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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으로] 캐머런, 하워드의 4연임 이끈 ‘오즈의 마법사’ 기용해 총선 승리

정치는 대표적인 내수(內需)산업이다. 특히 선출직이 그렇다. 조지아 대통령을 지낸 미하일 사카슈빌리가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주지사를 지내는 사례를 떠올리는 이가 있겠지만 그건 임명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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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트럼프 선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한 폴 매나포트. [중앙포토]

선거 전문가들은 그러나 국경을 넘나든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의 선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한 선거전략가 폴 매나포트만 봐도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친러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을 위해 일한 전력이 논란이 돼 물러났다.

국경 넘나드는 정치 컨설턴트

야누코비치는 2004년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수주 뒤 법원이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한 야당 빅토르 유셴코의 손을 들어주면서 권력에서 밀려났다. 이른바 ‘오렌지 혁명’이다. 이를 계기로 야누코비치는 유권자 동향 파악에 전문적 지식을 가진 미국 전문가를 찾았고, 당시 매나포트와 연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매나포트는 우크라이나 최고 부호이자 지역당의 핵심 후견인 중 리나트 아크메토프를 위해 일하기도 했다. 미국 언론들은 수백만 달러의 자문료가 오갔다고 보도했다.

매나포트만이 아니다. 미국은 마케팅이나 경영 기법을 수출하듯 정치 컨설팅도 수출하곤 했다. 선구자는 ‘소여 밀러 그룹’이다. 스콧 밀러와 데이비드 소여가 꾸린 기업으로 1980년대부터 90년대 전 세계를 휘저었다.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의 ‘피플 혁명’을 이끌었고, 칠레의 피노체트를 축출하는 데 기여했으며, 볼리비아·콜롬비아·에콰도르에서 승리했다. 선거판의 ‘팍스아메리카나’라고 할 수 있다. 86년엔 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도 만들어졌는데 ‘권력(Power)’이었다. 당시 이들을 염두에 둔 카피가 이랬다. “섹스보다 매혹적이고, 마약보다 중독성이 있으며, 황금보다 값진 것 그것을 당신 손에 넣어줄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2003년 영화인 ‘보리스 만들기(Spinning Boris)’도 유사한 소재를 다뤘다. 96년 재선 전망이 암울하던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조지 고튼 등 일군의 미국인 정치 컨설턴트를 기용해 전세를 역전했다는 내용이다. 실제 이들 미국인이 대선 승리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는 논란이 있으나 이들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되고 있다.

이들의 활약상을 담은 『알파독』의 저자인 제임스 하딩은 “소여 밀러가 여론조사·메시지·이미지 등 TV정치학을 본능적으로 이해했다면 후세대인 칼 로브(공화당 선거전략가)나 딕 모리스(빌 클린턴 재선 공신)는 세분화, 그에 따른 맞춤형 메시지, 직접 소통, 개인 접촉 등의 데이터베이스 정치학을 선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0년대 들어선 후발국 컨설턴트들이 세계를 공략했다. 경영계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여기엔 언어적인 요인도 있다. 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어를 하는 컨설턴트가 해당 언어를 쓰는 권역에서 활동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어서다. 제도적 요인도 있을 수 있는데, 프랑스인들이 한때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에서 일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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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오른쪽)과 남미 ‘정치 시장’을 꽉 잡은 주앙 산타나. [중앙포토]

이 부류의 대표적 인물이 브라질 출신의 주앙 산타나다. 브라질에서만 2014년까지 세 차례 대선에서 노동자당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와 지우마 호세프다. 베네수엘라와 도미니카공화국, 파나마, 앙골라의 대선에서도 좌파 후보를 위한 자문 역할을 맡았다. 사실상 남미를 휩쓴 거다.

뉴욕타임스(NYT)는 “산타나가 미국 컨설턴트들을 대체했다”며 “브라질식 처방은 끔찍한 사람이 선출된다는 데 별 신경 쓰지 않고 이기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했다. 산타나 스스로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심리분석가들이 죄의식 없이 성관계를 하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유권자들이 후회 없이 정치를 좋아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규정한 일이 있다.

높이 날던 그도 근래엔 추락했다.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그 역시 부패 혐의로 체포됐다. 노동자당 후보를 위한 정치 마케팅 비용인 3000만 헤알(약 94억원)을 한 기업체로부터 받은 게 문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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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오른쪽)과 함께한 ‘오즈의 마법사’ 린턴 크로스비. [중앙포토]

외국인 컨설턴트 기용은 정치 선진국인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2015년 총선은 사실상 외국인 컨설턴트의 활약 무대였다.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호주 출신의 린턴 크로스비를 기용했다. 크로스비는 ‘호주의 칼 로브’, 호주 사람을 뜻하는 ‘오지(Aussie)’를 원용한 ‘오즈의 마법사’로 통했다. 그럴 법한 게 능력은 있지만 호감형이라고 보기 어려운 호주 자유당 소속의 존 하워드 총리의 4연임을 가능케 한 인물이었다. 덕분에 하워드 총리는 호주 역사상 두 번째 장수 총리일 수 있었다.

크로스비는 이후 눈을 호주 밖으로 돌려 2005년부터 영국 보수당을 도왔다. 2015년 보수당의 예상 밖 승리엔 그의 힘이 컸다는 분석이다. 그는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뉴질랜드·스리랑카에서도 활약했다. 보수당 캠프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책사인 짐 메시나도 일했다. 그는 최근엔 11월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는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를 돕고 있다. 에드 밀리밴드가 이끈 노동당에서도 역시 오바마의 책사인 데이비드 액설로드가 활동했었다.

한국 안팎의 정치 컨설팅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이들이 기존 선대본부를 대체하는 건 아니다”며 “선거엔 각국이 공통인 부분과 사회문화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는데 이들은 공통인 부분, 즉 유권자에 대한 과학적 조사와 분석을 담당하곤 한다”고 전했다. 이어 “따라서 현지 사정을 잘 아는 로컬 파트너가 이들에게 중요할 수 있다”고 했다.
 
[S BOX] DJ의 노란 상징색, 대선 재출마 ‘소여 밀러’가 모두 도와

한국에서도 외국의 정치 컨설턴트들이 활약했을까.

『알파독』엔 김대중(DJ) 전 대통령 측 인사가 접촉했다는 기술이 나온다. 1986년 ‘소여 밀러’가 노란색을 상징으로 삼은 코라손 아키노를 도와 마르코스의 21년 장기 집권을 끝낸 직후, 서울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코라손 아키노가 있다. 그분이 노란색 옷을 입어야 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직원이 그해 8월 서울로 날아가 DJ를 만났다. 92년 대선에서 패배한 DJ가 은퇴를 선언했을 때도 소여 밀러는 그의 재기를 예상하고 도왔다고 한다.

앞서 ‘소여 밀러’의 워싱턴 파트너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선거 전략가로 이름 높았던 에드 롤리스가 87년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는 얘기도 있다. 97년과 2002년 두 차례 대선에 도전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도 미국의 유명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엔 별다른 얘기는 없다. 한 선거 전문가는 “외국 컨설턴트들에게 한국은 매력 시장이 아니다. 선거법으로 너무 많이 묶어두어 법으로 할 수 있는 것 말곤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돈을 포함해서다. 그러나 비공식 루트는 열려 있을 수 있다. 유력자들이 사적으로 컨설턴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순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뭐든 가능하니까 말이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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