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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아직도 가족관계·스펙 보는 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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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선임 기자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영화 ‘친구’에 나온 대사다. 영화 속에선 ‘아버지 직업이 변변치 못하니 네 행동이 그렇다’는 식의 기분 나쁜 복선이 깔려 있다. 시쳇말로 금수저라면 ‘실력도 없으면서 든든한 아버지 뒷배경 때문에 네가 떵떵거린다’는 비아냥으로 비칠 수 있다.

한데 우리나라 기업 10곳 중 8곳이 이런 질문을 응시생에게 한다. 입사지원서에 적도록 했다. 고용노동부와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518개 기업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부모의 직업, 직위, 학력에 심지어 월수입이나 재산 상황까지 묻는다. 부모의 스펙을 채용 기준으로 삼는다는 얘기다. 채용의 공정성을 의심케 한다. 이래서야 개천에서 용 나기는 글렀다.

취업준비생이 입사지원서에 떡하니 자리한 부모의 스펙난을 채우며 어떤 생각을 할까. 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 문을 두드리고 있는 이창식(29)씨는 이렇게 말했다.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다. 이 항목이 당락을 결정하는 것 같아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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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나는 이래도 자식은 잘돼야지”라며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고생하는 우리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심정은 어떨까. 입사지원서에 적힌 부모 스펙 항목을 보면 괜스레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부터 가지지 않을까. 자식의 앞날을 당신이 망치는 것 같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까.

이뿐 아니다. 조사 대상 기업 중 95%가 생년월일을 물었다. 나이를 따진다는 의미다. 심지어 10곳 중 한 곳은 키나 몸무게, 본적까지 묻고 있었다. 향우회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헬스클럽에 가입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게 왜 필요한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경영계는 그동안 능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과 생산성 향상을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꼽아 왔다. 그러면서 직무 능력과 아무 상관없는 응시자 뒷조사를 한다는 건 이율배반적이다. 오히려 인턴 경력이나 사회봉사 경험, 직무에 맞는 자격 검증과 같은 데 공을 들여야 한다. 고용부 권기섭 직업능력정책국장은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인재 양성을 위해선 직무 능력을 우선시해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게 고용시장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일하려는 청년에게 부모의 자격과 본적 같은 걸 요구하는 행태는 일부 노조가 자행하는 세습 고용과 다를 바 없다. 가뜩이나 양극화의 대물림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이제 뒷배경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그런 시대와 결별할 때가 됐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안 그래도 가슴 아파하는 우리네 부모와 청년이 너무 많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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