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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oo으로 배웠네-시즌2] 사랑하고 싶다면, 부산행 열차에 탑승해라!

서울 한복판에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졌다.

일단 감염되면 연애 세포가 급격히 파괴되어 사랑을 할 수도, 사랑을 받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사람들은 속된 말로 이를 ‘연애고자 바이러스’라 불렀다. 그리고 감염자들은 ‘연애 좀비’가 됐다. 오로지 먹고, 싸고, 악다구니 치며 싸우는 것이 전부인 삶.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그건 먹는 거냐?”고 되묻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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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흉한 서울. 연애 좀비가 몰려온다.


나는 지금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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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니다. 연애 좀비


연애를 안한지 오래된 사람의 경우, 이 바이러스에 특히 취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광화문 네 거리에 멍한 얼굴로 서 있다. 눈 앞에 한 커플이 손을 잡고 지나갔다. 화가 치밀어 그 사이를 가로질러 갈까하다가, 갑자기 달콤한 음식 냄새가 나서 고개를 돌렸지만 혼자서 맛집에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화가 났다. 고층 빌딩에 걸린 전광판에선 시사 프로그램이 무료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한 의학박사가 출연해 최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연애 좀비’들의 증상을 설명했다. 그 증상은 다음과 같았다.

증상 1. 성욕 감퇴.
오랜 금욕생활로 성욕이 사라진다. 안 하다(?)보면 정말 안 해도 괜찮은 상태가 되고, 그러면 안하고 싶어진다는 것. 대신 왕성한 식욕이 이를 대체한다.

증상 2. 방바닥 성애.
‘귀차니즘’이 극에 달해 방바닥을 사랑하게 된다. 영화 ‘부산행’의 좀비가 전력질주를 즐긴다면, 연애 좀비는 방바닥을 굴러 다닌다는 게 차이점이다.

증상 3. ‘심쿵’ 제로.
심장이 두근두근한 게 무슨 기분인지 잊어버리게 된다. 드라마 ‘W’의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남자)’ 강철(이종석)을 봐도, ‘닥터스’의 스윗가이 홍지홍(김래원) 선생을 봐도 심장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내 심장이 고장났나봐.

증상 4. 사회성 퇴화.
연애와 결혼을 종용하는 인간들과 자연히 멀어진다. 부모와도 멀어진다는 게 단점.

증상 5. 연애혐오.
연애지상주의자들이 꼴보기 싫어진다. 커플들이 눈 앞에서 ‘꽁냥꽁냥’거릴 때 화가 치민다. “거 참, 집에 가서 하시죠”라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다. 진짜 튀어나오면 막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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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바닥이 좋아. 흔한 무성욕자의 하루

박사는 이 다섯 가지 중에서 세 가지만 해당해도 연애 좀비라고 했다. 나는 영락없는 연애 좀비였다. 지금 서울은 연애 좀비들이 즐비했다. 그 사이를 걷고 있을 때면 사하라 사막 모래 위에 맨 얼굴을 부비는 것처럼 황량했다. 건조하거나 찌푸리거나 성난 얼굴로 좀비들은 홀로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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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까지 나를 고독하게 한다


전문가들은 너도나도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설은 ‘팍팍설’이었다. 먹고 살기가 하도 팍팍해서 연애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렸다는 거다. 생존도 힘든 판국에 연애 세포가 설 자리를 잃고 자연히 퇴화했다는 게 중론이었다. 물론 이 와중에도 개인에게 원인을 돌리는 사람이 있었다. 개인이 무능하거나 못생겨서, 개인이 매력이 없어서 연애를 못하는 것인데 왜 세상 탓을 하냐는 거다. 한 고위 공무원은 “개, 돼지도 연애를 하는데…”라고 발언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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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리도 연애하기 힘든 세상


나는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런 상태로 만든 것인가 생각하며 걷고 또 걸었다. 치료법은 없었다. 검은 사제들은 악령이 씐 것이라며 좀비를 눕히고 구마 의식을 벌였고, 무당은 “뭣이 중하냐”며 좀비 앞에서 칼춤을 추고 굿을 했다. 낭만주의자들은 “그래도 사랑 뿐”이라며 좀비 상태를 면할 방법은 무한한 사랑밖에 없다고 했다. 세상이 점점 괴기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정처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서울역에 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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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서울역


확성기를 든 남자가 내 앞을 지나갔다. 그는 머리에 ‘부산행’이란 머리띠를 두르고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좀비 자매님, 부산에 가셔야 합니다. 그곳엔 사랑이 있어요. 연애하고 싶다면 부산행 열차에 오르세요.”

나는 멍한 얼굴로 전단지를 구겨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는 이내 쓸쓸해졌다. ‘사랑’이란 고릿적 단어를 듣고나니 울적해졌다. 오래 전 사랑에 울고 웃었던 순진한 소녀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 때 소녀는 조건 없이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행복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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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 때는 사랑에 빠진 소녀였지


나는 서울역을 한 바퀴 돌아 확성기를 든 남자 앞에 다시 섰다.

“정말인가요?”

남자는 말없이 다시 전단지를 건넸다. 거기엔 싱그러운 소년과 소녀가 해변을 뛰어노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부산에 가면 모래사장과 바닷바람이 있고 밀면과 싱싱한 회가 있으며 해운대에선 급만남이 자연스럽게 성사된다고 했다. 불현듯 나는 그곳이 부산이 아니라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에 사랑의 전당이 남아있을 거라고. 무능해도, 못생겨도, 나이가 많아도, 돈이 없어도,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과 맺어질 수 있는 연애의 파라다이스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졌다. 그래서 연애 좀비들이 모두 사랑꾼이 되는 그 날이 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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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좀비에게 사랑을 허하라


지금 나는 열차에 오르는 중이다.

486만 486번째 감염자 gogobusan@joongang.co.k**r
사진자료 = 영화 ‘부산행’ ‘서울역’ ‘호타루의 빛’ ‘웜 바디스’ 스틸.
 
**'연애를 OO으로 배웠네' 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문화콘텐트에 연애 경험담을 엮어 연재하는 잡글입니다. 잡글이라 함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이며 익명으로 연재합니다. 연애 좀비가 사랑꾼이 되는 그날까지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합니다. 많은 의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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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