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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연해주는 슬픈 노래, 돌아오지 못한 민족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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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는 이타카 왕 오디세우스가 목마를 고안하여 트로이를 멸망케 한 뒤 자신의 왕국으로 귀환하는 길에서 겪은 모험담, 특히 기이하면서도 진진한 항해일지다. 호메로스는 거칠고 무례한 구혼자들로부터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를 구하고 왕국을 되찾은 오디세우스가 고향에 안주하게 함으로써 『오디세이아』를 ‘돌아오는 노래’로 끝내고 있다.

이문열의 돌아오는 노래 ①
‘평화 오디세이’의 뱃전에 기대

그런데 현대 그리스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호메로스보다 더 긴 오디세이아로 ‘떠나는 노래’를 덧붙였다.

아내는 돌아온 남편을 성가셔 하고 아들은 빨리 왕관을 물려받기 위해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 암살을 모의하게 되니, 그러잖아도 지루하고 무미한 일상의 반복을 못 견뎌 하던 오디세우스는 다시 친구들을 모아 항해를 떠난다.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난 뒤 지쳐 돌아와 해변의 늙은이에게 빵을 구걸하며 자랑스레 ‘돌아오는 노래’의 서두를 시작한다. 하지만 틀림없이 그의 백성이었을 그 늙은이는 예전과 달리 그 노래 듣기를 거절한다.

“우리들은 먹고살기 위해 밤낮으로 일해야 할 신세여서/왕이 돌아오거나 타향에서 물에 빠져 죽거나 상관하지 않는다오./우리들은 비와, 채소밭과, 양과, 우리들 자신의 땀을 흘려야/신들이 우리들에게 먹게 해주는 거룩한 빵을 걱정할 따름이고/ 왕들은 잡을 수 없는 새요, 바람에 불려 흘러가는 구름이라오.”

그런 다음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한다.

“우리 임금은 어릴 적부터 경솔한 데가 많아서/ 아무리 방랑하고 살인과 고생을 무수히 겪었어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기 때문에/폭풍 같은 그의 머릿속에서는 마흔 개의 맷돌이 요란하게 돌아간다오.”

오디세우스가 맞받아 외쳐보지만 늙은이는 끝내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고, 그래서 현대의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떠날 때의 노래, 곧 ‘떠나는 노래’로만 남게 된다.

“나도 역시 생각해 보았는데, 대지가 ‘그렇다’고 말할 때 /분노해서 ‘아니다!’라고 외치는 인간이 가장 위대하다./그리고 내가 아는 어떤 영혼은 절대로 악마나, 인간이나, 신의 멍에에 눌려 굴복하는 일이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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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헤이룽(黑龍) 강, 몽골에서는 하라무렌(검은 강)이라 불리는 아무르 강. ‘아무르’란 단어는 몽골어로 ‘평화’란 뜻이다. ‘평화 오디세이 2016’ 참가자들이 귀국을 하루 앞둔 12일 아무르 강을 돌아본 뒤 유람선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해 처음 ‘평화 오디세이’에 초청받았을 때 나는 우리가 부를 노래가 ‘돌아오는 노래’가 될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출발 무렵 갑작스러운 수술로 입원가료에 들어가면서 그 항해에 끼일 처지가 못 되었다. 나중에 이런저런 지면을 통해 북·중 국경으로 길 떠났던 이들의 오디세이를 들었지만, 더러 닮은 가락이 있어도 그게 특별하게 ‘떠나는 노래’로는 들리지 않았다. 이번도 그랬다. 우리는 떠나고 또 돌아와 노래하겠지만 그것은 ‘돌아오는 노래’일 것이라고 보았다. 왜 떠나며 무엇을 얻으려 했는가를 먼저 깃발로 내건 목적적인 항해를 떠나는 것이기 보다는 떠나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돌아와 추체험하고 정리·저장하게 되는 짧은 항해일 것이라 여겼다.

전세기임에도 비행기는 인천공항에서 제 시간에 떴다. 그런데 기내 아나운서가 예정하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비행시간이 왠지 길어진 듯하고, 바다 위로 솟아오른 기수의 방향도 전과는 달라진 듯해 나는 좌석 앞 여행 정보 화면을 눈여겨보았다. 거기 뜬 항적을 보니 비행기는 서해에서 조금 남하해 우리 반도를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서해 쪽 북한 해변을 우회해 만주 쪽으로 날고 있었다. 그리고 점선으로 예정된 항로는 창춘(長春)을 지나 지린(吉林)성 쪽을 가로지른 뒤 다시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어져 있었다. 12년 전 마지막 방문 때의 대한항공 정기항로는 우리 반도를 동쪽으로 가로지른 뒤 동해 쪽 공해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로 곧장 날아가는 것이었고, 비행시간은 두 시간이 채 안 됐던 걸로 기억한다.

그 변화에 나는 비로소 느긋한 유람객의 심사에서 퍼뜩 깨어나며 새삼스레 여행 일정과 동승한 항해인 명단과 그들의 약력이 실린 안내 책자를 찾아 살펴보았다. 단체여행의 경우 나는 비행기에 타면서부터 모든 것을 주최 측에 맡기고 귀국할 때까지 여행 일정표 한 번 살펴보지 않는 수가 종종 있다.

동승자 명단은 이번 오디세이아가 돌아와 노래 부르기 위한 항해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져 있는,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 떠나는 항해 같다는 혐의를 품게 했다. 여야 중진 의원들을 비롯해 이른바 북방정책이나 한·러 경협 혹은 극동 개발에 관여해 본 전직 각료들에서부터 대기업과 연관된 실무 협상단이나 정책기획에 관여했던 전문가 그룹, 그리고 관련 전공에서 자주 그 이름을 상기시켜 주던 교수들과 연구자들로 이루어진 쉰 명 남짓한 명단이 그랬다. 태반은 이 오디세이아에서 자신이 부를 노래를 미리 준비해 왔거나 이미 지정곡을 부여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게도 언제고 순번이 되면 부를 준비가 되어 있는 노래가 없지는 않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에 맞춰 2012년에 펴낸 『불멸』이란 전기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블라디보스토크는 누구보다 풍성한 민족의 노래와 애환의 역사를 내 의식에서 영영 씻겨가지 않을 침전으로 남겨 주었다. 연해주,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의 원동 지방은 을사보호조약으로 주권을 잃은 민족의 원한과 분노가 그 얼어붙은 대지 아래 농축되어 장쾌한 분출을 기약하던 땅이고, 그지없이 순정(純正)하고 애절하여 그를 떠올릴 때마다 속절없이 가슴만 먹먹해지는 안 의사 마지막 두 해의 발자취가 눈벌 위에 점점이 뿌려진 선혈처럼 찍혀 있는 땅이다.

뒤이어 살펴본 행사 일정표도 내가 품게 된 혐의를 더 짙게 하는 데가 있었다. 3일차에 들어 있는 제1세미나와 6일차에 들어 있는 제2세미나는 돌아가 부르기 위한 노래의 연습 같은 느낌, 더 나아가서는 그 노래를 부르기 위해 떠난 오디세이아의 핵심 소절이란, 약간은 지나친 단정을 끌어내게 했다. 그러나 더는 근거 없는 속단으로 이제 막 시작된 이 오디세이아를 한쪽으로만 몰아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쯤에서 일정표를 덮고 좌석 등받이에 기대 눈을 감았다.

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는 현대호텔까지 한 시간을 달려 여장을 풀고, 독수리 전망대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내려다보며 지난번 방문 때의 기억을 더듬을 때만 해도 나는 ‘돌아가는 노래’를 장만하는 오디세우스 선단의 한 사공이었다. 이전에 나는 두 번 블라디보스토크에 내린 적이 있다. 1990년대 후반 신한촌을 비롯한 조선인 집단거주지의 흔적을 돌아보고 중앙아시아에서 귀환하는 고려인들을 위한 재정착 후원사업의 초기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우수리스크 부근을 찾았을 때와 2000년대 초입의 어느 늦겨울 6박14일(중간 기착지 체류 포함)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기행의 출발지로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았을 때였다.

그때도 나는 집으로 돌아가 들려줄 많은 노래를 기억 속에 갈무리했다. 특히 두 번째 1월 말의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은 두껍게 얼어붙은 항구와 쩌엉쩌엉 얼음을 가르며 뱃길을 내는 쇄빙선을 처음 보는 감동과 그날 외출에서 가장 먼저 구입해 귀 가리개까지 내리고 썼던 수달피 방한모의 별난 따스함으로 특히 기억에 선명하다. 이제 세월이 부수고 파묻어 버린 것들과 새로 짓고 세운 것들이 그 옛 노래들을 고쳐 부르게 하리라.

마린스키 극장에서의 세 시간이 넘는 발레 감상도 돌아가 부를 노래 속의 한 구절을 보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친절한 프로그램 설명이 없어 난데없음과 지루함 사이를 오락가락하는데 갑자기 끼어든 축복 같은 한 부(部) - 현란한 파드되(2인무) 모음은 이 항해에서 오래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될 듯하다.

그렇지만 이번 오디세이에서 돌아가 들려 줄 노래가 가장 진진했던 항로는 아무래도 둘째 날의 자루비노 항 시찰에 이은 크라스키노, 하산 답사 길이 될 것이다. 특히 하산은 거기서 보게 될 두만강 철교와 남으로 북한 땅 경흥으로 빠지는 길이 꼭 옛날에 가본 길을 다시 가보는 듯한 설렘으로 나를 이끌었다. 가만히 돌이켜 보니 그 길은 간도에서 더 견딜 수 없게 된 안중근 의사가 훈춘(琿春) 경신향(鄕) 금당촌 에서 며칠을 묵고 러시아로 옮겨 앉기 전 마지막으로 고국 땅을 바라보며 지나갔던 길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연추라고 불렸던 크라스키노는 내가 『불멸』을 쓰기 전에 한번 답사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든 곳이기도 하다. 내가 본 자료 속의 연추는 30리에 걸친 넓은 지역으로 상연추와 하연추로 나뉘어 있었는데, 조선 사람들은 특히 상별리·하별리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그중에서 러시아 이름으로 나즈네에 안치혜라고 불리기도 하는 하연추가 특히 내 마음을 끌었다. 연추가 포함된 노우키에프스크 지역 도헌(都憲)을 지낸 최재형 선생의 저택과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는 옛 동방정교 회당을 찾아보고 싶어서였다. 나중에 무장투쟁을 하다 하바롭스크에서 총살당한 최재형 선생의 숭고한 행적을 내 졸필이 그 원래의 크기대로 그려내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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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에 있는 단지동맹비 앞 기념석에 새겨진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 문양에 손을 맞춰보고 있는 이문열 작가. [사진 김현동 기자]

노몬한 전투의 서전(緖戰) 격이 되는 장고봉 전투가 벌어졌던 장고봉도 거기서 멀지 않다는 말에 사정이 된다면 한번 돌아보고 싶은 곳이었고, 근래 새롭게 건립되었다는 ‘단지(斷指) 동맹’의 비석이 있는 곳도 한번쯤은 들러 참배해야 할 곳이었다. 러시아 땅과 북한 땅 사이에 몇 ㎞ 폭으로 길게 끼어 있다는 중국 땅이 만드는 삼각지도, 옛 녹둔도(鹿屯島)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버스로 세 시간을 달려 자루비노 항에 이를 때까지만 해도 우리 오디세이아는 순조로웠다. 하산 쪽은 우리를 보아주기로 한 러시아 수비대에 사정이 생겨 답사할 수 없게 되었지만 버스 안에서 줄곧 이어진 전문가적 식견과 고급스러운 가이드에 우리의 기대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자루비노 항에 이르러 한때 반짝했던 남방 항로의 위축, 특히 속초로부터 여객선 항로가 끊기게 된 원인 설명이 묘한 여운으로 먼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금강산 여행이 막히고, 잇단 우파 정권의 대북강경책이 좋은 항로 하나를 막아버렸다는 투로 들리는데, 금강산 관광이 왜 막히게 되었는지 우리 관광객의 안전은 왜 무시되어도 좋은지는 따져보는 이가 별로 없는 듯했다. 옛 연추를 둘러보는 일도 뜻 같지가 못했다. ‘단지 동맹’ 기념비에서의 정성스러운 참배를 끝으로 옛 발해성이 있었다는 야산에 오른 우리는 상연추도 하연추도 장고봉도 그곳 지리에 밝은 교수님의 손가락 끝을 따라 먼빛으로 어림잡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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