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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핵 선제 불사용’ 논쟁, 남의 일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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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2009년 노벨 평화상은 그다지 업적도 없는 취임 직후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당시 선정위원회가 내놓은 근거는 같은 해 4월 5일 체코 프라하 연설을 통해 그가 밝힌 ‘핵무기 없는 세상’의 비전과 향후 ‘예상되는’ 공헌이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지난 7년 반 행보를 돌이켜 보면 결과는 실망스럽다. 러시아와의 새로운 전략무기 감축 협상, 네 차례의 핵 안보 정상회의, 이란과의 핵 협상이 성과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핵 선제 불사용’ 선언 검토
핵무기 사용 시나리오 최소화 가능
워싱턴 내부와 일선 지휘관은 반대
핵 군비 경쟁에 제동 걸면서
북핵 협상 돌파구 만들 수 있어
동북아 핵 갈등 완화 전기 될 것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은 미 의회의 반대로 20년째 발효되지 못하고 있고 미국 정부의 전략·전술 핵무기 현대화 작업은 가파르게 진행 중이다. 더욱이 북한의 핵 위협을 필두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 군비가 빠른 속도로 증강되고 있지만 미국은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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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시점에서 백악관이 뜻밖의 카드를 들고 나왔다. 아직 공식화된 건 아니나 오는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핵 선제 불사용(No First Use·NFU)’ 선언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다. ‘핵 공격을 당하지 않는 한 먼저 핵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요약할 수 있는 NFU 정책은 중국이 1964년, 인도가 2003년 채택한 바 있다. 냉전 시기 소련 역시 NFU를 고수하다 러시아가 들어서면서 나토에 대한 재래식 군사력 약세를 이유로 폐기한 바 있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나토 회원국들은 냉전 때부터 지금까지 ‘선제 사용 가능’을 고수해 왔다. 명분은 소련·동구권에 대한 재래식 군사력 열세다.

남은 임기가 6개월뿐인 오바마의 정책 전환이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우발적인 핵전쟁 발발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미국이 500여 기의 핵무기를 전진 배치해 위기가 발생하면 즉각 발사 가능한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건 바로 선제 사용 원칙 때문이다. NFU가 자리 잡을 경우 이러한 공세형 핵 배치의 전환은 물론 현장 지휘관이 핵무기 사용을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악몽 같은 시나리오도 최소화할 수 있다. 국방예산 감축 때문에 상당량의 전략·전술 핵무기를 감축할 수밖에 없는 게 미국 실정이고 보면 NFU 선언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워싱턴 내부부터 그렇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동맹국 반발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고,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 역시 미국의 핵우산을 약화시켜 동맹국들의 핵무장 욕구를 촉발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핵무기를 관장하는 일선 지휘관들의 반발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외부 환경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 정부는 북핵 위협과 중국의 부상으로 형성된 동북아의 전략적 불안을 이유로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NFU 선언이 공식화되면 미국의 확장 억제에 대한 의구심이 확대되고 동맹체제에 균열이 생겨 지역 내 미국의 위상을 훼손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그러나 꼼꼼히 들여다볼수록 게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미국의 핵전략·군축 전문가인 모튼 헬퍼린이나 제프리 루이스의 견해가 특히 그렇다. 이에 따르면 미국의 핵우산은 한국과 일본에 핵 공격을 가하는 국가에 대해 핵으로 보복 공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하는 의지의 과시이지, 미국이 핵으로 먼저 상대를 선제 공격해 주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컨대 미국은 북한이 재래식 전력으로 남침할 경우 핵무기로 대응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이 핵 공격을 감행하는 경우에도 미국은 일차적으로 재래식 전력을 중심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단언이다. 이러한 기조는 2010년 미국의 핵 태세 검토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에서 명백히 드러난 바 있다.

결론은 이렇다. 미국은 이미 선제 불사용 기조를 유지해온 것이나 다름없다. NFU 채택을 지지하는 미국 전문가들은 선제 불사용이 보편적 규범으로 자리매김할 경우 전반적인 핵 군비경쟁에 제동을 걸면서 북한과의 핵 협상에서도 돌파구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를 통해 ‘동북아 비핵지대’ 같은 구상을 적극 추진한다면 지역 내 모든 국가에 이득이 된다는 논리다.

오바마 대통령이 NFU를 선언한다고 해서 차기 행정부가 이를 고스란히 계승한다는 보장은 없다, 공화당과 군부의 반대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NFU에 대한 미국 다수 유권자의 압도적 지지와 인류의 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도덕적 책무가 있다. 우리로서는 하루가 다르게 첨예해지는 동북아의 핵 갈등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당위도 있다. 바다 건너 남의 일이 아니라 한반도의 운명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는 이슈라는 뜻이다. 곱씹을수록 고민이 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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