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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문학상] ⑤ 예심위원들의 릴레이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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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사실을 설명하지만, 문학은 진실을 말한다.
-이기호, '오래전 김숙희는'('창작과비평' 2016년 봄호)

1993년부터 2002년까지 총 9시즌으로 제작된 미드 'X파일'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추적하는 FBI 수사관들의 에피소드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담아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그 인기가 식지 않은 덕분인지 'X파일'은 종영된 지 13년 만에 새롭게 10시즌이 제작되어 2016년 방영되었다). 'X파일'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은 어린 시절 여동생이 외계인들에게 납치되는 것을 목격한 수사관 폭스 멀더(데이비드 듀코브니)가 육하원칙의 합리적인 언어를 동원해 미스테리한 사건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스컬리(질리언 앤더슨) 앞에서 항상 중얼거리는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라는 대사이다.

이기호의 '오래전 김숙희는'에 대해 말하는 이 짧은 글의 서두에서 생뚱맞게 'X파일'을 언급하는 까닭은 이기호가 이 단편을 통해 “진실은 법 너머에 있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읽히기 때문이다. 소설은 “결혼한 지 9년 만에 처음 떠나온 여름휴가”지인 제주도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장기미제 전담팀” 소속 수사관들의 방문을 받는 정재민의 당혹감으로 시작된다. 장기미제 전담팀이 조사하고 있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0년 10월 20일”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 해상공원 인근 방파제”에서 발생한 “김준수”의 살인사건이다. 사망자의 아내인 김숙희와 그녀의 내연남 정재민에게 수사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맞춰졌지만 그들에게는 분명한 알리바이가 있어 미제로 남은 살인사건이었다. 공소시효가 “3개월 정도” 남아 영원한 미궁으로 빠질 뻔한 이 사건의 재수사가 시작된 것은 갑작스럽게 김숙희가 자수를 해왔기 때문이다.

장기미제 전담팀의 팀장인 하준영은 정재민에게 과거에 했던 “허위진술”은 공소시효 기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말하며, 그때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캐묻기 시작한다.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정재민은 김준수의 살인이 김숙희의 단독 범행임을, 그녀의 알리바이를 조작한 것에 자신이 연관된 것은 어떤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범행을 고백하는 김숙희의 전화를 받고 당황한 상태에서 나온 단순한 임기응변이었음을 말한다. 정재민은 여기에 덧붙여 그 당시 그녀와 맺었던 내연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유아용 교구 제작업체의 영업사원이었던 자신이 유치원 교사와 주고받았던 일종의 ‘영업’이었다고 고백한다.

'오래전 김숙희는'은 하준영 팀장의 심문과 정재민의 답변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살인에 대해 고백하는 김숙희의 직접적인 목소리는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정재민이 떠올리는 회상을 통해 김숙희는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메마른 삶을 삶고 있었는지, 정재민을 통해 느꼈던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사랑을 고백하는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는 남편에게 느낀 “수치심”과 살의가 어느 정도로 맹렬했는지를 독자에게 담담하게 전달한다.

15년 전 김숙희는 자신에게 살갑게 대하는 정재민에게 “저한테 왜 이러시죠?”라고 물은 적이 있고, 3년 전에 다시 그를 찾아가 “저한테…그때 왜 그러셨어요?”라고 되물은 적이 있다. 15년 전에 정재민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똑같은 질문을 네 번째 받은 후에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냥 그쪽이 좋아서요”라는 마음에도 없는 답변을 하였다. 3년 전 정재민은 김숙희에게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고 돈봉투를 내밀었다. 정재민이 회상하고 있는 김숙희의 목소리는, 그녀가 그토록 듣고 싶어했던 답변은, 그의 자술서에도, 하준영의 보고서에도 기록될 수 없다. 하지만 되돌아올 수 없는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진 그때, 그들이 무엇을 했는가를 되묻는 김숙희의 목소리에는 법의 언어로는 담아낼 수 없는 진실에 대해 말하는 떨림이 미약하지만 분명하게 있다. 법은 육하원칙에 근거한 명확한 사실을 찾지만, 문학은 인과의 톱니바퀴에 맞물리지 않는 진실에 귀를 기울인다. 이기호는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

미지와의 조우
-정용준, '선릉 산책'('문학과사회'2015년 겨울호)


'미지와의 조우'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1977년에 제작한 SF영화이다. 멋지게 번역된 제목 덕분에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이 영화의 원제는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이다. 미확인비행물체 또는 그것에 탑승한 외계인과의 직접적인 만남이 가능할 정도로 가깝게 접촉하는 것을 뜻하는 이 원제는 미 공군이 사용하는 전문적인 용어라고 한다. 여기서 외계인은 ‘제3의 종(種)’으로 지칭되는 데, 이것은 너나 나가 아닌, 우리의 범주에 들지 않는, 그렇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누군가를 가리키고 있다.

'선릉 산책'은 정용준 판본의 ‘미지와의 조우’라고 부를 수 있는 단편이다. ‘나’가 만나게 되는 미지의 대상은 “자폐” 또는 “정신지체”의 증후를 보이는 ‘한두운’이란 스무 살의 남자이다. 실업자인 ‘나’는 “시급이 만원”인 “매력적인 알바”를 놓치기 싫어하는 예전 직장 선배의 부탁으로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한두운’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명 “아이 돌보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성장의 형태와 시간의 흔적이 불균형하게 뒤섞인 기이한 외형, 자해를 방지하기 위해 쓴 헤드기어, 체력을 소진시켜 빠른 수면을 유도하기 위한 용도로 매고 있는 무거운 백팩, 외부와의 소통이나 시선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 행동 방식, 과도한 식탐과 아무 곳에나 침을 뱉는 무례한 행동. ‘나’는 ‘한두운’의 이러한 모습에서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볼 때마다 불편했고 기분이 나빠”지는, 불가해와 불쾌를 지각한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가진 ‘휴머니티’의 범주로 그를 가져와 이해하고, 동정하려는 시도를 한다. ‘나’는 아무런 감정 없이 풍경을 응시하는 ‘한두운’의 모습에서 다른 차원의 것들과 소통하는 예지의 흔적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무의 종류를 분간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천재의 증거를, 순진무구한 그의 행동과 표정에서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고귀한 심성을, ‘제멋대로’ 상상한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통해 그와 소통했다고 느끼며, ‘한두운’의 헤드기어를 벗기고 백팩을 대신 매는 방식으로 그의 불편과 고통에 동정을 표한다.

‘나’가 ‘한두운’에게 보여주는 호의와 동정은 인간이 가졌다고 여겨지는 보편적인 마음을 상기시키지만 그것의 정확한 정체는 의뢰인의 일방적인 통보로 근무 시간이 오후 9시까지 연장되는 순간 냉정하게 폭로된다. ‘나’가 보여준 ‘휴머니티’는 사실 매력적인 시급이 만들어낸 성실한 근무 태도였던 것이다. ‘돈’과 ‘서비스’의 이상적인 조화는 상의 없는 근무 연장을 통해 깨어지고, ‘나’는 곧 극도의 불쾌함과 짜증을 느끼게 된다. ‘나’의 “어두운 감정”은 ‘한두운’을 향한 분노와 폭언, 불성실한 근무 방식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두운’과 ‘나’는 불량 청소년들과 불미스러운 충돌을 하게 되고 이는 ‘한두운’의 자해로 이어진다.

합리와 이성의 방식으로 파악될 수 없는 대상과의 만남을 다루고 있는 '선릉 산책'은, 동일한 소재와 주제를 다룬 좋은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미지’의 존재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이 불가능한 시선을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휴머니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이끌어낸다. 덧붙여 정용준은 불가해와 불쾌의 감정을 주는 것이 분명한 ‘미지의 대상’에 대해 타인들이 어렵지 않게 표출하는 이해와 동정이 사실은 ‘휴머니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돈’에 의해 간신히 지탱되는 일종의 대가(代價)에 불과함을 냉정하게 말해주고 있다.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서사화한 것처럼 읽히는 이 단편에서 정용준은 자신이 가진 솜씨와 사상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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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원=문학평론가.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강의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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