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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경의 Shall We Drink] <30> 구름 위의 한잔, 인스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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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부르크 구시가와 노르트케테가 어우러진 풍경.


푸른 하늘 아래서 마시는 맥주를 좋아한다. 하늘은 푸를수록, 맥주는 차가울수록 더 좋다. 그 차가운 맥주를 마셔도 하루가 많이 남아있다는 시간적 여유가 술맛을 돋운다. 고개를 젖혀가며 한잔 쭉 비울 때 방랑자처럼 하늘을 떠도는 구름이 눈에 담기면 더 좋다.

한낮의 맥주는 어디서 마시느냐가 맛을 좌우한다. 해발 2000m 이상의 산 위에서 마시는 맥주의 맛을 떠올려 보라. 그것도 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가봐야 한다는 알프스에서 마시는 맥주라면? 상상만으로도 캬! 소리가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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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엘리자베스는 정상에 바삐 오르기보다 천천히 주변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지난해 어느 가을날, 노르트케테(Nortkette)행 산악열차에 뛰어들었다. 자칭, 알프스의 수도 인스부르크(Innsbruck)에 도착한 지 며칠째, 산에 오를 만큼 날이 개기를 기다렸던 참이었다. ‘북쪽의 쇠사슬’이란 다소 거친 뜻의 노르트케테는 오스트리아의 알프스다. 한데, 알프스의 수도 인스부르크라니.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살던 나라는 스위스 아니었나?’ 하는 의문을 품는 이들을 위해 짚고 넘어간다. 알프스는 스위스의 전유물이 아니라, 스위스·오스트리아·이탈리아에 걸쳐 있는 거대한 산맥이다.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중심에는 해발 574m 고원 도시 인스브루크가 있다. ‘인 강 위의 다리’라는 뜻처럼 대자연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화유산을 잇는 징검다리 같은 매력을 품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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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가 귀띔해준 자리에서 마주한 풍광은 한참동안 넋을 잃고 볼 만큼 웅장했다.


산악열차는 이내 비취색 빙하수가 흐르는 인(Inn) 강을 건너 훙거부르크(Hungerburg)에 도착했다. 해발 860m 훙거부르크는 노르트케테로 오르는 케이블카의 출발점이다. 여기서 케이블카로 제그루브(Seegrube)까지 가서, 케이블카를 갈아타면 정상 하펠레카르(Hafelekar)다. 케이블카를 타고 수직 상승하듯 산을 오르는 동안 창밖 풍경은 변신을 거듭했다. 빽빽한 침엽수림 사이로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장난감처럼 보였다. 폐 속으론 차가운 공기가 스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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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트케테를 오르는 케이블카.


마침내 해발 2334m의 하펠레카르. 케이블카 밖으로 나오니 구름이 발 아래에 걸려 있다. 눈앞엔 흰 만년설을 중절모처럼 쓴 험준한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신들의 세상에 닿은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드는 풍광이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이 어느 쪽이예요?”라고 묻는 내게 안내를 맡은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정상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주변을 둘러봐요. 벤치가 놓여 있죠? 여기선 풍경을 음미해야죠. 따라와요. 인스부르크 사람들만 자리를 알려줄게요. 전망이 끝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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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트케테 정상에 오르면 구름 위의 세상이 펼쳐진다.


그게 바로 노트르케테를 뒷산 오르듯 가는 인스부르크 사람들의 트레킹 방식이었다. 앞만 보고 높은 곳으로 오르기보다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는 것. 그렇게 온몸으로 대자연을 흡수하는 듯 했다. 그들처럼 한참을 그 풍경 속에 머문 후에야 구름 위로 솟은 길을 따라 정상에 올랐다. 뺨을 스치는 공기가 상쾌했다. 맥주 한잔만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 것 같았다.

 

제그루베의 노천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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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제그루베(Seegrube)로 내려왔다. 제그루베는 겨울엔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다. 노천 레스토랑도 있어 사계절 여행자의 휴식처가 되어준다. 전통 요리 몇 가지와 지역 맥주를 골라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구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차가운 칠러탈(Zillertal)을 한잔 들이키니 마음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기분 탓이겠지만, 구름 아래에서 마시는 맥주 맛과는 차원이 달랐다. 칠러탈은 알프스의 칠러(Ziller) 강 이름을 딴 맥주로 1500년부터 알프스의 맑고 깨끗한 물로 필스너(Pilsner)와 밀 맥주(Weiss), 라들러(Radler) 등을 만들어 왔다. 비현실적으로 푸른 하늘 아래, 맥주와 구름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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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의 점심 식사 그리고 칠러탈 맥주 한 잔.


구름 한 점 뚝 따서 주머니에 담아오지 못해 아쉬웠지만 ‘내 인생의 낮술’을 마셨다는 기쁨을 천천히 되새기며 산을 내려갔다. 언젠가 다시 오면 트레킹으로 땀을 흘린 후 벌컥벌컥 한낮의 맥주를 즐기리라 다짐하며 구시가로 향했다. 인스부르크 어느 거리에서나 만년설을 하얀 중절모처럼 쓰고 있는 노르트케테가 눈에 들어왔다. 특히, 색색의 중세풍 건물들과 거대한 산이 조화를 이루는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Maria Theresien Straße) 풍경이 아름다웠다. 그 길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낮에는 구름 위에서 한잔 했으니, 저녁엔 만년설을 바라보며 한잔 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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