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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사회주의 체제 붕괴와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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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지금부터 25년 전인 1991년 8월, 소련에서 일어난 쿠데타는 역사를 바꿨다.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재건) 정책으로 기득권 세력을 곤경에 빠뜨린 고르바초프를 제거하고 소비에트연방(소련)을 유지하려는 개혁 반대파의 쿠데타였다. 그러나 수십만 명의 시민이 탱크를 에워싸 옐친이 있는 러시아 정부 건물로 군대가 진격하는 것을 막았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 체제는 붕괴했다. 소련은 해체돼 15개의 독립국가가 생겼고 자본주의로의 체제 이행이 시작됐다. 소련 붕괴 과정은 동유럽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이들 국가에서도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가 도입됐다. 우연과 필연이 결합돼 20세기 후반 최대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 붕괴는 북한의 미래에 관해 중요한 함의를 준다. 첫째, 사회주의 체제는 지속 불가능하다. 서방 자본주의 국가와의 소득 격차가 높아지고 생필품 부족이 심화되자 주민들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다. 경제의 비공식화가 진전되자 이들은 내심 자본주의를 지지했다. 체제 전환 없는 제한적 개혁은 부작용만 낳았다. 사회주의 경제의 수명이 다한 것이다. 어떤 정책도 효과를 내지 못하자 체제는 무력증에 빠졌다. 정치적 측면에서 서방 세계와의 접면이 증가하면서 주민들은 자유와 개방을 갈구했다. 이를 마냥 억압할 수 없어 도입했던 부분적 자유화도 사회주의 붕괴에 기여했다.

북한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수백 개의 시장이 들어서고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북한 내에는 체제 변화의 에너지가 가득 차 있다. 마치 북한은 가스가 꽉 찬 방과 같다. 이 상황에서 북한 전체를 위해 가장 좋은 정책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 즉 자본주의로 체제를 전환하는 것이다. 문을 점차적으로 열어 가면서 그 에너지를 이용한 중국이 그 예다. 그러나 옛소련과 동유럽은 가스가 폭발한 후 다시 시작했다. 장기적으로 북한 정권은 시장과 싸우다가 죽든지, 아니면 타협해서 체제 전환을 하든지 두 가지 선택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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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체제 붕괴의 시점을 예측할 수는 없다. 이는 필연적 요인에 우연적 요소가 결합돼 그 시점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하버드대의 버그슨(Bergson)과 펜실베이니아대의 레빈(Levine)은 소련 경제 연구의 석학이다. 이 두 교수는 1985년 ‘2000년을 향해 가는 소련 경제’라는 제목의 책을 공동 편집했다. 책 제목이 말해 주듯 이 책의 저자 중 어느 누구도 소련이 곧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소련 사회주의는 2000년은커녕 책 출간 후 6년 만에 붕괴하고 말았다. 냉전시대 소련 분석이 주 임무였던 미국의 중앙정보국(CIA)도 마찬가지였다. CIA는 1929년 미국의 20%에 불과했던 소련 경제 규모가 80년대 말에는 3분의 2까지 추격한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이 곧 붕괴될 것을 전제하고 결정되는 정책은 많은 경우 무력하고 때로는 위험하다. 학문도, CIA도 알지 못했던 체제 붕괴 시점을 정책결정자가 불완전한 정보에 의지해 예단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최근 해외 파견 근로자와 해외 주재 고위층의 탈북이 북한 붕괴의 조짐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탈북은 체제가 무너질 전조라기보다 북한의 잘못된 정책의 귀결이다.

북한 정권은 자본주의로 체제를 바꾸면 독재 권력 유지가 어려워질 것으로 믿고 있다. 대신 외국에서 돈을 벌어 생존하는 안전한(?) 전략을 택했다. 러시아와 중국 등에 7만~10만 명의 근로자를 파견해 수천억원의 외화를 상납받는 것이다. 심지어는 외교관들도 외화벌이에 종사한다. 그러나 경제 환경이 변하자 이것이 북한 정권에 부메랑이 되었다. 경기 둔화로 이들의 돈벌이가 어려워졌고 달러 대비 루블화·위안화의 가치가 하락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급한 북한 정권은 이전과 동일한 달러 금액을 바치라고 압박하니 이를 견디기 힘든 이들이 탈북을 결행하는 것이다. 사실 해외 파견 근로자나 주재원은 북한 정권과의 연결고리가 가장 약한 그룹이다. 이들은 해외에서 개방된 세계의 실재를 직접 체험한다. 이러한 객관적 사실 인식이 개인의 주관적 이유와 결합되면 탈북을 선택한다.

북한 조기붕괴론이라는 가설 위에 정책을 세울 수는 없다. 대북 압박의 명분을 위해 조기붕괴론을 이용한다면 남북 관계의 정상화는 더욱 멀어진다. 북한과의 대화도 더 어려워지고 북한이 붕괴할 때까지 밀어붙이자는 남한 내의 여론이 높아진다. 오늘은 지난해 목함지뢰 사건 이후 8·25 남북합의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는 너무 먼 길을 온 것 같다. 북한의 체제 이행을 돕는 길로 가능한 한 빨리 돌아가기 위해 지금은 제재라는 수단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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