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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오름기행] 제주도 막내 섬의 숨은 비밀

| 제주오름기행 ⑩ 비양봉
 

금능으뜸원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비양도. 에메랄드빛 바다 너머의 섬이 눈에 잡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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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한라산의 다른 이름이다. 제주도가 한라산이고 한라산이 제주도다. 바다에서 폭발한 화산이 고스란히 섬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비양도가 꼭 그렇다. 바다에서 솟은 화산이 비양봉이고, 화산이 굳은 섬이 비양도다. 섬이 곧 오름이니 비양도는 비양봉의 다른 이름이다. 바다 건너편에서 바라볼 때는 섬이었는데, 막상 섬에 들어오니 섬이 아니었다. 영락없는 오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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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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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바라본 비양도. 비양도 대부분이 비양봉이어서 섬이 곧 산처럼 보인다.

 비양도는 보기에 좋은 섬이다. 비양도(飛揚島)는 ‘하늘을 날아온 섬’이라는 이름처럼 에메랄드빛 바다에 외따로이 박혀 있는 섬이다. 비양도 들어가는 배는 한림항에서 뜨지만, 비양도는 한림항 남쪽 협재해수욕장이나 금능으뜸원해수욕장에서 훨씬 잘 보이고, 훨씬 아름답게 보인다. 거리도 남쪽의 해수욕장이 가깝다. 비양도는 협재해수욕장에서 직선거리로 1.5㎞ 떨어져 있지만, 한림항 하고는 5㎞ 거리에 있다.

 협재나 금능에서 비양도는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다. 물빛 고운 바다 위에 걸터앉은 모양도 마냥 평화롭다. 하나 바다를 건너 섬에 들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나 보다. 제주도에 사는 사람에게도, 제주도를 들른 사람에게도 비양도는 파란 바다 위에 뜬 그림 같은 풍경일 따름이었다. 여태 비양도를 보면서 비양봉을 바로 떠올리지 못한 까닭이다.
 

비양봉 올라가는 길에 있는 대숲길. 비양도는 옛날에 대나무가 많아서 죽도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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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에 들어가면 비로소 섬이 사라진다. 대신 오름이 나타난다. 해안과 맞닿은 가장자리만 빼고 섬은, 완만하거나 가파른 봉우리 자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비양도를 옛날에는 죽도(竹島)라고 불렀단다. 섬에, 아니 산에 대나무가 많아서였다. 지금 섬에는, 아니 산에는 대나무가 많지 않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관청의 과도한 대나무 조공 요구를 견디다 못한 섬 주민이 대숲에 몰래 불을 놨다고 한다. 예전만큼 대나무는 없지만, 섬의 모습은 여전히 산의 모습이다. 산을 덮은 띠(볏과에 속하는 풀)가 여름에는 푸르고 가을에는 누레지는 대로, 섬도 여름에는 푸르고 가을에는 누런 색으로 바다에 떠 있다.
 

황근이 노란 꽃을 피웠다. 습지에 조성된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염생식물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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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양도는 작은 섬이다. 면적이 0.5㎢도 못 된다. 해안을 두른 길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아도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엄격히 말하면 섬은 타원형이라 해야 옳다. 하나 지도에서 보면 비양도는 동그라미가 먼저 떠오른다. 섬의 동서 길이가 1.02㎞이고 남북 길이가 1.13㎞이어서 가로와 세로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전국 지도에서도 비양도처럼 원형에 가까운 섬은 찾기 힘들다.
   

비양봉 정상을 오르는 길. 정상 위에 작은 등대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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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에는 본섬 말고도 사람이 사는 섬이 8개가 있다. 우도ㆍ마라도 등 여러 섬이 관광지로 개발됐다지만, 비양도는 여전히 한갓진 섬마을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한림항에서 배를 타고 비양도에 들어온 사람은 4만 명이 겨우 넘는다. 반면에 우도에는 지난해 200만 명이 넘게 들어갔다(제주시청, 입도객 기준).

 주민등록 기준으로 현재 비양도 주민은 160여 명이다. 그러나 실제 섬에 거주하는 주민은 60명도 안 된다. 11년 전 ‘봄날’이라는 TV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반짝 호황을 누렸다지만, 하루에 세 번 들어오는 배는 좀처럼 운행 횟수를 늘리지 못하고 있다. 섬에 상수도가 들어온 해가 1998년이고, 섬을 한 바퀴 도는 일주도로가 난 해가 2001년이다. 섬에서 한나절을 머물렀지만 자동차는커녕 오토바이 한 대도 눈에 띄지 않았다.

 비양도 사람은 배가 들어오는 압개포구 쪽에 모여 산다. 집마다 돌담을 둘렀는데, 오랫동안 돌보지 않았는지 군데군데 허물어져 있었다. 해안을 빼고는 평평한 땅이 드물어 농사도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고구마를 심은 텃밭(우영팟)이 띄엄띄엄 보였다. 마을을 둘러보다 돌담과 돌담 사이에 비스듬히 누운 통나무 하나에 눈길이 머물렀다. 제주도 전통 가옥에서 대문 역할을 하는 ‘정랑’이었다. 그러나 굴뚝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취재에 동행한 제주지질공원 해설사 김용하(62)씨가 “제주도 전통 부엌은 굴뚝이 없다”며 “비양도는 제주도의 30년 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통을 지키고 있다기보다는 후미져 쇠락했다는 뜻으로 들렸다.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기이한 생김새의 바위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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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섬의 중심 가까운 자리에 비양봉 분화구가 있다. 비양봉은 분화구가 두 개 있는데, 큰 것의 바닥 둘레가 800m이고 작은 것의 바닥 둘레는 500m다. 협재나 금능에서 보이는 높고 낮은 봉우리 두 개 안쪽에 분화구가 하나씩 들어앉아 있다. 큰 봉우리 정상에 등대가 서 있고, 등대 앞까지 탐방로가 이어져 있다. 압개포구 마을 뒤편에서 탐방로가 시작하는데, 정상까지 쉬엄쉬엄 30분이면 다다른다. 띠 덮인 초원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옛날에 다 못 태운 대숲을 통과하기도 한다. 등대가 서 있는 정상에 오르면 제주도 서쪽 해안이 훤히 내다보인다. 비양봉의 해발고도는 114m이고, 비고는 104m다.
 



천 년 세월과 만 년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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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제법 비슷하게 생겼다. 비양도 서쪽 해안에 있다.

 비양도를 소개하는 자료를 보면 ‘막내 섬’이라는 표현이 수시로 등장한다. 제주도에서 가장 늦게 생성된 섬이라는 뜻이겠다. 본래 섬의 탄생은 역사보다 신화가 더 가깝게 마련인데, 비양도의 탄생은 놀랍게도 역사가 증명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온다.

 ‘고려 목종 5년(1002년) 6월 제주 해역 한가운데에서 산이 솟았는데 산꼭대기에서 구멍 4개가 뚫리고 닷새 동안 붉은 물이 흘러나온 뒤 물이 엉켜 기와가 되었다.’

 이 기록의 주인공이 비양도라는 학설이 지금까지 유력하다. 이 기록에 근거해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어린 섬, 비양봉은 가장 어린 오름으로 불렸다. 비양봉은 서귀포시 예래동의 군산과 함께 분화 사실이 문자로 기록된 두 개 오름 중 하나다. 군산은 목종 7년(1007년) 폭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2010년 비양도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지질을 다시 조사했더니 비양도를 구성하는 화산암이 최소 2만7000년 전에 형성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김용하 지질공원 해설사의 설명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비양도는 2만7000∼3만2000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측정됩니다. 섬에서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된 것도 비양도가 천 년 전에 솟았다는 주장과 배치됩니다. 신석기시대는 최소 5000년 전입니다. 1700년대에 제작된 제주도 지도를 보면 비양도와 차귀도 사이에 섬 하나가 있습니다. ‘서산’이라는 이름까지 적혀 있지요. 지도의 표기가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만, 이 지도가 맞다면 천 년 전에 분화한 섬은 서산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은 바다에 잠겨 볼 수 없는 미지의 섬 말입니다.”
 

비양도 바다는 맑다. 맑은 물 아래로 붉은 바닥이 드러난다. 화산쇄설물 송이가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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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비양도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증거를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증거가 ‘송이’라는 화산쇄설물이다. 붉은 색의 작은 자갈처럼 생긴 송이는 제주도 중산간 오름에서 흔히 발견되는 화산암 알갱이다. 제주 오름 중에는 ‘붉은오름’이 몇 개 되는데, 하나같이 송이가 많은 오름이다. 송이의 붉은 색이 오름 이름에 반영된 것이다. 송이는 인체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이후 건축 재료는 물론이고 화장품 재료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함부로 채취하면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송이는 육지에서 분화한 화산이 주로 생성하는 쇄설물이다. ‘수성화산’이라고 불리는, 바다에서 솟은 화산은 좀처럼 송이를 낳지 못한다. 용암 대부분이 바다에서 식어 화산재가 되기 때문이다. 비양도가 천 년 전에 바다에서 솟았다면 해안에서 이렇게 많은 송이가 발견될 수 없다. 비양도 맑은 바다를 들여다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비양도 바다는 물결에 따라 붉게 흔들린다. 바닥에 송이가 죄 깔려 있어서이다.

 10t이 넘는 거대한 화산탄도 중요한 증거 중 하나다. 화산탄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화산암 덩어리를 말한다. 지름이 64㎜가 넘는 둥근 모양의 화산쇄설물을 화산탄이라고 하는데, 화산탄이 놓인 모습을 보고 지질학자는 화산탄이 날아온 방향을 판단한다고 한다. 그런데 비양도 북서쪽 해안에서 놓인 이 10t짜리 화산탄은 동쪽 제주도가 아니라 남쪽 바다에서 날아온 것이란다. 지금 비양도의 남쪽 바다에는 바다 말고 아무것도 없다. 다만 1700년 전 지도에서 서산이라고 표시했던 섬이 있었을 따름이다.
 

일명 ‘애기 업은 돌’. 지질학에서는 용암기종이라고 부른단다. 천연기념물 제439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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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양도가 천 년을 묵었든, 만 년을 묵었든 여행자에게는 상관없는 일일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비양도에 들면 꼭 해안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티 없이 맑은 바다를 끼고 기이한 생김새의 바위가 경쟁하듯이 늘어서 있다. 이를테면 천연기념물 제439호로 지정된 용암 바위는 두고 두고 기억에 남는다. 별명이 있다. ‘애기 업은 돌’. 이름만 들어도 생김새가 짐작이 된다. 용암이 폭발하면서 내부에 공간이 생긴 굴뚝형 화산지형이라는데, 영락없이 아기를 업은 엄마의 모습이다. 코끼리바위도 있다. 코끼리바위는 울릉도가 유명하지만, 비양도의 코끼리바위도 제법 잘 생겼다. 비양도 북쪽 해안에는 아예 희한한 모양의 바위를 일렬로 세워놓은 수석거리가 조성돼 있다.
 

비양도 동남쪽 ‘펄랑’이라는 습지에서 바라본 비양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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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펄랑’이라는 습지에는 바닷물이 들락거린다. 물이 들어오면 잔잔한 호수처럼 비양봉을 제 물빛에 담아낸다. 습지 둘레를 따라 조성된 탐방로를 걷다 보면 다양한 습지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마침 계절이 맞아서 ‘황근’이라는 염생식물의 꽃을 볼 수 있었다. 달맞이꽃처럼 노란색이었는데, 귀한 꽃이라고 했다. 펄랑이 끝나는 지점에 압개포구가 있는 마을이 있고, 포구마을의 끝에서 한림항으로 들어가는 배가 뜬다. 뭍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바라본 비양도는 영락없는 비양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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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도 맛집 호돌이식당의 보말죽. 맛이 진하다.


● 여행정보=한림항 도선대합실에서 하루 3번(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 비양도 들어가는 배가 뜬다. 비양도에서는 오전 9시16분, 낮 12시 16분, 오후 3시 16분 한림항으로 가는 배가 뜬다. 배 시간은 15분 정도다. 편도 요금 어른 3000원. 064-796-7522. 비양도 선착장 근처에 비양도 맛집으로 소문난 ‘호돌이식당’이 있다. 보말죽이 특히 유명하다. 1만원. 064-796-8475.


글ㆍ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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