 마이크를 들고 있으려니 뜨거운 쇠의 감촉이 이상하리만치 섬뜩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폭발이라도 했으면 좋겠군. 노래를 하느니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 모든 것을 끝장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가 되지도 않는 폭발사고를 꿈꾸는 동안, 조 팀장이 다가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이봐, 자는 거야?”

“노래를, 못합니다.”


노래를 못해? 노래를 못하다니?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노래를 못할 수가 있지? 말도 안 돼, 요즘 세상에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 어딨어? 사람들은 노래를 못한다는 씨의 고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 대부분이 사회경력만큼 두꺼운 노래방 이력을 자랑하는 아마추어급 가수들이었던 것이다.

그들뿐 아니라 요즘 사회생활 좀 한다하는 사람들 대개가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1차 예선쯤 가뿐하게 통과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노래 실력을 무슨 토플 성적마냥 기본으로 깔고들 가는 모양이었다.

위기즉발의 순간에서 눈 쇼가 떠오른 것은 정말이지 돌아가신 아버지의 보살핌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눈 쇼라니······.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명칭이었지만 그렇게 이름 붙이고 나니 마치 그런 쇼가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쇼라기보다 그저 아버지가 심심풀이 삼아 보여주던 개인기였다. 눈동자를 가운데로 모으고, 좌우로 빠르게 진동시키고, 둥글게 굴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돈 들이지 않고 어린 자식을 즐겁게 해주기에 그만한 게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외식을 시켜주는 대신 눈 쇼를 보여주었고, 동물원에 데려가는 대신 눈 쇼를 보여주었고, 용돈을 주는 대신 눈 쇼를 보여주었다.

“노래 대신 눈 쇼를 하겠습니다.”

눈 쇼? 눈 쇼가 뭐야? 그런 쇼도 있나? 다시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씨는 큰기침을 한 뒤,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이목이 집중되는 틈을 타서 씨는 재빨리 눈동자를 가운데로 모았다.

“여기를 보세요, 띠용!” 

살던 집을 내주고 지하방으로 이사했을 때, 쌀이 떨어져 라면으로 끼니를 이어야 했을 때, 공과금 납부를 미루다 기어이 전기와 수도가 끊겼을 때 아버지는 여기를 보세요, 띠용! 눈 쇼를 했다.

눈이 큰 것은 조물주의 실수도, 개인의 운 없음도 아닌 다만 눈 쇼를 하기 위한 장치라는 듯. 세상이 흰 눈에 덮이듯 온갖 걱정과 두려움이 눈 쇼에 묻혔다. 아버지 잘못이 아니었다. 눈 쇼를 이어가게 한 것은 아들의 열렬한 호응이었다.

아빠, 되게 웃겨, 또 해봐! 아버지의 눈 쇼는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어린 아들 앞에서 눈동자를 모으던 아버지처럼 씨는 눈 쇼를 하고 있었다. 스멀거리며 기어 나오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발버둥 치며 올라오는 두려움을 억누르기 위해 눈 쇼가 필요했다.

눈 쇼는 특별한 준비물이 필요 없는 대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써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눈 쇼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눈동자 모으기’의 경우, 콧등에 앉은 딱정벌레를 바라보는 기분으로 눈알을 중앙에 고정시키는 것이 방법인데 신경이 두뇌를 조이면서 혼이 달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맨 정신으로 기절한 기분이랄까. 온몸의 힘이 죽 빠지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두 번째 눈 쇼는 처음 것보다 난이도를 요구했다. 일명 눈알 굴리기 묘기! 눈동자를 좌우로 빠르게 진동시키는 기술이 필요했다. 탁구를 치듯 눈알을 좌로, 우로 연달아 주고받으면 그만이지만 이게 쉬운 게 아니었다. 똑딱똑딱, 속도가 빨라지면서 세상의 색깔이 한 데 섞이고 사물의 형체가 뭉뚱그려졌다. 재밌지, 재밌지? 아버지는 쉴 새 없이 눈동자를 굴렸다. 재밌죠. 재밌죠? 씨는 쉴 새 없이 눈동자를 굴렸다.

씨는 정신을 이탈하려는 몸을 간신히 붙잡아 앉힌 후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지만 분위기가 영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또렷이 인지할 수 있었다. 음소거 버튼이라도 누른 듯 세상이 고요했다. 의례적인 박수소리조차 없었다.

안구 운동이 남긴 둔중한 통증이 아니었더라면 씨 자신 무언가를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전 전무는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 사태를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역시 이런 것은 집에서나 먹히는 묘기란 말인가. 그럴 리가 없어. 아버지의 눈 쇼는 아주 재미있었다구. 그럼 이번에는! 씨는 입술을 앙 다문 뒤,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명 쥐불놀이 묘기! 눈가를 샅샅이 핥듯 안구를 회전시키는 것이 팁이었다. 눈 쇼의 정점이라고 할 만 했다.

재밌지, 재밌지? 아버지는 눈알을 마구 회전시켰다. 어린 씨는 깔깔 웃었다.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그런데 아빠, 안 어지러워?

눈 쇼가 끝났지만 박수소리가 없는 것은 여전했고 모든 사태가 자기들 책임이라도 되는 양 몇몇은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약간의 반응이라도 보여주기를 바랐던 씨의 간절한 소망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고요를 깨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짝짝짝. 씨가 기억하건대 정확히 세 번, 끊어내듯 치는 박수였다. 

“하하, 재밌군, 재밌어.”

전 전무였다. 전 전무가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트리자 사람들이 따라 웃기 시작했다. 덕분에 분위기는 회복되었고 사람들은 열띤 노래 경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더듬더듬 자리를 찾아 앉으며 씨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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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 1969년 경기 부천 출생.
· 인천대 국문학과, 한신대 문예창작 대학원 졸업.
· 2010년 전남일보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발표한 소설로 <예술가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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