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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권력승계 때마다 희망 섞인 붕괴론 등장했지만 …

북한 붕괴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 가운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최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AM) 시험발사 현장을 방문했다고 조선중앙TV가 지난 25일 보도했다. [사진 조선중앙TV 캡처]



소련이 붕괴된 이후 25년째 한국 사회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북한 붕괴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언급한 이후부터다. 박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주요 인사들까지 탈북과 외국으로 망명하는 등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이며 체제 동요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태영호 공사 망명 등 북한 핵심층의 이탈이 체제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라고 참모들이 전했다.



다시 고개 드는 북한 붕괴론

박 대통령이 직접 북한 붕괴론를 제기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북한의 주요 인사들의 잇따른 국내 입국이다. 박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서기실 여론조사팀 간부와 러시아 주재 북한 대사관의 3등 서기관, 태 공사 등의 국내 입국을 북한의 심각한 균열 조짐으로 받아들였다. 둘째, 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압박이 북한 체제의 심각한 균열 조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의 올해 대북 메시지를 보면 북한 붕괴론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국정연설에서 “북한 정권을 반드시 변화시켜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깃들도록 만들 것”이라며 처음으로 ‘정권 변화’를 언급했다. 지난 3월 국가조찬기도회에선 “북한 정권이 무모한 핵 개발을 포기하고 북녘 동포들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폭정을 중지하도록 전 세계와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급기야 지난 6월 ‘6·25전쟁 참전 유공자 위로연’에선 “북한이 핵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깨닫게 하겠다”고까지 말했다.



94년 YS “남북 체제 경쟁은 끝났다”박 대통령의 북한 붕괴론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최근 해외 주재 고위층의 탈북이 북한 체제가 무너질 전조라기보다 북한의 잘못된 정책의 귀결”이라고 말했다. 외교관들이 해외 파견 근로자들처럼 외화벌이에 종사하게 하고 달러를 벌어 바치라고 압박하니 이를 견디기 힘들어 탈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한 북한 붕괴론이 대북정책의 전면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데 입을 모았다. 그 이유는 군대를 유지하고 전쟁을 준비한다고 해서 전쟁이 대북정책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기 때문이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 붕괴가 그 발생 시기를 미리 알 수 없는 사건이지 의도된 정책의 결과가 아니다”며 “소련 해제나 독일 통일과 같은 역사적 사건도 기획되지 않았고 그 시기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북한 붕괴론은 과거 정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김일성·김정일 사망을 전후해 북한 붕괴론이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북한 붕괴론이 합리적·객관적인 주장이라기보다는 희망적·주관적인 판단에 따르는 경향을 보였다. 김일성 사망은 1994년 7월로 김영삼 정부 때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94년 8월 “남북의 체제 경쟁은 끝났다”며 “언제 갑자기 통일이 눈앞에 닥쳐올지 모른다”고 말해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 대통령은 오랜 세월 동안 북한을 이끌어 온 지도자가 없어진 상황에서 북한이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김일성=북한’이라는 등식 속에 살았던 한국에 ‘북한 붕괴론’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당연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의 생각은 돈 오버도퍼의 저서 『두 개의 한국』에서 잘 드러났다. 오버도퍼는 “정종욱 대통령 안보보좌관이 앤서니 레이크 미국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북한이 6개월 내지 2년 안에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아울러 김일성의 후계자인 김정일에 대한 김 대통령의 평가도 부정적이었다. 김일성 사망 직후 TV 화면에 비친 김정일의 모습은 마르고 파리해 보였다. 갈루치·위트·폰먼의 공동 저서 『북핵 위기의 전말』에서 “김 대통령은 ‘김정일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상태도 정상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기록했다. 김영삼 정부가 이처럼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은 김일성의 급작스러운 사망에다 북한의 경제 사정도 비참했기 때문이다. 95년부터 3년간의 연속된 가뭄·홍수 등 자연재해는 북한의 곡물 생산량을 사상 최저 수준으로 감소시켰다. 식량 배급체계가 붕괴되고 아사자가 200만 명에 달했다. 도처에서 재앙의 조짐을 보이면서 붕괴가 임박했다는 예측이 난무했다.



여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97년 황장엽(1923~2010)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망명이었다. 북한 최고위직이자 ‘주체사상의 대부’였던 황 전 비서의 망명은 ‘주체사상의 망명’으로 여겨져 북한 체제 붕괴의 조짐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비춰졌다. 이 사건은 북한 통치 엘리트 간의 권력투쟁과 김일성 사후 혼란상을 세상에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황 전 비서는 서울 도착 성명에서 “북조선은 기형적 체제로 변질됐으며 경제는 전반적으로 마비상태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김일성 사망 뒤 기승을 부렸던 북한 붕괴론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김정일 정권의 수명은 기껏해야 3년이라는 일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듯했다.



하지만 김정일은 황 전 비서의 망명을 포함한 정치적 붕괴 요인을 사상통제 강화와 군부 장악을 통한 공권력의 활용, 정치범 수용 등으로 극복했다. 경제적 요인은 97년부터 국제기구·한국·중국·일본 등 외부로부터의 지원으로 위기를 넘겼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정치적·경제적 붕괴 요인은 있었지만 사회적 요인인 정권에 대한 불만이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의주 등 일부 지역에서 폭동이나 체제 반대 조직 검거 등의 소문이 있었지만 대규모로 조직화된 저항이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정권에 대한 불만을 통제하는 공권력과 철저한 사상교양이 북한의 사회체제를 ‘불안정 속의 안정’으로 유지시켰기 때문이다.



동유럽의 체제 변화를 분석한 김달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동유럽 국가들은 ▶공산당이 지향하는 목표의 상실 ▶체제 정통성의 위기 ▶경제적 위기 ▶반체제 운동과 지배 엘리트 내부의 갈등 ▶민중의 봉기 등이 체제 변화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북한에서는 반체제 운동과 민중의 봉기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배경에는 주체사상에 따른 교육이 있었다. 그 교육을 담당한 사람이 김기남(87) 노동당 부위원장이다. 김기남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의 정당성 확보와 우상화 선전을 주도했다. 그래서 ‘북한의 괴벨스(독일 나치 선전장관으로 선동정치 주도)’로 불린다. 북한은 분단 이후 70여 년 동안 김기남 등의 노력으로 정신면에서 사상교육을 강화하고 물리적으로 공권력을 활용한 이중적인 체제 안정시스템을 구축했다. 정치학자 가브리엘 알몬드와 시드니 버바 등이 “교육이 민주주의를 고양시킨다”고 주장했지만 북한은 오히려 교육을 통한 일방적인 독재체제의 안정화를 이뤘던 것이다.



잠시 퇴조했던 북한 붕괴론이 다시 한국 사회에 재등장한 것은 2008년 8월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이 나오면서부터다.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은 2009년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극심한 경제난과 외화 부족을 거론하며) 북한은 잠시 동안은 버틸 것이나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라며 “한·미 양국은 기다리면서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2010년 외교부 차관 시절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북한 경제는 이미 경제적으로 파산했으며 김정일 사후 2~3년 내에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북한은 1·2차 핵실험 이후 유엔 대북제재로 내부적으로 경제 침체가 가중됐고 외부적으로 비우호적인 국제환경으로 인해 항시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럼에도 북한이 정치적인 안정을 유지했던 것은 김정일이 절대적인 권위를 누리며 북한을 통치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의 유고가 북한 체제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으며 그 결과로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명박 정부는 김일성 사망 때와 마찬가지로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김정일이 김정은 후계 권력 기반 구축을 완성하지 못하고 조기 사망했고 김정은의 취약한 장악력과 지적 미성숙, 그리고 권력기관 및 엘리트 간 권력투쟁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 결과 김정은의 지위는 불안정한 토대 위에 있게 되고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동당이 군대 통제, 쿠데타 발생 어려워이런 부정적인 전망은 권력승계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포인트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역사를 보더라도 권력승계 과정에서 심한 권력투쟁이 벌어진 예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군대가 동원돼 경쟁 세력 간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경우는 없었다. 마오쩌둥(毛澤東) 사후 중국에서 권력승계 과정에 군대가 동원된 경우에도 반대 세력을 체포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지 그 과정에서 대규모 유혈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북한은 특히 노동당이 군대를 통제하고 있어 쿠데타가 성공하기 어렵다. 김정은의 후계 구축은 2009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김정일이 사망한 2011년 12월까지 3년에 걸쳐 진행됐다. 김정일 유고 상황 때 체제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미 구축했던 것이다.



지금 다시 떠오른 북한 붕괴론은 과거 정부 때보다 근거가 약한 편이다. 과거 북한 붕괴론이 범했던 오류는 단편적이고 불확실한 정보들에 근거한 주장들을 제기했으며 최고 권력자의 유고와 체제 붕괴를 거의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과거 정부는 그나마 최고지도자의 사망으로 그 이유를 설명했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니다. 천 이사장은 “태 공사의 망명을 곧바로 70년 동안 유지돼 온 북한 체제가 급격히 흔들리는 시그널로 보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체제 붕괴 요인의 하나로 거론되는 경제 위기도 현재 북한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 경제는 지난해 성장률이 -1.1%를 기록했지만 2011~2014년 연속 플러스 성장률을 보였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 체제가 곧 붕괴될 정도는 아니다”며 “지금 북한 경제는 오히려 시장경제의 비중이 크게 신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대북 압박의 명분을 위해 북한 붕괴론을 이용하면 남북관계의 정상화는 더욱 멀어진다”고 조언했다.



 



 



고수석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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