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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르포] ‘태풍전야’ 월성원전을 가다

사용후핵연료 포화율 81.8% 넘어, 3년 내 건식시설 못 지으면 중수로 4기 운행중단 위기… 주민과 사전협의 없이 정부가 일방 결정, 제2의 사드(THAAD) 배치 갈등상황 부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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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원전 부지에 들어선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저장하는 맥스터. 뒤로 원전 전망대와 동해 바다가 보인다.

국내 원자력발전소가 다시 갈등의 진원지가 될 것인가? 원전에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는 7월 25일 원자력진흥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를 열어 원전의 운명을 가를 정책을 확정했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도 발등에 떨어진 불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다. 원자력 발전에 사용된 우라늄 연료인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를 처분하는 시설을 짓는 일이다. 이른바 고준위 방폐장이다. 정부는 지금부터 12년 뒤인 2028년까지 이 부지를 선정하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그리고 그 전 단계로 당분간 사용후핵연료를 임시저장할 시설을 원전별로 짓는다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는 강한 방사선과 높은 열을 방출해 생명체에는 치명적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돌아보면 고준위 방폐장은 지난 30년간 해결하지 못한 국가적 난제 중 하나다. 안면도·굴업도·부안 등 방폐장 후보지는 그때마다 갈등만 키우고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정부는 지난 5월 기본계획을 예고하고 한 차례 공청회를 거쳐 7월 계획을 발표했다.

8월 11일부터는 다시 ‘고준위 방폐물 관리 절차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입법예고됐다. 이에 민심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리트머스 시험지’로 경주 월성원전을 둘러보았다.

월성원전은 고리원전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졌지만 ‘원전의 백화점’ 같은 곳이다. 경수로인 고리·울진·영광과 달리 이곳엔 중수로 4기가 있다. 또 중수로 운영으로 1994년부터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보관하는 건식저장시설을 두고 있다. 국내 4곳 원전 중 유일하다. 중수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새로 지은 신월성 2기는 경수로다.

원전 옆에는 중·저준위 방폐장도 들어서 있다. 거기다 원전 전체를 관장하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도 올해 초 서울에서 경주로 이전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3년 뒤인 2019년이면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가 포화상태에 이른다는 점이다. 원전 중에서 가장 먼저다.

 중수로는 핵연료 매일 교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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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박2일 동안 월성원전과 인근 주민, 한수원, 방폐장 등을 돌아보았다. 앞서 월성원전 인근 동경주 3개 읍·면 발전 협의회와 경주경실련, 경주시의원 등은 고준위 공청회와 확정 발표 때 상경 시위를 벌이는 등 정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에 반대했다.

7월 14일 맨 먼저 찾은 곳은 월성원전이다. 출입 절차는 무자비했다. 카메라와 노트북은 반입이 금지됐다. 스마트폰은 카메라와 녹음 부분이 검은 테이프로 봉인되고 통화만 허용됐다. 졸지에 취재 수단은 무력화됐다. 직원 등 누구도 예외가 없단다. 간신히 정문을 통과해 전휘수 월성원전 본부장을 만났다.

전 본부장은 먼저 고준위 프로젝트의 대원칙을 강조했다. “방폐장 특별법에 따라 약속대로 월성에는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저장하는 시설을 짓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건은 있다. “2035년 중간저장시설(고준위 방폐장의 일부)이 들어설 때까지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부지 안에 임시로 보관할 수밖에 없다.”

월성 1∼4호기는 천연 우라늄을 쓰는 중수로다. 중수로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경수 대신 중수를 냉각재와 감속재로 쓴다. 중수로는 또 천연 우라늄을 사용하다 보니 매일 핵연료를 교체한다. 농축우라늄을 쓰는 경수로는 1년 반에 한 번 연료를 교체한다. 그래서 월성은 해마다 5000다발의 사용후 핵연료가 쏟아져 나온다.

사용후핵연료는 처음엔 발전소 안 수조에 둔다. 이른바 습식저장이다. 열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6년 정도를 보낸다. 월성은 사용후핵연료가 너무 많이 나와 6년 뒤엔 건식저장시설로 옮겨진다. 이에 비해 고리·한울·한빛 3곳의 경수로는 지금도 수조에만 보관돼 있다. 건식저장시설이 아예 없다.

그런데도 굳이 월성에 ‘불편한’ 중수로를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장점이 있어서다. 중수로는 연료비가 저렴하다. 물론 지금은 냉각재인 중수가 비싸져 큰 이득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거기다 핵폭탄에 들어가는 플루토늄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이점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 감안됐을 것이다.

전 본부장은 “최근 들어 사용후핵연료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연구도 국내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11월 한미원자력협정이 개정돼 연구 목적의 건식 재처리 기술인 파이로 프로세싱(pyro-processing·건식정련)이 수행 중이라고 한다. 성공하면 사용후핵연료를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야기는 쟁점이 되고 있는 월성원전의 건식저장시설로 옮겨갔다. 월성원전은 1994년부터 발전소 안 수조의 사용후핵연료를 옮겨 임시로 보관하는 건식저장시설을 운영해왔다. 문제는 건식저장시설이 3년 뒤 포화상태가 될 예정으로 추가건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시설 확장을 놓고 주민과 경주시의회·시민단체 등은 벌써부터 정부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약속도 지키지 않고 관련 법도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경주시의회와 경주경실련은 정부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행정예고한 이후인 6월 14일 반대성명서를 냈다. 핵심은 두 가지다.

①경주시민은 2005년 11월 중·저준위방폐장 유치 때 ‘고준위 방폐물을 가지고 나간다’는 약속을 믿고 유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월성원전 부지에 방치되고 있다. 빨리 갖고 나가라.

②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유치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18조(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의 건설 제한) ‘원자력안전법’ 제2조 제5호에 따른 ‘사용후핵연료의 관련시설은 유치지역에 건설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법에 명시된 사항을 관계시설로 호도하면서 건식저장시설(맥스터 7기)을 건설하려 한다. 이는 명백한 법 위반이다. 즉각 중단하라.

 ‘관련시설’과 ‘관계시설’ 해석 놓고 상반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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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성원전 중수로의 사용후핵연료 습식저장시설. 사용후핵연료는 이곳 내부 수조에서 6년가량 열을 식힌다. / 2. 중수로에 사용하는 핵연료 모습. 중수로는 경수로와 달리 농축한 우라늄 대신 천연 우라늄을 핵연료로 쓴다.

①은 정부가 약속과 달리 중·저준위 방폐장이 들어선 이후에도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를 타 지역으로 옮겨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부는 당시 중간저장시설을 2016년까지 완료해야 한다는 시한까지 제시했다.

②는 월성원전에 추가로 건식저장시설을 짓는 것은 특별법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①에 대해서는 답변이 궁색하다. 고준위 방폐장이 여태 들어서지 않은 것을 원인으로 돌린다. 그러나 ②에 대해서는 ‘관련시설’과 ‘관계시설’은 “용어의 정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해명한다. 때문에 관련 조항을 보완하는 법 정비를 검토 중이다.

정부는 어쨌든 로드맵을 제시해 다음 정부도 고준위 방폐장 사업을 이어가는 토대를 마련했다. 대체로 그 당위성은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역대 정부는 그동안 고준위 문제를 다음 정권에 폭탄 돌리기 게임 식으로 떠넘기기만 했기 때문이다.

월성원전은 올해 들어 단안을 내렸다. 지난 4월 월성원전 부지에 건식저장시설 맥스터 7기를 추가로 건설하는 운영변경허가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신청한 것이다. 건식저장시설 확충공사의 첫 절차다.

이에 대해 전 본부장은 “건식저장시설 공사는 안전성 검사에만 1년 6개월이 걸리는 등 2년이 소요된다”며 “지금부터 시작해야 3년 뒤 예상되는 포화를 대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허가는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다.

인터뷰 내내 그는 고준위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났을 정도다. 직원 한 사람이 본부장에게 다음 일정을 상기시켰다.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이미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저장하는 것은 현 세대가 해결해야 한다. 도덕적으로도 그게 맞다.”

본부장실을 나와 사용후핵연료가 보관된 건식저장시설을 확인했다. 337만㎡(102만 평) 원전 부지 야산을 깎아 아래는 캐니스터 300기, 위는 맥스터 사일로 7기가 들어섰다. 입구에 홍보관이 있다.

서언식 연료팀장은 “추진 중인 맥스터 7기가 들어서면 포화 연도가 8년쯤 연장된다”고 설명했다. 이후 계획도 있다. 다시 뒷산을 더 깎아 14기를 추가하면 2043년까지 견딘다는 것이다. 설명을 들은 뒤 100m쯤 떨어진 원전 전망대로 올라갔다.

아파트 7층 높이로 월성원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건식저장시설인 원통 모양의 하얀색 캐니스터와 콘크리트로 덮인 회색 맥스터 7기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주민들이 노상에 방치되고 있다고 표현하는 사용후핵연료 보관시설이다. 맥스터 7기가 들어선 부지 뒤편으로 빈 공간이 보였다. 그곳이 예정된 확충 공간이다.

마침 사용후핵연료를 실은 이송트럭이 건식저장시설로 들어왔다. 매일 이동한다. 주변 도로는 일시 통제됐다. 트럭이 지나가자 안전요원이 측정기를 길 바닥에 대고 방사선을 측정했다. 부유물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용후핵연료가 도착하자 맥스터의 크레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레인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설치한 카메라가 달려 있다. 플루토늄이 섞여 있는 사용후핵연료가 다른 곳으로 유출되는 지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이장협의회가 열리는 양남면사무소에 들렀다. 2층 소회의실에서 전휘수 월성원전 본부장이 양남면 이장들을 초청해 고준위 방폐장의 기본 계획을 설명했다. 회의실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박명수 하서3리 이장이 반박에 나섰다. 목소리에 노기가 실렸다.

“건식저장시설 7기를 더 짓는다고 하지만 분명 이걸로 끝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전의논 한 번 없었다. 주민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나….”

박 이장은 “결국 사용후핵연료를 반영구적으로 월성원전에 보관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 다른 이장이 다시 말을 받아 목소리를 높였다. “원전이 코앞이다. 우리 앞마당에 고준위를 보관하는데도 대책 하나 없다.”

이날 설명회엔 이장 17명이 참석했다. 하나같이 원전 측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투다. 전 본부장이 어렵게 답변 기회를 얻었다. “발전소가 돌아가는 한 사용후핵연료 발생은 필연적이다. 건식저장시설을 추가로 짓는 것은 당연히 주민의 동의를 받을 것이다….”

 “건식 늘리면서 사전의논 한 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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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용후핵연료를 건식저장시설로 이송 중인 작업자. 크레인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 2.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이송차량. 중수로는 매일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해 이송차량을 통해 맥스터로 운반한다.


그쯤에서 설명회장을 나왔다. 오후에는 양북면에 있는 한수원 본사를 방문했다. 한수원에는 원전사후관리처에 사용후 핵연료사업팀이 있었다. 팀원만 14명이다. 고준위 방폐장이 지어져 원자력환경공단이 관리하기 전까지는 한수원이 사용후핵연료를 맡기 때문이다.

김정묵 사용후핵연료사업팀장은 “고준위 방폐장 사업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보다 더 힘든 일”이라며 “고준위는 기술보다 주민을 설득하는 일이 사안의 본질”이라고 표현했다.

월성원전 중수로 4기의 지난해 말 기준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은 81.8%. 만의 하나라도 2019년까지 사용후핵연료를 둘 곳이 마련되지 못한다면 중수로 4기는 한꺼번에 멈춰야 한다. 중수로는 1기가 약 700㎿ 전력을 생산해 원전 20기 전체의 4%쯤을 차지한다.

4기면 대구·경북이 필요로 하는 전력이다. 적지 않은 비중이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고준위 방폐장 로드맵은 민간 주도의 공론화위원회가 수년간 머리를 맞댄 뒤 나온 성과물에 바탕을 두었다. 그러고도 공론화에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한수원 관계자들은 거듭 원전 설비와 고준위 방폐장의 안전성을 주장한다. 김정묵 사용후핵연료사업팀장은 “우리의 원전 운영기술은 세계 1∼3위 수준”이라며 “중국이 이 분야만큼은 쉽게 따라오지 못할 정도다”라고 자신했다.

원전은 미국이 100기가 넘고 프랑스는 70기 이상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전 운영과 건설을 지금도 하는 나라다. 원전 운영기술이 앞서는 이유다. 일본은 원전이 50기지만 쓰나미로 원전의 계통이 침수돼 운영의 오점을 남겼다.

김 팀장은 “원전은 관리만 잘하면 저렴한 전기를 공급한다”며 장점을 강조했다. 문제는 사용후핵연료의 독성(毒性)이 30만 년 넘게 간다는 점이다. 더구나 매년 750t의 사용후핵연료가 국내 원전에서 발생한다.

최근 잦아진 지진도 원전 불안감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하자 김 팀장이 반박하고 나섰다. “지진이 나면 오히려 원전 돔 안이 가장 안전하다는 말이 있을 정돕니다.” 원자력 설비는 내진 설계가 잘돼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규모 6.5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돼 있다고 했다. 한수원의 한 직원은 “암 발생률도 원전이 다른 회사나 기관보다 오히려 낮다는 조사결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일본의 동일본 쓰나미 사고 이후 국내 원전은 안전 보강에 1조원이 넘는 투자를 했다고 한다. 원전의 내부 운영원칙도 안전이 1순위다. 경제성은 그 다음이란다.

이날 취재를 마치고 양남면 나아리 한수원 직원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월성원전의 밤을 체험하고 싶어서다. 독신자가 많이 입주해 있는 한수원 숙소는 빈 곳이 더러 있었다. 주민들은 이를 두고 한수원 직원들이 대부분 원전 인근보다는 울산이나 경주시내에 집을 마련한다고 말한다.

다음날인 15일은 일찌감치 짐을 챙겨 오전 8시쯤 월성원전 정문을 찾았다. 원전과 주변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이주 대책위가 출근 시간에 맞춰 매일 시위를 벌이고 있는 장소다. 남문 앞 도로변 천막에는 주민 서너 명이 나와 있다.

이날로 집회는 691일째다. 천막 앞에는 이들이 시위 때 사용하는 상여와 관 등이 놓여 있었다.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시설 추가 건설 결사반대!’라는 플래카드도 나붙어 있다.

김진일 대책위 부위원장은 “건식저장시설 주변에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다”며 “원전에 인접한 주민을 먼 곳으로 이주 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원전은 발전소에서 914m까지가 제한 구역으로 설정돼 있다. 그 경계를 따라 녹색 펜스가 세워져 있다.

이주를 요구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녹색 펜스 주변에 살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950m 위치 양남면 나산리에서 대대로 농사를 짓고 살아왔다. 이주대책위는 회원 50여 명 중 30여 명이 활동한다. 요즘은 농번기에 날씨까지 더워 월요일만 회원 전체가 모여 시위를 벌이고 평일엔 조를 짜서 7∼8명이 나온다고 했다.

월성원전 남문 앞 나아리에는 상가가 제법 형성돼 있다. 이주대책위 회원들은 대부분 토박이들로 집은 비어 있고 지가도 형성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땅값은 원전이 들어서기 전보다 오히려 떨어졌다는 것이다.

주민 황분희 씨는 “재산뿐 아니라 생명이 문제”라며 “우리 몸에는 삼중수소가 100% 들어가 있다”고 주장했다. 원전 측은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주민들은 증세가 20∼30년 후에 나타나 불안하다고 했다.

한 주민은 “원전 직원들이 자기들도 여기 산다고 하지만 대부분 울산이나 경주시내에서 출퇴근한다”며 “24시간 원전 주변에서 사는 우리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거기다 국내 고준위 폐기물 전체의 51%에다 방폐장까지 있는 곳이 월성이라고 강조한다.
 
 중·저준위 방폐장 10만 드럼 용량 중 4.6% 채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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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로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경수로 원전인 고리·한울·한빛도 습식저장시설이 포화상태를 눈앞에 두고 있다.

7월 5일 이곳에서 51㎞가량 떨어진 울산 앞바다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한 것도 환기시켰다. 지진이 난 날 바다에서 자갈이 밀려나올 정도로 위협적이었는데 동네 비상 마이크는 꺼졌고 재난문자도 한참 뒤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7월 22일에는 월성1호기가 두 달 만에 또 멈춰섰다. 설계수명 30년을 끝내고 지난해 6월 발전을 재개한 1호기가 벌써 두 차례나 고장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원전도 정부도 주민의 목소리는 외면한다. 근거 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원전 제한구역 밖은 방사선도 미미한 수준이라고 잘라 말한다.

월성원전을 나와 1㎞쯤 떨어진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운영하는 중·저준위 방폐장을 방문했다. 건설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방폐장이다. 오전 10시 공단의 안내를 받아 차를 타고 방폐장의 운영동굴로 들어갔다.

10도 경사로 1.4㎞를 내려가 차가 멈춘 곳은 지하 130m 지점이다. 정의영 환경공단 처분운영실장은 “오전에 한 번 오후에 두 번 하루 세 차례씩 방폐물이 반입된다”고 설명했다. 방폐물이 순조롭게 반입돼 총 10만 드럼(1드럼은 200ℓ) 용량 중 현재 4.6%가 채워졌다.

방폐물이 월성 아닌 다른 원전에서 올 때는 1000드럼 씩 청정누리호에 실려 월성물량장으로 이송된다. 여기서 전용차량으로 운반된 뒤 세 번의 검사를 거친다. 올해 반입 목표량은 7800드럼. 이날까지 4672드럼이 들어와 있다.

방폐장의 저장 사일로는 원전의 돔과 흡사하게 생겼다. 사일로의 크기는 원전 돔의 70%로 지하에 6개가 들어서 있었다. 돔 벽의 두께는 발전소는 1.2m지만 방폐장은 1에서 1.6m까지 다양하다. 암반의 조건에 따라 탄력적으로 설계됐단다. 방폐장의 처분장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출입 절차가 까다로웠다.

방호복에 헬멧을 쓰고 삐삐처럼 생긴 자동선량계를 하나씩 받았다. 개인별 방사선 수치를 측정한다. 현재 숫자는 ‘0000’. 안으로 들어가 다시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었다. 일행이 들어서자 마침 방폐물을 반입한 차량이 나오고 있었다. 10m쯤 들어가자 처분장 구역으로 들어가는 차단막이 나왔다. 기압 차로 공기는 처분장에서 밖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5번 처분장 사일로로 접근하자 소리가 “삑삑” 하고 울렸다. 처분장 위로 크레인이 좌표를 잡느라 분주했다. 이번 방폐물은 월성원전에서 온 장갑·바지·헝겊 등 16드럼이다. 국내 원전은 24기에서 40년 동안 12만드럼의 중·저준위 방폐물이 발생했다.

사일로는 가득 차면 폐쇄된 뒤 300년 동안 관리된다. 처분장을 나왔다. 개인선량계의 수치는 ‘0000’ 그대로였다. 두 팔을 집어 넣은 자세로 전신오염감시기를 거쳤다. 오염되면 여기서 ‘삐’ 소리가 나고 해당 부위에 불이 켜지게 돼 있단다.

옆에는 샤워장 역할을 하는 제염실이 설치돼 있다. 오염이 됐을 경우 샤워하고 면도한 뒤 재측정을 한다. 담당자는 “오염된 적은 가끔 있었다”며 “그래도 모두 제염으로 해결됐다”고 말했다.

 방폐장 동굴 안에 물 흘러나오는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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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중·저준위 방폐장의 지하 130m 처분장 5번 사일로 앞에 선 기자. 크레인에 매달린 흰 박스가 방폐물이다.

처분장을 나오자 정 실장은 배수펌프 구역을 가리켰다. 지하의 방폐장 구조물과 자연암반 사이에서 물이 나와 하루 평균 2900t의 물을 퍼올린다고 한다. 그는 “보시다시피 동굴 안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일부 환경단체가 마치 방폐장 동굴 안에 물이 흘러나와 폐기물이 떠다니는 것처럼 과장한다고 지적했다.

환경공단은 앞으로 중준위와 저준위 방폐물을 구분해 보관할 예정이다. 중준위는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수를 필터링하고 나온 폐필터 등이고 장갑·폐아스콘 등은 저준위 방폐물이다. 이들을 모두 동굴처분시설에 저장한 것과 달리 중준위만 동굴에 넣고 저준위는 표층처분시설에 보관한다는 것이다. 표층시설은 7월말 기반공사에 들어갔다.

환경공단의 홍보관에도 들러보았다. 한 코너에 인근 감은 사지탑 사진이 전시돼 있다. 환경공단은 지진 이야기가 나오면 이 사진을 언급한다. 1000년이 넘은 신라시대 석조물인데 끄떡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방폐장 주변에는 환경방사선감시기 8대가 설치돼 작동된다. 여기서 정기적으로 주변 토양·곡류·어류 등 시료를 채취해 방사선 영향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원자력안전위에 “특별히 보고한 사항은 없었다”는 설명이다.

환경공단은 앞으로 고준위 방폐장이 들어서면 중·저준위와 함께 운영을 맡게 될 사업 당사자다. 환경공단은 올해 초 고준위 정책을 수립하는 정책실을 만들어 직원 20명을 배치했다. 앞서 환경공단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20개월간 고준위 문제를 다루는 민간기구인 공론화위원회를 가동해왔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원전지역 대표 8명에 전문가 7명 등 15명으로 구성됐다.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에선 백태환 전 경주시의원과 최석규 경주대 교수가 참여했다. 위원장은 홍두승 서울대 교수가 맡았다. 공론화위원회는 원전 지역 민간 대표 중심으로 고준위 방폐장의 큰 그림을 그렸다. 정부가 5월에 발표한 고준위 로드맵도 이것이 밑바탕이 됐다고 한다. 경주경실련은 “공론화란 수단으로 다수 여론을 포장했다”며 불신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경주시청을 찾아보았다. 김수식 경주시 원자력정책과장은 “정부가 고준위 방폐장 기본계획을 발표했지만 막무가내식 추진이 좀 그렇다”고 말했다. 원전 5개 지방자치단체(경주시·부산기장군·울산울주군·울진군·영광군)의 의견수렴 없는 일방적인 정책 결정이라 유감스럽다는 뜻이다.

그는 “특히 특별법 18조의 정신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장차 고준위 방폐장은 중·저준위 방폐장이 들어선 경주에는 들어설 수 없다는 걸 못박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서 생긴 것은 여기에 둘 수밖에 없는 건 이해한다”는 말도 했다. 사용후핵연료를 중간저장시설로 옮겨갈 때까지 당분간은 발생한 원전 안에 둘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대신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안에 두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적정 수준의 보관 비용을 내라는 것이다. 이미 원전 5개 지자체 행정협의회가 이 문제를 논의했다. 여기서는 보관 비용을 법제화해 지방세 형태를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최양식 경주시장은 “이번 기본계획이 고준위 방폐장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인 원전부지 안 건식저장 시설을 짓기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은 이제 발등의 불이 됐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하고 새 연료를 넣어야 원전이 계속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 후손들에게 방폐물의 짐을 떠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1박2일간 둘러본 고준위 방폐장의 민심은 반발 강도가 아직은 높지는 않았다. 고준위란 태풍이 막 생성된 단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고준위 방폐장의 진로와 파괴력은 태풍처럼 예측할 수가 없다.

글·사진 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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