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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건축] 우리의 주거문화에 대한 노학자의 비판과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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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현 식
건축가

『우리네 옛 살림집』을 펼치며

건축사사무소 기오헌

올 상반기에도 건축에 관한 책이 많이 출간됐다. 그중에서 김광언의 『우리네 옛 살림집』(열화당)은 나에게 유달리 반가운 책이다. 『한국의 민속주거지』(민음사)로부터 시작한 살림집 시리즈의 노학자다운 근사한 마무리이기도 하지만, 건축 전문가와는 달리 민속학자로서 저자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먼저 살펴서 집의 형태(形態, figure)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가족과 이웃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그들의 윤리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저자의 관점은 가족과 이웃 간에 지켜지는 질서, 덕목, 서로 간의 애틋한 보살핌이 어떻게 공간으로 구현되어 있는가, 전통적 자연관이 집에 어떻게 구체화되어 있는가에 집중한다. 이는 집을 집으로 만드는 형상(形相, form)이며, 바로 건축적 사유의 시작이기 때문에 건축가인 나에게 특히 고마운 책이다.

윤리적 가치가 우선했던 이들, ‘옛 살림집’들은 불과 40~50년 사이에 편리가 우선한 ‘아파트’로 급속하게 대체됐다. 우리는 그것을 미신, 설화, 그리고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애써 자위했다. 근대건축의 대표적 산물 중 하나인 아파트는 주거생활을 기능의 관점으로만 분석해 ‘nB+LDK(독립적인 방+공동공간인 거실과 부엌)’의 틀로 표준화한 물리적 공간조직에 다름 아니다. 거기엔 합리에 반하는, 즉흥성과 우발성, 욕망과 정서의 개별성과 같은 삶의 다른 면을 담아내기 쉽지 않다. 이를 두고 시인 이문재는 ‘집이 집에 없다’고 탄식한다. 그러나 ‘집’이 집을 나갔다고 해서 ‘나가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이라 단정할 수 없다. 저자의 탄식은 집의 무언가가 합리의 이름으로 잘려나가면서 같이 쓸려나간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회한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집지킴(家神)들을 미신이라 몰아내면서 어머니의 헌신적인 자식 사랑도 함께 버렸고, 조상숭배를 현실세계의 권력유지 수단이라 비판하면서 어른들의 삶의 지혜까지도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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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홍도동 어느 집의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따뜻한 봄볕에 해바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마을의 공론은 이러한 자리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사진 열화당]

물론 이러한 반성이 곧 옛집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압착할 수 있는 첨단기술을 가지게 되면서, 지구가 하나의 공동체로 묶이면서 현대인에게 집과 일터의 구분이 불분명하게 된 지 오래며 집의 부동(不動)의 전제조건이던 ‘가족’ 역시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이렇듯 모든 삶의 조건들이 너무나 달라져서 이미 집 밖으로 나간 것들이 그대로 돌아올 필연도 없고, 돌아올 리도 없다.

요즈음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박철수 『아파트』) 건강하지 못한 아파트 문화에 대한 성찰과 함께 변화된 삶의 조건으로부터 새로운 ‘이 시대, 우리의 거주형식’을 도출하려는 뜻있는 건축가들이 신선한 대안들을 활발하게 제시하고 있음은 참으로 고무적이다. 이럴 때 ‘옛집’과 ‘아파트’를 선과 악, 복고와 진보로 대치시키고, 하나를 획일적으로 선택하는 위험을 조심하면서 옛것이 돌아올 때는 같은 것이 반복해 오는 게 아니라 차이로 돌아오는 것임을 유념한다면, 『우리네 옛 살림집』에 채록된 사실들과 그것을 선택적으로 바라보는 김광언의 관점은 우리의 작업에 훌륭한 사례와 준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민현식 건축가·건축사사무소 기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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