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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왕 많이 부르지 말라던 카라얀…그에게 쉬는 법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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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대 데뷔 30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 국내 투어를 하고 기념 음반도 발매한다. [사진 유니버설 뮤직]

올해 국제무대 데뷔 30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54)가 25일부터 국내 투어 리사이틀을 연다. 25일 충주를 시작으로 26일 군산, 28일 서울, 30일 창원, 다음달 3일 안양까지다. 유럽에서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 제프 코헨과 함께다. 자신의 장기인 오페라 아리아 16곡 등을 담은 두 장짜리 컴필레이션 앨범 ‘라 프리마돈나’도 23일 발매한다.

음역 높아 목 혹사, 메이크업도 고역
와이어 액션에 생명보험 들고 연기
일할 땐 아주 작은 것에도 조심조심
술, 튀긴 음식, 아이스크림 안 먹어
30주년 앨범 ‘라 프리마돈나’ 발매
25일부터 전국 돌며 리사이틀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에서의 데뷔 이후 그는 언제나 뉴스와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등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에 섰고 나폴리 등 숱한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거장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89)은 그를 가리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소프라노”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국내 연주자로는 처음으로 1회 출연료 1억원을 넘긴 것도 그다(2002년). 대중가요에 도전한 2000년 크로스오버 앨범 ‘온리 러브’는 100만 장이 팔렸다. 공연을 앞둔 e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그동안 많은 일들을 했다. 상상도 못했던 성과를 이뤘다. 열심히 살아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고 했다.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86년 10월 26일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데뷔했다. 이탈리아 가수가 아니면 주역을 맡기 힘들던 시절이다. 동양인으로서 기적 같은 일이었다. 준비를 많이 해 떨리지는 않았다. 물론 흥분됐지만 빨리 무대에 올라가 노래하고 싶었다. 분장실이 수많은 꽃들로 화원 같았다.”
다섯 살부터 피아노를 쳤다.
“아버지는 월급쟁이셨다. 60년대 신혼생활을 전세방으로 시작했다. 첫 딸인 내가 어려서부터 튀었는지 동네 할머니들이 ‘아이가 너무 똑똑하면 단명한다. 뭐든 두드려야 액운이 나간다’고 하셨단다. 궁리 끝에 부모님이 피아노를 가르쳤다. 건반을 두드리게 한 거다. 절대 음감이 있어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바로 따라치며 노래 불렀다. 어머니가 오페라를 좋아해 임신 기간 내내 밤낮으로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나 테발디의 노래들 들으셨다고 한다. 욕심 많은 어머니 덕분에 피아노·발레·가야금·피겨스케이팅, 안 해 본 게 없다. 웅변학원도 다녔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 웅변대회에 나가 초·중·고·대학교 전체 대상을 탔다.”
이탈리아로 유학간 사연도 유명하다.
“서울대 음대 81학번으로 수석 입학했다. 입학 직후 연애를 하는 바람에 1년 동안 공부를 안 했더니 전과목 F를 맞았다. 1년만 성적이 안 좋아도 제적을 당하던 시절이다. 교수님께서 안타깝다며 유학을 권하셨다. 대학 때 놀아봐서 유학 가서는 철저히 음악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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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86년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이탈리아에서 데뷔할 당시의 모습. [사진 유니버설 뮤직]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유학 시절은 어땠나.
“절박했다. 공부해야 했다. 5년 과정을 2년 만에 마쳤다. 이탈리아어 실력이 부족해 어학원에 다녔다.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는데 이탈리아에 온 지 3개월 만에 이별 통보를 받았다. 5년 동안 한국에 돌아가지 않았다.”
카라얀과의 인연은.
“나는 운명론자다. 중고등학생 때 책상 위에 베를린 필을 지휘하는 카라얀 브로마이드를 걸어뒀다. 그래선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오디션에서 처음 만났을 때 떨리면서도 친근했다. 아침저녁으로 뵀던 분이니까. 머리카락도 만져보고 파란 눈동자도 가까이서 봤다. 나를 굉장히 예뻐하셨다. 그는 ‘밤의 여왕’을 많이 부르지 말라고 충고했다. 음역이 높아 목을 혹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바이올린 줄도 팽팽하면 끊어진다. 음악이라는 팽팽한 줄을 느슨하게 하고 쉬는 방법을 배우라’는 말씀도 기억에 남는다. 카라얀 자신도 평생 머릿속에 음악이 들어 있어서 힘들었다고 했다.”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역할이 유명한데.
“비인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역이다. 연습을 많이 해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소화하기 힘들다. 무대 메이크업도 고역이다. 화려한 왕관과 의상을 입은 채 와이어 장치를 달고 날아다니며 연기해야 한다. 생명보험에 가입해가며 출연했다.”
기억에 남는 성악가는.
“플라시도 도밍고다. 여러 장르의 음악에 대해 열려 있다. 고음을 힘들어하지만 항상 자신의 음역을 찾아서 열심히 해낸다. 미화원·식당 종업원들도 친근하게 대한다.”
어린 시절 영웅은 누구였나.
“수의사나 선교사였다. 어려운 사람들, 말 못하는 동물들을 돌봐주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커서 수의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개와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 주인 잃은 개를 데려다 돌봐주곤 했다. 그런 성향 때문인지 불의를 보면 못 참았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존경했다.”
엄격한 자기관리로 유명하다. 건강 관리 비결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단순하게 살려고 한다. 일 할 때 작은 것에도 주의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술·담배를 안 한다. 튀긴 음식, 아이스크림도 안 먹는다.”
한국 가곡을 부르며 눈물 흘리는 장면을 많이 봤다.
“88올림픽 전까지 한국 여권을 갖고 여행하는 건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약소국 국민으로 국경을 넘으며 무시당하다 보니 무대에서 우리 노래를 부를 때 설움이 북받친다.”
성악가 지망생들에게 충고를 한다면.
“누구도 연습을 대신 해주지 않는다. 유튜브 등 레퍼런스 영상은 참고자료로만 활용해야지 너무 의존하면 안 된다. 요즘 젊은이들은 빨리 무언가를 이루려고 한다. 성악은 지름길이 없다. 천천히 자기 길을 가야 한다.”
앞으로 계획은.
“콘서트나 투어가 많다. 콩쿠르 심사나 마스터클래스도 시간 날 때마다 참여하려 한다. 장애 어린이 후원, 반려동물 돌보기, 유네스코 평화예술인 활동도 계속 한다. 다음달 1일 이천에서 유네스코 자선음악회를 여는데 수익금을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사용한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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