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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닉슨을 혼쭐낸 중국 술, 일명 ‘액체 면도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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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식물학자
에이미 스튜어트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
448쪽, 2만3000원

주력(酒歷)이 30년이 넘었건만 와인·맥주·사케·위스키의 족보를 줄줄이 꿰고있는 주당(酒黨)을 만나면 왠지 주눅이 들었다. 개성 없는 국산맥주에 희석식 소주를 타먹는 게 일상화 되다보니 입맛은 물론 취향마저 저렴해진 탓이다. 이 책은 위대한 술을 탄생시킨 식물들의 이야기다. 술의 원료로 쓰이는 160종의 식물을 다뤘다. 보리·쌀·포도·수수 같은 잘 알려진 재료부터 코카·담배·양귀비 등 희귀재료까지 총망라했다. 책을 읽다보면 이 세상에 술을 담그지 못할 식물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술에 얽힌 역사, 일화도 흥미롭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자신의 정원에 포도나무를 심고 애지중지 가꿨지만 제대로 된 와인 한방울을 생산하지 못했다. 유럽산 포도나무가 미국 토종 해충인 포도나무뿌리진디에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포도나무뿌리진디에 감염된 토종 포도나무를 프랑스에 선물했다. 무지가 불러온 결과지만 이 조그만 해충은 19세기 프랑스의 와인산업을 초토화시켰다. 1972년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한 미국 닉슨 대통령이 “마오타이를 입에만 대고 절대 마시지 말라”는 측근의 경고를 무시하고 중국 대표들과 대작을 했다가 혼이 났다는 일화도 나온다. 당시 미국인들에게 생소한 이 중국의 독주를 언론인 댄 래더는 ‘액체 면도날’이라고 표현했다.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 소주 외에 한국 술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 사케는 최고 품질의 다이긴조부터 탁주인 니고리까지 자세히 소개돼 있다. 한국의 술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술 문화는 아직 후진적이다. 쌀로 만든 술의 역사가 8000년이 넘는다고 하는데,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이 나라의 술은 여전히 변방을 돌고 있다. 주세법이라는 규제와 거기에 길들여진 싸구려 소비문화가 품격 있는 우리 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아닐까. 술을 사랑한다는 자칭 애주가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술에 얽힌 식물과 사람의 스토리를 알면 더 절제하며 술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정철근 중앙SUNDAY 플래닝에디터 jcom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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