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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내 딸 얼굴 3년 만에 보다니”…백내장 수술 케냐 할머니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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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케냐 마차코스 도립병원 안과 병동 뒤뜰에서 한국의 국제구호기구 비전케어의 도움으로 백내장 수술을 받아 시력을 되찾은 환자들이 한데 모여 수술 성공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 이요셉]

“이리 오렴, 우리 딸. 3년 만에 네 얼굴을 보는구나. 한국 의사들이 내 눈을 보이게 해줬어.”

지난 16일 케냐 마차코스 카운티의 도립병원 안과병동. 오른쪽 눈에서 안대를 떼낸 물리미 카바이타(70·여)가 의료진 옆에 서 있던 딸 프리실라(55)를 불렀다. 카바이타는 딸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오늘 하루 종일 딸의 얼굴을 보겠다. 이제 딸과 함께 빵을 만들어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웃었다.

카바이타는 3년 전 백내장이 악화돼 양쪽 시력을 잃었다. 전날 한국 안과의사들로부터 백내장 수술을 받기 전까지 제대로 치료받은 적이 없었다. 프리실라는 “농사로 겨우 입에 풀칠하는 형편이라 치료는 엄두도 못 냈다. 어머니의 눈을 되찾게 돼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지난 15일부터 3일간 마차코스에선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었던 55명의 환자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이들에게 시력을 되찾아준 이들은 ‘비전케어’라는 한국의 국제구호기구다. 백내장으로 고통 받는 저개발국가의 실명(失明) 환자를 돕기 위해 김동해(52) 서울 명동성모안과 원장이 2002년에 세운 단체다. 지금까지 남미·아시아·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돌며 34개국 1만7000여 명을 무료로 수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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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케어는 2007년 스와질란드에서의 봉사를 시작으로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었다. 김 원장은 “백내장은 20분가량 간단한 수술만으로도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저개발국가,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은 의사가 부족해 수술받을 기회조차 없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이날 무료 수술을 진행한 케냐 마차코스 카운티의 인구는 200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안과 전공의는 단 한 명뿐이다. 이 지역의 유일한 안과의사 헬렌 주키 도립병원장은 “각막 감염, 백내장, 당뇨 탓에 실명한 환자 수를 파악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밀려드는 환자를 감당 못해 넋 놓고 지켜볼 때가 많다”고 밝혔다.

올해 비전케어는 아프리카 동남부 9개국를 돌며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눈을 떠요 아프리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출발해 스와질란드·모잠비크·짐바브웨·잠비아·말라위·탄자니아·케냐를 거쳐 우간다까지 육로로 8000㎞를 종단하며 의료 봉사를 펼쳤다. 지난달 4일부터 이달 28일까지 총 56일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김 원장과 권구현(44) 비전케어 이사가 오토바이를 몰고 간호사·검안사와 행정지원 봉사자들은 차를 이용해 뒤를 따랐다. 한국인 안과의사와 간호사가 2~3명씩 국가별로 교대하면서 9개국 일정을 소화했다. 이번 해외 원정 봉사로 400명이 넘는 현지인이 시력을 되찾았다.

8000㎞에 이르는 원정은 험난했다. 봉사단은 오전 6시에 일어나 의료 장비를 챙기고 저녁까지 진료와 수술을 이어갔다. 아프리카는 수도 시설이 없는 곳이 많다. 도시도 지하수를 끌어 쓰는 건물이 흔하다. 예고 없이 물·전기가 끊겨 제대로 씻지 못하는 날도 잦았다. 봉사자로 활동한 김 원장의 딸 은유(20)씨는 “짐바브웨의 숙소는 난방도 안 됐다. 워낙 고지대인 데다 겨울철이라 밤에는 추워 수술 가운을 덮고 잤다”고 전했다.

육로로 국경을 넘다 출입국 심사가 차질을 빚어 발이 묶이는 일도 있었다. 짐바브웨 국경을 통과할 때는 12시간 동안 묶였다. 말라위 입국 때엔 모든 짐을 압수당해 이틀 만에 되찾기도 했다. 권 이사는 “국경에서 발이 묶이면 식사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컵라면에 차가운 물을 부어 20분 정도 불려 먹었다. 차가운 물에 불린 라면도 겉은 부들부들하고 속은 바삭해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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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탄자니아 무힘빌리 병원에서 백내장 수술을 마친 한국 의료진과 현지 의료팀. [사진 이요셉]

비전케어는 올해 원정 봉사를 위해 6년간 준비했다. 봉사단은 9개국을 원정하면서 현지 병원 한 곳당 1000만원에서 1억원에 이르는 수술현미경·자동굴절검사기 등 장비와 의약품을 기증했다. 수술엔 아프리카 현지 의료인을 동참시켜 의료기술을 전수했다. 케냐 마차코스 도립병원의 간호사 프랜시스 카자여(49)는 “우리가 한 명 수술할 시간에 한국 의사는 6명을 수술했다. 여러 노하우를 배울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들 봉사단의 활약은 스와질란드·탄자니아 등의 유력 일간지 1면에 소개됐다. 김 원장은 “국제 원조가 1회성에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의료 환경 개선과 현지 의료진 훈련을 통해 자활력을 갖출 수 있게 체계적인 협력을 계속하려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 이어 아프리카 동북부와 서북부, 서부 지역의 여러 나라를 도는 장기 해외 원정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S BOX] 아프리카 실명 환자 590만명…인구 5000만 탄자니아 안과 의사 50명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시각 장애인 인구를 약 2억8500만 명으로 추산한다. 이 중 90%가 저개발국가에 집중돼 있다. 대부분이 아프리카 국가다. 아프리카는 인구 100만 명당 안과 의사가 한 명에 불과해 전 세계에서 실명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아프리카의 실명 환자는 590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한국과 비슷한 인구 5000만여 명의 탄자니아는 안과 의사가 50명밖에 안 된다. 케냐 마차코스 카운티의 마차코스 도립병원장인 헬렌 주키는 “케냐는 47개 카운티(county) 중 22개 카운티에 안과 의사가 아예 없다. 그나마 있는 안과 의사도 대부분 수도 나이로비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에선 도시만 벗어나면 시멘트 벽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허름한 집과 흙으로 지은 집을 쉽게 볼 수 있다. 도시 밖 사람들은 대부분 소작농으로 살며 하루 끼니를 걱정한다. 눈에 이상이 생겨도 평생 안과를 못 가고 그대로 실명한다. 백내장으로 인한 실명은 간단한 수술만으로 벗어날 수 있다. 헬렌은 “그동안 에이즈·말라리아에 대한 국제 원조는 활발했지만 상대적으로 안 질환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다. 안과 의사 양성과 의료 장비 지원 등 안 질환 관련 국제 원조가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마차코스(케냐)=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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