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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피그말리온과 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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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홍
EYE24 차장

감동과 환호,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던 리우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24일엔 대한민국 선수단 본진도 입국했다. 지난 17일간 지구 반대편에서 펼쳐진 각본 없는 드라마에 살인적인 열대야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밤마다 전해오는 승전보를 시시각각 속보로 처리하면서 유독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박인비의 신들린 롱퍼팅도 손흥민의 눈물도 아닌, 여자 태권도 67㎏급에서 금메달을 딴 오혜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에 올려놨다는 ‘피그말리온(Pygmalion)’이란 단어였다.

피그말리온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키프로스의 왕이자 조각가다. 그는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의 여인상을 조각했는데, 그 아름다움에 반해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피그말리온의 진심을 전해 들은 여신 아프로디테는 그의 사랑에 감동해 여인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줬다. 이후 그의 이름은 ‘간절히 원하고 기대하면 언젠가 이뤄진다’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자 암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심리학에서도 이처럼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이 좋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실증적 연구도 적잖다. ‘응답하라 1988’의 삽입곡 ‘함께’가 큰 인기를 모은 것은 ‘언젠가는 좋은 날이 찾아올 거야’라는 희망적 메시지에 힘입은 바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만년 2인자’라는 설움에 ‘국내용’이란 비아냥까지 받았던 오혜리에게 피그말리온은 절실하게 붙잡고 싶은 희망의 동아줄이었을 게다. 2008년엔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탈락했고 2012년엔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허벅지 근육이 파열돼 꿈을 접어야 했던 그에게 세 번째 도전은 두려움 그 자체였을 게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내게 기회가 주어지기나 할까 확신조차 들지 않았을 게다. 하지만 그는 피그말리온이란 다섯 글자를 부여잡고 “잘 될 거야”라는 끊임없는 자기암시를 통해 스스로를 응원하며 끝내 꿈을 이뤄냈다.

이 같은 오혜리의 피그말리온에 ‘헬조선’을 살아가는 이 땅의 젊은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맞아, 더욱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날이 찾아올 거야”라며 다시금 각오를 다지게 될까. 아니면 “현실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유리 천장보다 더 단단한 콘크리트 천장을 어떻게 뚫으란 말이냐. 피를 말리는 생존경쟁에 직면한 우리 같은 청년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며 고개를 저을까.

오혜리의 성공은 흔치 않은 사례일 수 있다. 개천에서 용은 더 이상 나기 힘든 세상인 것도 맞다. 그렇다고 긍정의 힘을 애써 무시할 필요도 없다. 시각장애인이자 청각장애인이었던 헬렌 켈러도 “세상이 비록 고통으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힘 또한 가득하다”고 고백하지 않았나. 베스트셀러 작가 앤 라모트는 “세상의 모든 뛰어난 글의 처음은 대부분 최악이었다”고 했다. ‘글’을 ‘젊은이’로 바꿔도 다르지 않다. 차는 짓이겨질수록 강한 향이 나는 법이다. 리우의 땀방울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박신홍 EYE24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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