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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활, 막강 멘탈 빚어낸 ‘양궁의 나라’ 두 주역

1 명품 활 ‘WIN&WIN’을 만든 박경래 대표는 “스포츠 용품 중 가장 예민한 게 활”이라고 말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에서 가장 신경쓰는 건 특정 국가가 특정 종목의 금메달을 독식하는 경우다. 경기의 흥미와 회원국들의 의지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양궁이 대표적이다. IOC는 세계최강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수시로 경기 방식을 바꿨다. 그럼에도 한국 양궁은 2016 리우 올림픽에서 남녀 개인·단체전을 석권해 4개 금메달을 싹쓸이했다.



[2016 스포츠 오디세이 -15-] ‘세계 최강’ 활 만드는 남자, 마음 만드는 여자

한국 양궁은 왜 이렇게 강할까. 활을 잘 쏘는 동이(東夷)족 후예라서, 젓가락질로 다져진 손끝 감각이 남달라서,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정의선 부회장 부자(父子)를 연이어 수장으로 모신 대한양궁협회가 복이 많아서, 파벌을 배제하고 실력으로 끝장 승부를 보는 대표선수 선발 방식 덕분에…. 모두 맞는 말이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의 활쏘기 기술은 막상막하다. 결국 얼마나 좋은 장비(활)를 갖고, 얼마나 담담하게 쏘느냐(심리)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그래서 스포츠 오디세이는 ‘세계최강 코리아’의 활을 만든 남자, 막강 궁사들의 ‘멘탈’을 만든 여자를 만났다.

2 한국스포츠개발원에서 만난 김영숙 연구원은 “단체전의 경우 ‘나 때문에 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를 적절하게 풀어주는 게 내 역할이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장진영 기자



명품 활 발판으로 고가 자전거에 도전윈앤윈스포츠 박경래(60) 대표는 ‘윈앤윈(WIN&WIN)’ 이라는 브랜드의 활을 만든다. 리우 올림픽 한국 여자팀 3명(장혜진·기보배·최미선)은 모두 윈앤윈 활을 썼다. 남자 개인전 금메달을 딴 구본찬도 윈앤윈을 들었다. 이승윤은 미국산 호이트, 김우진은 MK(국산 삼익의 후신)를 썼다. 4개 금메달 현장에 모두 윈앤윈이 주역이었다.



윈앤윈은 세계 양궁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명품 활이다. 리우 올림픽에서는 출전 선수의 40% 정도가 윈앤윈을 썼다. 전체 숫자에서는 호이트에 약간 뒤졌지만 8강-4강-결승으로 올라갈수록 윈앤윈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여자 개인 16강전에서 장혜진과 맞붙은 북한의 강은주도 윈앤윈을 썼다.



박 대표는 양궁 국가대표 출신으로 1988 서울 올림픽 남자 대표팀 코치로 단체전 금메달을 일궜다. 선수와 지도자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활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92년 윈앤윈코리아를 설립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탄소(카본) 소재 활을 개발해냈다.



활 성능이 성적과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을까. 그가 차근차근 설명했다. “활의 성능은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화살이 얼마나 빠른가, 쏜 대로 정확하게 탄착군이 형성되는가, 실수를 얼마나 커버해 줄 수 있는가. 이 세 가지는 기계로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어요. 우리 활은 세 부분에서 탁월한 수치를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얼마나 느낌이 좋은가 하는 건데 이건 매우 주관적이죠. 활의 성능 차이는 미세하지만 그 차이가 메달 색깔을 바꿀 수 있어요.”



윈앤윈 기술의 정수는 카본나노튜브(CNT)라는 신물질을 카본 원단을 만들 때 뿌려주는 것이다. CNT에도 세 종류가 있는데 어떤 CNT를 어떻게 뿌려주느냐에 따라 제품의 질이 확연히 달라진다고 한다.



윈앤윈은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호이트의 강력한 도전을 받았다. 박 대표는 “지난 6월 터키 양궁월드컵에 갔더니 유럽 선수들 대부분이 호이트를 쓰고 있었어요. 호이트가 물량 공세를 편 거죠. 우리는 그럴 형편이 못 되니 품질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었죠”라고 말했다.



윈앤윈의 지난해 매출은 300억원 정도다. 수출이 내수보다 훨씬 많다. 한국이 세계 최강국이지만 양궁 선수는 1500명 선에서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왜 그럴까. “한국 사람들의 양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세계 최곱니다. 기회만 있으면 쏴 보고 싶어하죠. 그런데 전국에 양궁장이 5개가 안 됩니다. 배우기도 어렵고, 대회도 별로 없어 지속적인 동기 유발이 안 되죠.”



2013년 박 대표는 나노카본 소재 기술을 바탕으로 자전거에 도전했다. 위아위스(WIAWIS)라고 이름 붙인 고가 자전거는 수입 제품 일색인 시장에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가볍고 가속력이 좋은 위아위스는 최고 800만원을 넘는데도 지난해 30억원 어치가 팔렸다. 올해 1월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주니어 사이클 대회에서 위아위스를 탄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 16개 중 11개를 휩쓸었다. 2012 런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사비네 스피츠(독일)도 위아위스를 타고 리우 올림픽에 출전했다.



최근 나이키가 골프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했다. 대표 모델인 타이거 우즈의 부진이 매출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박 대표는 “스포츠 용품은 전문가의 필요와 간절함에서 우러나온 성능이 가장 중요합니다. 천하의 나이키라도 제품력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죠”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활 이름도 위아위스로 바꿨다. “명품 활 윈앤윈의 명성을 바탕으로 위아위스라는 통일 브랜드를 키울 겁니다. 스키·골프채 등으로 영역을 넓혀 한국에서도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가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습니다.”

한국 양궁 대표팀은 리우 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남녀 개인·단체전에 걸린 금메달 4개를 모두 휩쓰는 쾌거를 이뤘다. 왼쪽부터 최미선·장혜진·기보배·이승윤·구본찬·김우진 선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구본찬 "너무 긴장, 거시기도 떨려"리우 양궁 대표팀의 문형철 총감독은 “우리보다 준비를 더 많이 한 팀이 있으면 금메달을 가져가도 좋다”고 했다. 1점이라도 더 올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했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수들의 심리를 체크하고 매만지는 역할은 김영숙(43) 박사(한국스포츠개발원 연구원)가 맡았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와 서울대에서 스포츠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2011년부터 양궁 대표팀을 돕고 있다. 김 연구원은 “심리상담, 심리기술훈련, 영상기반 시뮬레이션, 루틴 카드 활용, 뉴로피드백(뇌파 측정) 등 최신 이론과 첨단 과학기술을 망라했죠”라고 말했다.



영상기반 시뮬레이션은 올림픽 양궁장의 대기실부터 경기장까지 영상을 찍어온 뒤 거기에 맞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었다. 태릉선수촌에는 리우와 똑같은 형태의 양궁장 세트를 만들어 훈련을 했다. 리우 양궁장은 지면에서 1m 정도 올라간 단상에 발사대가 있고, 과녁 뒤편은 초록색 칠을 했다.



양궁 대표팀의 상징이 된 ‘야구장 소음 훈련’도 빠지지 않았다. 그 동안은 프로야구 잠실 낮 경기에 맞췄지만 이번에는 고척 스카이돔에서 야간 훈련을 했다. 리우 올림픽 결승이 밤에 열리기 때문이었다. 관중들에게 “소음 훈련을 해야 하니 좀 시끄럽게 떠들어 주십시오”라고 장내 방송을 했고, 야구단 마스코트 인형들이 선수들의 신경을 자극했다.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4~6위를 한 선수들이 ‘가상 적군’이 되어 대표팀과 모의 시합을 했는데 남자는 대표팀이 졌다고 한다.



‘루틴 카드’에는 활을 쏠 때의 루틴(일관적인 동작이나 행위)을 적어 놓는다. 선수들은 경기 틈틈이 이 카드를 꺼내보며 루틴을 확인한다. 카드에는 반드시 체크해야 할 기술 요소, 그리고 자신감을 심어주는 짧은 문구나 10점 과녁 정중앙에 화살이 꽂힌 사진 등이 담겨 있다.



리우에 동행한 김 연구원은 선수들의 불안감을 줄여 주고, 긴장감을 긍정의 에너지로 바꾸는 데 신경을 썼다고 한다. 선수들은 “너무 긴장해 점심에 먹었던 게 넘어오고, 위산까지 역류하고, 화장실 가고 싶어서 혼났어요”라며 솔직하게 자신의 상태를 털어놨다. 넉살이 좋은 구본찬은 “너무 긴장돼 거시기까지 떨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장혜진은 기도로 마음을 다스리고, 경기 중간중간 루틴 카드를 자주 봤다고 한다.



기보배는 ‘보신탕 댓글’에 시달렸다. 한 연예인의 어머니가 인터넷에 기보배가 과거에 보신탕을 먹었다며 비난과 욕설을 퍼붓는 글을 올린 것이다. 김 연구원은 “아차 싶어서 다음날 슬쩍 물어봤죠. 기보배 선수가 ‘보긴 봤는데, 경기에 도움 안 되는 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하더라고요. 역시 큰 선수다 싶었죠. 전혀 심리적 동요가 없었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들려줬다.



리우 올림픽 펜싱에서 극적인 역전 금메달을 딴 박상영이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혼잣말을 한 게 화제가 됐다. 김 연구원은 혼잣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혼잣말은 생각보다 효과가 커요. 심리학에서 자기충족예언이라고 하는데, 말을 하면 상상하게 되고, 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죠. 우리 선수들도 ‘내가 최고다’ ‘이것만 하자’ 같이 자신감을 불어넣는 혼잣말을 많이 했지요.” 기보배는 ‘바람도 내 편이다’고 중얼거렸다. 통제 불가능한 변수인 바람마저 나를 돕는다는 자기 암시다. 김우진은 ‘들면 쏘자’는 혼잣말을 한다. 일단 활을 들면 너무 재지 말고 과감하게 쏘겠다는 의미다.



심리 훈련은 다른 나라에서도 한다. 왜 한국팀만 그 덕을 제대로 본 것일까. 김 연구원의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기술이 확실하게 받쳐줘야 심리 훈련도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우리 양궁 지도자들의 코칭 능력은 정말 뛰어납니다. 여기에 양궁협회의 세심한 지원, 6개월간 8차례 선발전을 치르며 경쟁을 즐길 줄 알게 된 선수들이 있었죠. 이 모든 게 혼연일체가 됐기에 최고의 성과를 냈어요. ‘세계최강 팀’에서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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