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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강유정의 까칠한 시선] '하정우 활용법'에도 변화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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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칼, 정리되지 않은 수염, 자외선에 녹다시피 그을린 피부의 남자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처음부터 이런 꼴은 아니었다. 잘나가는 대기업 간부였던 이 남자는 그만 무인도에 갇히고 말았다. 그래도 처음에는 유머러스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배구공을 ‘윌슨’이라는 이름으로 인격화해 낄낄거리며 대화도 나눌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그도 시간이 흐르면 여유와 웃음을 잃고 만다. 영화 속 ‘조난자의 대명사’인 ‘캐스트 어웨이’(2000,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주인공 척 놀랜드(톰 행크스) 이야기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의 까칠한 시선

만약 한국영화에서 누군가 조난을 당한다면, 그 역할을 누가 소화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라이프 오브 파이’(2012, 이안 감독)의 파이(수라즈 샤르마)처럼 호랑이와 함께 태평양을 표류하거나, ‘그래비티’(2013,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스톤 박사(샌드라 불럭)처럼 우주를 헤맬 경우 말이다. 게다가 할리우드 재난영화는 천재지변이 원인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형 재난영화는 대부분 인재(人災)이며 구조적 비리와 모순의 결과물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재난이 터졌을 때 ‘신’에게 원망을 쏟아 내고 질문을 던지는 상황이 무척 자연스럽다. 하지만 한국영화에서 재난이 벌어지면 신을 찾기 전에 탓할 ‘인간’들이 너무도 많다. 사실, 그게 한국영화 속 재난의 특수성이지만 말이다.

최근 개봉한 ‘터널’(8월 10일 개봉, 김성훈 감독)을 들여다보자. 터널은 부실 공사였고, 공사비가 부풀려졌으며, 조감도와 완성물이 다를 만큼 ‘비리 덩어리’였다. 결국 무너진 터널에 누군가 갇혔다. 과연 붕괴된 터널 속에서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방이 철근과 콘크리트 덩어리로 막혔고, 500㎖ 생수 두 병과 생크림 케이크 하나만 가진 상황. 이 암담한 현실에도 ‘안전 귀환’할 거라 믿는 낙천적 인간을 누가 연기해 낼 수 있을까. 아마 그리 많지 않은 몇몇 배우들의 이름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하정우는 매우 적합한 배우였음에 틀림없다.

‘터널’의 재미와 개연성, 그 중심에 하정우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가령 퍼그와 마주 앉아 개 사료를 두고 ‘먹방’을 펼치는 장면, 수분 섭취를 위해 자신의 오줌을 마셔야 하나 고민하는 장면만 봐도 그렇다. 솔직히 약간의 ‘폐소공포증’, 아니 ‘폐소불쾌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견뎌 내기 힘든 상황 아닌가. 하지만 하정우이기 때문에 어떤 농담을 하든 꽤 그럴 듯하게 느껴진다. 극 중 정수(하정우)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나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겁먹지 않고 호기심과 희망을 갖는다. 이러한 정수의 모습도 하정우니까 자연스레 설득되는 것이다.

하정우에게는 하정우만의 연기 톤이 있다. 그런데 이 톤은 ‘양날의 검’이다. 이를테면 ‘러브픽션’(2012, 전계수 감독) 속 하정우나 ‘비스티 보이즈’(2008, 윤종빈 감독) 속 하정우의 말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죽을 위기에 처한 ‘터널’에서의 말투나 억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태에 정색하고 덤벼들기보다 능글능글하게 거리를 두는 느낌이랄까. ‘추격자’(2008, 나홍진 감독) 속 연쇄 살인범 지영민(하정우)이 소름 끼쳤던 것도, 그가 두 눈 부릅뜨고 달려들지 않고 능글맞게 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영화 그리고 한국 관객들은 이러한 하정우의 매력에 분명히 호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조금 까다롭게 굴자면, ‘터널’ 속 그의 모습에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열흘 이상 터널에 갇힌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먹을거리가 고갈된 상황에서 어둠·추위와 싸우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야위지 않았을까. 즉, 그런 ‘정수’가 되기 위해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내 사랑 내 곁에’(2009, 박진표 감독)의 김명민이나 ‘머시니스트’(2004, 브래드 앤더슨 감독)의 크리스천 베일처럼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출중한 연기력 하나만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건 관객에게 지나친 관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하정우 특유의 유들유들한 여유와 감각은 동년배 어떤 배우들보다 호소력이 있다. 다만 이제는 어쩐지 그가 영화 속 인물로 보이지 않고, ‘하정우가 하정우 월드에서 하정우 식으로 연기를 펼친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떤 영화에서든 자신만의 톤과 매너로 개성적인 연기를 보여 주는 것은, 분명 장점이지만 한편으로 관습이기도 하다. 하정우니까 가능하지 싶은 ‘터널’의 고립된 정수가 아니라, 익숙한 하정우식 패턴으로 읽히는 것이다. ‘하정우 월드’에서의 하정우 활용법, 감독이나 배우 스스로 고민해 볼 시기인 듯하다.

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허구 없는 삶은 가난하다고 믿는 서사 신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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