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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터키 쿠데타 현장에서 느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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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형
경희대 생체의공학과 4학년

2016년 7월 16일 역사 속에 서 있었다. 여행 차 방문한 터키에서 야밤에 갑작스러운 포성을 들었다. 말로만 듣던 군부 쿠데타였다. 곧바로 인턴 생활을 했던 방송국에 연락을 하고 거리로 나섰다. 무작정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붙잡고 인터뷰를 해나갔다. 대다수 터키 시민은 ‘현재 정부가 합법이고 쿠데타 세력은 불법’이라며 에르도안 대통령과 현 정부를 지지했다. ‘최악의 민주주의가 최상의 쿠데타보다 낫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종교적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다른 방향의 지지도 있었다. 인터뷰를 거듭할 수록 그 판단이 맞는 듯했다. 터키 국민에게 정의의 기준은 터키 정부에 있었다. 두 차례의 쿠데타와 뒤이은 독재정치를 겪은 대한민국 국민이 보기에도 쿠데타는 정의롭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여섯 시간이 흘렀다. 쿠데타는 실패했다. 정의가 승리했고 내 판단이 옳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진압 이후 나온 갖가지 분석 기사와 칼럼을 보니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터키의 국부인 아타튀르크의 정신을 계승하는 군부가 술탄이 되고자 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맞선 ‘민주적’ 쿠데타라는 시각까지 있었다. 독재를 위한 쿠데타가 아닌, 독재를 막으려는 쿠데타일 수도 있었다. 독재와 쿠데타가 맞서는 상황이라면 어떤 게 정의이고 불의인지 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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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처음에 나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세워진 정부라는 한쪽의 관점에서만 판단했다. 쿠데타라는 단어가 갖는 부정적 의미가 이를 쉽게 했다. 그래서 합법적인 정부에 정의와 선이라는 가치를 부여했다. 돌이켜 보니 단편적 관점이었다. 신앙과 민주적 제도와 절차만을 정의의 기준으로 세운 터키 국민은 어쩌면 장기 독재의 늪에 빠질지 모른다.

터키뿐 아니다. 영국은 난민과 이민자 문제를 국익보다 높은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그래서 유럽연합(EU)을 탈퇴했고 그 역풍에 맞닥뜨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전체를 고려하지 않는 부분적 정당성을 내세우는 이들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윤리적으론 몰라도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며 버티는 공직자, 안보 앞에선 다른 말을 하지 말라는 정치인들이 그렇다.

종교가 아니라면 세상에 영원하고 지당한 기준은 없다. 그 기준을 세우는 방법이나 과정에 대한 명확한 정답도 없다. 나만이 옳다는 편협한 시각으로 세운 기준이 더 위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 주변의 사회현상이나 상황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올바름보다는 넓음 혹은 다양함이 기준을 세우는 방식이 돼야 한다. 터키 쿠데타에서 내가 얻은 교훈이다.

정희형 경희대 생체의공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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