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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의 얼굴은 평범하다

권위는 곧 힘이다. 권위를 갖추는 것만으로 타인의 순응이나 복종을 쉽게 획득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지시라면 따르지 않을 것도 경찰이 지시하면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2008년 EBS 제작팀은 경찰복을 입은 두 명의 연기자가 길을 가던 행인들에게 다가가 ‘쓰레기줍기’ 같은 간단한 지시를 하는 실험을 했다. 경찰의 지시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별다른 이의 제기 없이 쓰레기를 주었다. 심지어 체벌에 가까운 지시(팔굽혀펴기, 쪼그려뛰기)를 해도 단 한 사람도 따지지 않고 끝까지 지시에 따랐다. 또 다른 실험에서도 안과검진을 받으러 간 사람들은 시력과 관계없는 의사의 지시(토끼뜀뛰기, 한발로서기)를 대부분 성실히 따랐다.



이처럼 사람들은 권위를 갖춘 누군가 명령하면 그 정당성을 따지기보다 복종하는 경향을 보인다. 권위에 대한 복종 경향은 1961년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진행한 ‘전기충격 실험’에서 밝혀졌다. 밀그램은 실험참가자들을 모아 학생과 교사 역할로 나누었다. 학생에게는 전기충격장치를 달고, 교사에게는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버튼을 누르도록 지시했다. 물론 전기충격장치는 가짜였고 교사 역할을 하는 참가자들은 이를 몰랐다.



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실험결과, 교사 역할을 하는 참가자의 65%가 상대가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최고 전압 버튼을 눌렀다. 이들은 상대의 비명 소리에 괴로워하면서도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는 실험 주체자의 명령에 따랐다. 이 실험은 권위자의 잘못된 지시에 따름으로써 평범한 사람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점에서 놀라움과 두려움을 주었다.



우리의 뇌는 권위자의 명령을 거부함으로써 얻을 이익보다 감수해야 할 손실이나 위험을 더 크게 느낀다. 문제는 전문가들도 권위에 복종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는 전체 항공기 사고의 25%가 기장의 명령에 대한 부기장의 무조건적인 복종 때문이라고 밝혔다. 즉 부기장은 기장이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면서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기장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 템플대학도 환자에게 잘못된 약을 투약하는 사고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간호사와 같은 전문가들이 의사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복종하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심지어 95%의 간호사들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의사의 전화 지시만으로 환자들에게 규정을 위반하는 수치의 약물을 투약했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같은 전문가 사이라도 상사의 잘못된 혹은 의심스러운 명령에 일반인처럼 복종하는 것이다.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은 매력적이다. 책임에 대한 해방감, 권위자의 인정과 보호, 심사숙고를 생략하는 인지적 편안함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성찰이 생략된 복종은 타인에게 끔찍한 고통을 줄 수 있다.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도 히틀러의 일그러진 권위와 독일 국민의 성실한 복종이 만든 합작품이다.



권위자의 명령이 양심에 반한다고 느끼면 반드시 정당성을 따져봐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선명한 상처와 두려움을 안긴 세월호 침몰,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결국 상부의 잘못된 지시를 평범한 이들이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벌어진 참사이다. 참담한 비극 앞에서 ‘윗선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는 진부한 변명은 한나 아렌트의 철학적 사유가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할 뿐이다. ‘악(惡)의 얼굴은 평범하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부대표 james@brodeur.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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