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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열풍 속 경직된 마케팅 … ‘한국형’에 맥 못추고 쓴맛

서울역에서 나란히 영업 중인 맥도날드와 롯데리아. 미국계 패스트푸드점은 경직된 마케팅으로 토종 프랜차이즈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김유경 기자



1988년 3월 29일,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맞은편 로데오거리에 맥도날드 1호점이 들어섰다. 맥도날드 압구정점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주소는 신사동(661-2번지)이다. 개점 당일 2층 건물의 옥상에 걸터앉은 거대한 ‘로널드 맥도널드’(맥도날드의 광대 캐릭터) 인형은 낯설고 괴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가장 유명한 햄버거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이 일대는 장사진을 이뤘다. 흩날리는 오색 풍선과 함께 메뉴가 적힌 책받침 등 어린 고객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판촉물도 넘쳐났다. 서울 삼성동에 거주하는 김주경(38)씨는 “맥도날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두툼한 2층 햄버거(빅맥)는 문화적 충격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입을 크게 벌려도 베어 물 수 없는 큰 크기의 햄버거와 달고 짭조름한 감자튀김. 맥도날드는 패스트푸드의 신세계를 선보였다.



줄줄이 한국 떠나는 미국계 프랜차이즈

화려하게 데뷔한 맥도날드는 20여 년간 승승장구했다. 92년 부산, 96년 대구에 각각 매장을 열었고 진출 12년 만인 2000년엔 200호점을 개설했다.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행하던 것이 하나의 음식 문화로 정착했다. 지난해 맥도날드가 한국에서 올린 매출은 6033억원. 1년간 1억3711만 개의 빅맥(단품 4400원 기준)이 소비된 셈이다. 국민 1인당 2.5개꼴. 맥도날드보다 4년 앞선 84년 한국에 입성한 버거킹·KFC 등도 빠르게 성장했다. 시장통 닭튀김을 햄버거·피자·치킨이 대체했다. 맥도날드·버거킹·KFC·피자헛 등 4대 미국계 프랜차이즈 매장은 전국적으로 1100여 개에 달한다.

1988년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맥도날드 1호점의 개점식 모습. [사진 맥도날드코리아]



20여 년간 승승장구 화려한 날은 가고그러나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이들 업체는 현재 매각을 기다리는 처지다. 2010년대 들어 일기 시작한 웰빙 열풍에 밀려 패스트푸드는 정크푸드라는 인식이 퍼졌고, 현지화를 외면한 경직된 마케팅 탓에 수익성이 급전직하했다. 소비자의 감성·식습관 등 세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숫자로도 여실히 나타난다. 맥도날드의 지난해 매출은 역대 최고였지만 13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고객이 줄자 가격을 내리는 등 출혈경쟁을 벌인 탓이다. 불과 2년 전에 30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린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피자헛 역시 2012년 27억원, 2013년 1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지만 2014년에는 3억여원의 손실을 봤다. KFC도 2013~2015년 2년 새 매출은 200억원 늘었으나 당기순이익은 106억원에서 1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성장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세 회사 모두 한국법인 매각에 나섰거나 매각설에 휩싸여 있다. 맥도날드는 CJ그룹, KG·NHN엔터테인먼트 컨소시엄 등과 매각 논의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 본사가 매각 후에도 프랜차이즈 및 브랜드 관리, 식재료 구매 등을 간섭하겠다고 나서 매각에 난항이 예상된다. 가격 협상도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KFC는 아직까지 인수에 관심을 갖는 회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피자헛도 최근 회사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매각설이 흘러 나왔다.



미국계 패스트푸드 업체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세태의 변화다. 미국의 패스트푸드나 패밀리레스토랑은 경제 규모가 커지고 문화소비 욕구가 팽창하는 지역을 공략해 왔다. 식습관을 포함한 미국 문화에 대한 선망도 패스트푸드 시장을 키우는 일종의 밴드 왜건 효과를 발휘한다.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은 ?현대문명진단?에서 80년대 세계 각지에서 분 햄버거 열풍에 대해 “먹는 순간만큼은 미국인이 된 기분”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미국계 프랜차이즈가 시장을 주름잡았던 1980~2000년대는 문화소비 욕구가 팽창하던 시절이다. 당시 유학생을 중심으로 미국의 음식과 패션·음악 등이 전파됐고, 이들이 많이 거주하는 강남 지역에서 대부분 미국계 프랜차이즈가 태동했다. 뉴욕프라이즈·스테프핫도그·LA팜즈 등 한때 유행을 불러일으킨 브랜드 모두 신사동·삼성동에 첫 매장을 열었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성장하고 소비 패턴이 다양화하면서 미국계 프랜차이즈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폭발적인 인기만큼 관심도 빨리 식었다. 이제 ‘미국을 먹는 시대’는 유통기한이 다한 셈이다. 최근 SPC그룹이 들여온 미국의 수제 햄버거 브랜드인 ‘쉐이크쉑’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중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가졌는지는 미지수다. 수제 햄버거 시장에선 토종 브랜드인 크라제버거와 미국계인 버거비·오케이버거 등이 10여 년 전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미 열풍이 한 번 지나간 시장이라 다시 꽃을 피우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미국계 프랜차이즈는 경직된 마케팅을 고수하며 실패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지적한다. 한국맥도날드는 본사의 브랜드 정책 탓에 새로운 메뉴 개발이나 광고 등에 제약을 받았다. 본사는 글로벌 브랜드로서 통일된 마케팅 정책과 메뉴를 요구했다. 이에 비해 롯데리아 등은 김치·밥 등을 활용한 한국적인 신메뉴 개발에 나서며 변화하는 소비자의 입맛을 공략했다.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인수한 버거킹도 할라피뇨버거 등 매운맛을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를 겨냥했다. 또 유명 배우를 모델로 기용하며 맞춤형 마케팅을 펼쳤다. 2013년 65억원이었던 버거킹의 순이익은 2014년 101억원으로 늘었다. KFC는 뒤늦게 징거버거 등 일부 세트메뉴의 가격을 1000~1200원 낮추고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 양념 치킨도 선보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하고 있다.



日·中서도 고전하는 미국계 프랜차이즈일본 상황도 비슷하다. 71년 일본에 진출한 맥도날드는 20여 년간 1위 브랜드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모스버거 등 현지 업체가 소비자 취향에 발맞춰 오코노미야키·야채튀김·와규버거 등의 메뉴를 개발하면서 1위 자리를 내줬다. 수제 버거의 인기가 커지며 시장 지위는 날로 위축되고 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맥도날드의 매각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중국에서도 낮은 성장 가능성과 까다로운 인수 조건 탓에 매각 작업이 더디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롯데리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프리미엄 브랜드로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는 데 비해 미국계 프랜차이즈는 현재의 브랜드 가치만 고집한다”며 “글로벌 브랜드라는 점은 요즘처럼 시장 상황이 급변할 때는 오히려 족쇄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때마침 불어닥친 웰빙 열풍도 몰락을 부채질했다. 건강을 먼저 챙기기 시작한 소비 의식의 변화는 패스트푸드를 비만·고혈압 등 성인병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럼에도 미국계 프랜차이즈는 높은 사업 비용을 유지하며 브랜드 가치 지키기에 몰두하고 있다. 맥도날드 사업주가 부담해야 하는 가맹비와 보증금·기타비용은 평균 7억5000만원. 경쟁 상대인 롯데리아(3억9316만원)의 두 배에 가깝다. KFC는 25억7375만원으로 교촌치킨(1억342만원)의 25배다. 피자헛(4억7852만원)도 미스터피자(4억4885만원)에 비해 사업부 부담 비용이 다소 높다. 이런 현상은 90년대 중반 한국에 진출해 2000년대 외식 시장을 강타했던 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먼저 나타났다. 패밀리레스토랑은 이전까지 한국에서 맛보기 어려웠던 다양한 스테이크와 파스타 메뉴로 국내 소비자의 구미를 당겼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맛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나머지 2010년대 들어 대부분 한국을 떠났다. 토니로마스·마르쉐·시즐러·베니건스·스카이락 등이 대표적이다. 비싼 가격에 매장 확장을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시장 확대에 실패했다. 베니건스 등 일부 업체는 매각을 추진했으나 사려는 곳이 없어 결국 사업을 정리했다. 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이 한국 시장에 머문 기간은 평균 18년에 불과하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국을 떠난 브랜드의 인기 메뉴는 10여 년째 변하지 않았었다”며 “신메뉴 개발 등 소비자 공략을 게을리했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국내 기업이 운영하는 빕스와 애슐리는 뷔페 형태의 샐러드 바를 운영하는 등 한국 소비자의 기호에 맞췄다. 한국보다 한 발 앞서 패밀리레스토랑이 유행한 일본에서도 무제한 드링크 바와 24시간 영업을 하는 레스토랑이 속속 생겨나며 미국식 패밀리레스토랑은 시장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최정호 미국 세인트존피셔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 업체들은 감성적이고 유행에 민감한 한국의 소비 심리를 공략하지 못해 충성고객층 발굴에 실패했다”며 “진출 국가의 입맛에 맞는 음료를 개발하고 현지 커피농장을 운영하는 등 스타벅스의 맞춤형 전략·전술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토인 미국에서도 패스트푸드와 패밀리레스토랑의 인기는 시들하다. 맥도날드는 노인과 히스패닉 등 저소득층 소비자의 충성도가 여전히 높다. 하지만 쉐이크쉑·파네라 등 웰빙 푸드를 앞세운 ‘패스트 캐주얼’ 프랜차이즈에 밀려 미국 내 매출은 2014년 3분기부터 올 1분기까지 7분기 연속 감소했다. 이 때문에 맥도날드는 지난해 8월 고객이 식재료를 고를 수 있는 시그니처 버거를 선보였고, 프랑스에선 베이글 버거를 내놨다. 큰 변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KFC 등 일부 브랜드는 프랜차이즈를 대신해 라이선스 영업을 확대하는 추세다. 푸드트럭·가판점 등에 KFC 일부 메뉴만을 판매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주고 햄버거와 치킨 등을 공급하는 형태다. 라이선스에는 음료수 컵과 휴지 등 KFC 로고가 들어간 소모품도 포함돼 있다. 땅값이 비싸 패스트푸드·패밀리레스토랑이 입점하기 어려운 뉴욕 맨해튼 등지에서 최근 성행하고 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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