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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건국절 논란을 중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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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인간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조금 아는 일부를 빼고는 전부 모른다. 동서철인들은 이 점에서 한결같다. 소크라테스가 ‘지혜로운 사람’으로 불린 까닭은 그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점 때문이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좋다”며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병”이라고 언명한다.

 근년의 거센 건국절 논란을 보면 우리는 모두 중병에 걸려 있다. 모르는 것을 계속 안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잘못 아는 것을 국가법제로까지 만들려 하니 병도 아주 심한 중병이다. 10년 전 건국절 주장이 제기되었을 때 해당 주장의 사실적 오류로 인해 곧 사라질 줄 알았던 담론이 진영 구도를 타고 점점 커져 이젠 법제화를 논하는 위험 단계까지 다다랐다.

 우선 “대한민국은 모든 나라에 있는 건국절이 없는 나라”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모든 나라는 고사하고 건국절이 있는 나라 자체가 극히 드물다. 오랜 역사를 갖는 문명국가 중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특정 국가 정체의 출발을 기념하는 건국절, 건국기념일이 있는 나라를 찾기 힘들다. 자기들 문화·문명·공동체·민족·국가의 유구한 역사에서 근대·현대의 특정 정체의 등장 시점으로 건국 기점을 삼을 경우 자신들의 연면성(連綿性)과 통합성, 역사성과 계속성에 대한 자기부정이기 때문이다. 독립·해방·광복·통일·혁명을 기념하는 문명국들이 건국을 기념하지 않는 소이다. 몇몇 왕조나 독재체제, 신생국가나 전체주의 체제들이 국가 정체의 전면적 새 출발을 알리려 과거 단절을 위한 건국기념일을 제정하는 사례는 있으나 이조차 드물다.

 미국의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을 ‘건국기념일’로 해석해 대한민국 건국기념일을 만들자는 주장도 오류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헌법조차 없는 상황에서의 독립선언(Declaration of Independence)일이다. 따라서 독립선언, 독립전쟁, 헌법 제정, 연방 결성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건국 과정에 대해 독립선언 하나만을 건국·건국기념일·건국절로 해석하는 견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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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대한민국 건국절을 영문으로 표기하자면 national foundation day (of the Republic of Korea) 정도가 될 텐데 우리는 이미 개천절을 national foundation day of Korea로 명기해 우리 공동체의 사실상의 건국일 의미로 기념하고 있다. 개천절이 곧 건국일은 아니지만 새로이 건국절을 만든다면 외부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두 건국절로 비칠 가능성도 크다.

 북한과의 정통성 경쟁 때문에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만들자는 주장도 턱없다. 인권과 자유, 평등과 복지, 평화와 공존의 인류 보편 가치에 비추어 세계의 누가 오늘날 남한과 북한의 정통성을 혼동하고 있는가? 건국절 제정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관련이 없다. 정통성 있는 청년교육을 위해 건국절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시적 분단을 절대화하는 협애한 이념일뿐더러 이승만 정부 이래의 모든 역사 교육을 부정하는 자기 비하다.

 특히 동아시아의 건국기념일 구상이 주변국을 침략한 메이지 유신 이후 이토 히로부미를 포함한 일본 침략주의자들·천황주의자들·군국주의자들의 사유로부터 발원했다는 점을 유념한다면 보편민주국가 대한민국이 일본 침략주의의 잔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한민국이 1919년 건국되었다는 주장 역시 오류다. 스스로도 계속 사용한 ‘임시정부’ 표현을 포함해 ‘건국강령’ 명칭과 내용을 보면 독립운동 및 건국대비 준비조직(의 하나)임이 분명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한 기원임은 분명하나 그것이 곧 대한민국 건국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됐다면 ‘임정’에 포함 안 되었거나 ‘임정’과 갈등하고 반대한 숱한 독립운동가들은 어떻게 되는가? 또 대한민국 ‘건국’ 훈장은 무엇을 말하는가?

 더욱이 임정의 상징 김구는 신생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대한민국 수립 시점에도 대한민국을 부인하고, ‘임정봉대’를 주장하며 ‘임정’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임정’ 대표를 제3차 유엔총회에 파견하려까지 했다. 심지어 그는 대한민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계승’을 부인했다. 게다가 제헌국회 의장 이승만은 13도 대표자들이 모여 국민대회라는 주권 행사를 통해 수립된 한성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했다. 해외 임시정부들은 주권 절차 없이 독립운동가들 스스로 구성한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적 이성을 회복해 건국절 논란은 중단해야 한다. 건국절 제정과 건국절 기념은 안 된다. 그보다는 대한민국 건국 정신과 원칙, 헌법과 철학을 고구하여 오늘에 되살리려는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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