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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 한계, 새로운 정책 수단 으로 돌파구 모색

재닛 옐런 의장(가운데)이 26일 잭슨홀 연설을 앞두고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은 총재(왼쪽),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잭슨홀 AP=뉴시스



“(시장과의) 소통에 분명히 문제가 있다.”



10년 이어진 헛발질로 신뢰 잃은 연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증권사 인사의 말을 인용해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대해 이렇게 썼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옐런 의장은 26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주최 심포지엄에서 “금리를 인상할 여건이 강화됐다”며 “경제 성장은 빠르지 않지만 고용시장의 추가 개선을 이끌어내는 데는 충분했다”고 밝혔다. 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매파적인(hawkish) 언급이었다. 그런데 정작 미국 금융시장은 심드렁한 수준을 넘어 거꾸로 움직였다. 주가는 오르고, 국채금리는 급락한 것이다.



연설 직후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이 방송 인터뷰에서 옐런의 메시지를 반복했다. 그는 “옐런의 연설은 올해 두 차례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비하라는 뜻”이라고 해설했다. 그제서야 시장이 반응했다. 국채금리가 반등하고 선물시장에서도 9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올려 잡았다. 이 같은 연준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옐런 “금리 인상” 메시지에도 시장 혼선 “연준이 경제상황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과정에서 계속 헛발질(misstep)을 하면서 경제와 정치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을 비판한 장문의 기사를 25일 게재했다. WSJ는 “연준 내부에서 ‘우리는 미국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회의감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같은 날 WSJ에 실린 기고문도 연준을 자극했다. 캐빈 워시 전 연준 이사는 ‘연준은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The Federal Reserve Needs New Thinking)’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연준의 모델은 믿을 수 없고, 정책은 변덕스럽고, 지침(guidance)은 혼란스럽다“고 주장했다.



대중의 시선도 싸늘하다. 갤럽에 따르면 미국 주요 연방기관 8곳 중 10년 새 신뢰도가 가장 크게 하락한 곳이 연준이다. 연준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2003년 53%에서 2014년 38%로 낮아졌다. 중앙정보국(CIA)이나 국세청(IRS)보다 낮다. 연준 의장에 대한 믿음도 약해지고 있다. ‘재닛 옐런 의장이 경제를 위해 옳은 일을 한다고 믿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8%만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올 4월 갤럽이 미국 성인 101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다.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 시절 70%에 달했던 신뢰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뚝뚝 떨어졌다.



연준은 왜 이토록 신뢰를 잃었을까.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미국 경제가 문제다. 이 과정에서 연준은 잘못된 예측과 진단, 이에 따른 부실한 처방으로 비난을 받았다. WSJ는 연준이 지난 10년간 세 가지 중요한 흐름을 놓쳤다고 분석했다. 먼저 연준은 복잡해진 금융시스템이 금융 거품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한 미국의 노동생산성이 장기적인 둔화에 빠졌다는 사실을 몰랐다. 마지막으로 물가상승률이 노동시장과 연계해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2005년 당시 연준 경제분석관이었던 존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금융시스템에 얼마나 많은 위험 요소가 있는지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경기 예측 능력도 형편없었다. 연방 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은 지속적으로 경제 성장을 과대 평가했다. 지난 15년간 미국 경제성장률이 연준의 전망치를 밑돈 해는 13차례였다. 지난 2~3년 동안에도 연준 위원들의 장밋빛 전망은 끊이지 않았다. 경제가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장에 지속적인 금리 인상 신호를 던졌다. 그러나 미국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연준의 목표치인 2%에 다가서지 못했고 경제 체질 개선은 미약하다.



연준에 대한 대중의 실망이 지나친 기대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다. 2011년 4월 벤 버냉키 전 의장은 연준 역사상 처음으로 가진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연준이 석유를 만들 수는 없다.” 연준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을 경계한 말이다. 그러나 전세계가 연준만 바라보는 ‘페드 와처(Fed Watcher)’가 된 것은 연준이 자초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찰스 플로서 전 필라델피아 총재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연준 의원들이 말과 행동을 통해 그들이 실제 할 수 있는 것보다 강력하다고 대중이 믿게 했다”고 지적했다.



연준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1992년부터 20년간 연준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던 앤드로 레빈 다트머스대 교수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연준의 조직구조가 낡아 대중을 위한 정책 결정을 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연준에 대한 감사를 촉구하거나 그들이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변화의 조짐은 있다. 연준은 최근 대외 소통에 부쩍 신경을 쓴다. 이번 잭슨홀 심포지엄에선 이례적인 행사가 열렸다. 25일(현지시간) 존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를 비롯한 9명의 지역 연은 총재가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인 페드업(Fed Up)과 간담회를 했다. 페드업은 연준 정책을 비판하면서 2014년 이후 에클스(워싱턴DC에 있는 연준 본관) 앞에서 시위를 해온 단체다. 이날 간담회에서 연준의 인적 구성이 남성과 백인, 은행권 출신등으로 치우쳐 있다는 지적에 대해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은 총재는 “다양성 면에서 상당히 안 좋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런 스킨십이 연준의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그들의 정책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준 내부에서조차 정책 소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만큼 쓸만한 카드가 많지 않다. 기존 통화정책에 대한 회의감과 부담감도 연준 내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는 최근 “우리 자녀와 손자가 지금의 우리보다 잘살게 될지 여부는 연준의 금리인상 여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 초 연준에 합류한 카시카리 총재는 “시장 참여자들이 지나치게 연준에 주목하고 있다”며 “시장의 관심이 단기적인 통화정책이 아닌 중앙정부의 재정정책으로 모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옐런 의장 역시 올 6월 뉴욕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백악관과 의회가 세금과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책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연준의 통화정책에만 지나치게 의존했다”고 말한 바 있다.



물가 목표치 올리고 헬리콥터 머니도 고려 옐런 의장의 잭슨홀 연설이 주목받은 것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시장은 주로 그가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앞당기는 매파(hawkish) 입장이 강화된 점에 주목했지만 옐런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의 연설문 제목은 ‘연준의 통화정책 도구: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였다. 그는 “균형금리가 계속 낮은 수준으로 유지될 것임을 감안해 다음번 경기 침체와 맞서 싸울 새로운 도구가 추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큰 변화다. 금융위기 이후 연준 의원들은 과감한 통화정책을 통해 경제가 ‘과거의 정상(Old Normal)’으로 돌아갈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연준 의원들은 이런 정상화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WSJ는 “연준 의원들이 새로운 정상(New Normal)에 대비하고 있다”며 “이는 양적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들이 앞으로 더욱 흔하게 사용될 것임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연준 내부에서는 자연이자율(중립금리), 인플레이션 타겟팅 조정, 헬리콥터 머니 등을 언급하는 인사가 늘고 있다. 존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가 대표적이다. 그는 잭슨홀 심포지엄이 열리기 열흘 전 연은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미국의 경제 상황이 변하고 있다”며 “이에 맞춰 연준도 통화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연이자율이 역사적으로 가장 낮고 앞으로도 낮게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며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자연이자율은 저축과 투자의 균형을 잡아 경제가 완전 고용과 안정적인 인플레이션을 유지하는 금리를 말한다. 윌리엄스 총재가 제시한 새로운 접근법은 현재 2%인 인플레이션 타겟팅을 상향조정하자는 것이다. 그는 “가령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3%로 높이면 명목금리(실질금리+물가상승률)가 4%로 높아진다”며 “이는 연준이 금리 인하를 시도할 수 있는 폭이 3%포인트에서 4%포인트로 커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연준의 새로운 인플레 목표치가 4%로 될 것으로 내다본다. 이 경우 연준이 0%로 금리를 내리면 실질 정책금리 수준은 -4%까지 떨어져 경기 부양 효과가 더 커진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높이더라도 연준은 계속 낮은 물가 걱정에 시달릴 것이고, 낮아진 실질 자연이자율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라며 “2% 달성도 못하는 연준이 목표를 4%로 높인다고 이뤄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헬리콥터 머니에 대한 논의도 부상하고 있다. 헬리콥터 머니는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정부가 지출할 수 있게 제공하거나 국민에게 직접 지급하는 부양 정책을 말한다. 헬리콥터 머니가 기존 재정·통화 정책과 다른 점은 늘어난 통화량이 다시 중앙은행으로 회수되지 않고, 정부 부채도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종의 공짜돈이다. 헬리콥터 머니는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면서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만지작거리는 카드다.



옐런 의장은 지난 6월 FOMC 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 경제가 극심한 침체에 빠지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 오면 헬리콥터 머니 정책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잭슨홀 연설에서는 광범위한 자산 매입과 물가 목표치 상향 등을 언급하며 “통화정책 측면에서 다른 중앙은행이 적용하고 있는 추가적인 정책 수단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꺼낼 수 있는 카드라는 얘기다.



잭슨홀 미팅 미국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 중 하나인 캔자스시티연방은행이 1978년부터 매년 한 차례 주최하는 경제정책 심포지엄이다. 1982년 당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인 폴 볼커가 처음으로 참석한 후 세계적인 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벤 버냉키 전 의장은 2010년과 2012년 1~2차 양적완화 정책을 예고하는 자리로 활용했다. 세계 40여 개국 중앙은행장과 경제학자, 투자자 등 120여 명이 초청받는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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