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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인당수 누비더니 해안개발로 대 끊길 판

서해 백령도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는 잔점박이물범의 모습. [중앙포토]



인당수가 어디일까? 전래 소설로 유명해진 지리적 명칭에 무슨 상품가치가 있는지, 몇몇 지자체에서 인당수 쟁탈전에 나섰다. 설화를 바탕으로 심청이 제 고장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전남 곡성군은 바다를 가진 전북 부안군을 끌어들여 2000년부터 인당수 논쟁을 부추기지만 인천시 옹진군은 시큰둥하다. 맑은 날 백령도에서 황해도 장산곶을 바라보는 해역이라고 심청전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건만 옹진군은 이미 선점했다고 믿기 때문일까? 백령도 용기포항을 감싸는 야트막한 산의 꼭대기에 작은 정자가 보인다. 1999년에 완공한 심청각이다.



[동물도 이웃] 잔점박이물범

백령도 인당수의 물살은 빠르다. 물살이 빨라도 물고기가 많으니 예로부터 접근하는 어선도 많았겠지만 두려웠을 터. 격노하는 용왕님을 어떻게 달래야 할까? 용왕님은 아무래도 남성이겠지? 젊은 처자를 수장하는 제례가 남성 주도로 은밀하게 횡행하지 않았을까? 심청전은 그 대목에서 효도 모티브를 신파조로 끌어내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인당수에 빠진 어부는 백령도 연화리의 연꽃무리에 떠올랐다는데, 아무래도 햇볕에 그을린 어부보다 아리따운 13살 심청이 출연해야 소설도 판소리도 인기가 높겠지.



물갈퀴와 지느러미가 없는 사람은 빠른 물살을 이기지 못하지만 물개는 사정이 다를 터. 물고기가 넘실대는 바다에 격랑이 일어도 아랑곳하지 않았을 텐데, 물개, 아니 잔점박이물범이 그랬다. 인당수를 제 마당처럼 출몰하며 생태계가 허용하는 만큼 자손을 늘렸을 것이다. 생김새가 비슷한 물개나 물범은 종류가 다채롭다. 대부분 겨우내 바다가 얼어붙는 해역에 새끼를 낳고 활동범위가 넓은데, 비교적 몸집이 작은 잔점박이물범은 무슨 사연이 있기에 팔자에 없을 백령도 해역을 찾아왔을까?



 



다른 물개·물범과 달리 황해에 외롭게 정착최초의 어부가 접근하기 한참 전부터 백령도 물개바위를 기반으로 황해를 누볐을 잔점박이물범 무리는 오호츠크해 빙원에서 긴 겨울을 보내던 조상의 후손일지 모른다. 까마득한 옛날의 어느 봄날, 빙원에서 떨어져 나간 커다란 얼음조각 위에 새끼를 낳아 키우던 잔점박이물범 선구자가 해류를 따라 한반도 남해안까지 내려갔고 어느 정도 자란 새끼들과 독도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가려다 실수로 백령도 인당수에 닿았을지 모른다.



 

잔점박이물범 [그림 박성곤]



갯벌이 드넓은 한반도의 연근해는 예로부터 물고기가 흔전만전이다. 충청남도 가로림만에서 실컷 먹이를 먹으며 개체수를 늘리던 잔점박이물범이 어부의 그물을 피해 북으로 오르니 어선이 접근을 주저하는 인당수를 만났고 그리 넓지 않아도 쉴만한 암초, ‘물개바위’가 보였다. 정착할 만했다. 겨울이 되니 북쪽 황하와 발해만이 얼어붙는다. 새끼를 낳는데 손색이 없었겠지. 게다가 황하와 이어지는 발해만은 천지사방에 물고기가 넘실대는데 어선 한 척 다가오지 못한다. 좁은 해역이지만 개체를 늘릴 수 있었다.



오호츠크해에 터 잡은 물개와 물범들을 더러 볼 수 있는 동해와 달리 황해에 외롭게 정착한 잔점박이물범은 은회색 몸에 타원형의 작은 점이 산재하는 특징을 가진다. 160~170㎝의 몸에 80~120㎏의 몸집이니 똥똥한 사람과 엇비슷한데 물개가 아니라 물범 종류다. 귓바퀴의 흔적이 있고 쉴 때 뒷다리를 접는 물개 무리와 달리 물범 무리처럼 외이(外耳)가 없고 뒷다리를 길게 펴고 쉰다. 그 모습을 심청각 2층에 비치된 커다란 쌍안경이 보여주는데, 여름철 물개바위에서 쉬는 잔점박이물범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기껏해야 200마리에 불과하다고 전문가는 헤아린다.



 똥똥한 사람과 엇비슷한 몸집국립수산과학원 산하 고래연구소가 1940년대에 8000마리 가까웠다고 추정한 잔점박이물범은 어떤 연유로 다급하게 줄었을까?



남획일까? 그럴지 모른다. 최근까지 중국은 밀렵꾼을 단속한다고 하므로. ‘국가 2급 보호동물’로 지정했건만 특정 부위가 약용으로 고가로 거래되면서 밀렵꾼들은 유빙 위의 잔점박이물범을 노린다는 것인데, 그건 우리도 그리 멀지 않던 과거에 비슷했다. 하지만 번식이 왕성한 잔점박이물범이 몇 차례의 남획으로 약속이나 한 듯 줄어들 리 없다.



지구온난화 때문일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다. 따뜻해진 바닷물을 따라 황해로 들어오는 화려한 난대성 어류가 처음에 마뜩치 않았겠지. 하지만 해파리가 아니니 피하지 않았을 텐데 왜 줄어든 걸까? 물개 종류를 주로 잡아먹는 백상아리가 늘었을까? 아니다. 물개로 착각한 백상아리가 사람을 무는 경우가 있어도 드문 것처럼 잔점박이물범의 개체수를 순식간에 줄일 정도로 온난화된 황해에 백상아리는 늘어나지 않았다.



해양오염? 가능성이 꽤 높을 것 같다. 바다와 같은 황하의 강물이 흘러들어 물고기가 풍족했던 발해만은 요즘 사막이라고 한다. 장마철을 제외한 한 해 9개월 동안 황하가 건천이 되는 이유를 보자. 황하의 엄청난 물이 바다로 나가기 전에 중국의 광활한 공장지대로 들어가기 때문인데, 정화되지 않은 폐수가 하수구에서 바다로 직행하면서 발해만은 물고기 한 마리 보기 어렵게 썩었다고 한다. 여름이면 파래로 가득한 발해만의 악취는 잔점박이물범의 접근을 가로막겠지만 자연 풍광을 보전하는 가로림만은 다르다. 배고픈 잔점박이물범을 환영하는데, 무엇이 다급하기에 그토록 줄었을까?



해양오염만으로 잔점박이물범의 위축을 설명하기 어렵다. 발해만 이외의 황해는 아직 어획고를 크게 잃지 않았다. 중국 어선들의 어로행위가 우리 해안에 급증하는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먹이가 부족하지 않은 잔점박이물범은 도대체 왜 사라지려는 걸까? 최근 가속되는 황해연안의 개발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수많은 어패류의 산란장이자 터전인 갯벌은 90% 이상 매립돼 사라졌거나 사라지는 중이다. 우리와 중국 해안에 밀집한 막대한 화력과 핵발전 시설은 초당 수백t의 온배수를 바다로 거침없이 쏟아낸다. 여름 폭염이 열대지방을 능가하니 잔점박이물범은 진저리칠 수밖에.



 가로림만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1982년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 331호로 지정한 지 22년 만에 환경부는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 보호해왔지만 잔점박이물범은 줄어들기만 했다. 2006년 보호대상 해양생물로 잔점박이물범을 지정한 해양수산부는 최근 가로림만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잔점박이물범을 비롯해 보호대상종인 붉은발말똥게, 거머리말이 서식하고 생산성이 높은 전어·농어·바지락·낙지들이 널리 분포하는 가로림만의 천혜 자연환경(91.237㎢)을 보전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조력발전소 부지 후보로 거론된 이후 30년 가까이 끊임없던 지역의 논란과 갈등은 비로소 해소되는 걸까? “조력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수십년간의 갈등을 종식하고 갯벌 보전에 주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해양수산부는 지속가능한 가로림만의 이용과 보전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예산도 지원하겠다고 지역 공동체에 약속했다. 나아가 “세계 5대 갯벌인 서해안 갯벌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람사르협약 등 국제사회에 널리 알림으로써 우리의 국가적 위상을 제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발표했다. 환경단체는 해양수산부의 진정성을 믿기로 하고 일단 환영했다.



가로림만이 생태계와 지역경제 상생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인 환경단체의 기대와 별도로 백령도 인근의 잔점박이물범은 하루하루가 힘겹다. 인천시 주변 바닷가를 차지한 화력발전소마다 막대하게 배출하는 온배수가 수온을 높이는데 그치지 않는다. 광활했던 갯벌이 거듭 매립되었을 뿐 아니라 수도권의 숱한 아파트와 고층 건물의 재료가 되어온 바닷모래마저 사라지자 어패류의 오랜 산란장이 고갈되었다. 인당수가 남았어도 안심할 수 없다. 남북 긴장관계를 기회로 무주공산이 된 인당수까지 중국 어선이 몰려들 태세가 아닌가.



 

2014 인천아시안게임 마스코트. 왼쪽부터 바라메, 추므로, 비추온.



해양 생물학자들은 잔점박이물범을 “한반도에 사는 포유류 가운데 우리가 가장 잘 알지 못하는 동물”이라 평가하는데, 잔점박이물범의 생태계와 현황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인천시는 2014년 아시안게임의 상징동물로 잔점박이물범을 선정했다. 동그랗고 귀여운 생김새, 자유롭게 남북한을 오가는 점, 기존에 다른 대회에서 마스코트로 사용된 적이 없는 점이 주목됐다. 인천시는 “한반도 긴장 완화와 분쟁지역 갈등 해소를 촉구하는 평화의 전도사 역할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잔점박이물범은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화합과 우의를 다지는 인천아시안게임의 중심인 첫째 ‘비추온’, 공간을 바람처럼 이동해 스포츠를 축제로 승화시킬 빛의 전도사인 둘째 ‘바라메’ 그리고 신명나게 흥을 돋우는 춤사위로 한국 문화를 알리는 막내 ‘추므로’는 인천시의 호명에 장단 맞추지 못했다. 상징동물 이전에 공존할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는가. 양식 가리비를 먹고 까나리를 축낸다고 어민들이 진정할 때 정부와 인천시의 대응은 무관심이었다. 어민이 소외되지 않는 잔점박이물범 보호 정책이 그리 어려웠을까?



해양수산부는 얼마 전 잔점박이물범을 8월 해양 생물로 선정했다. 인천의 마스코트로 자리매김한 동물이라고 설명을 덧붙였지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앵벌이 신세가 된 황해의 잔점박이물범은 고마워할 턱이 없다. 지구온난화와 해안개발로 삶터를 거듭 잃어가는 잔점박이물범은 마스코트보다 차라리 인천 앞바다와 황해의 환경지표동물이 아닌가.



 



박병상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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