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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무너지는 뇌전증 여고생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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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논설위원·복지전문기자

부산시 해운대 ‘광란의 질주’ 사건 운전자가 19일 특정범죄가중처벌의 도주치상(뺑소니)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 보도자료 어디에도 뇌전증(간질)은 없다. 당초 뇌전증 발작 때문에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찰 결론은 뺑소니였다. 언론과 경찰 둘 다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반성문을 쓰지 않는다. 뇌전증 환자에게 낙인을 찍었고 수많은 젊은이의 꿈에 대못을 박았는데도.

이달 초 경기도에 사는 김모(40)씨와 딸(고1)이 한 병원 진료실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여학생은 2년 전 전신 발작을 일으켜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항경련제 치료를 받고 발작 없이 학교에 다닌다. 유명 예술고에서 화가의 꿈을 키웠다. 하루에 약을 두 번 먹는 것 외에는 여느 학생과 다름없다. 그런데 사달이 났다. 교회에서 여름캠프에 보내지 말 것을 요청해 가지 못했다. 그전에는 학교 체육시간에 제외됐다. 김씨는 “응급상황이 생기면 학교나 교회에서 당황할까 봐 딸의 상황을 미리 알려준 내가 바보였다”고 후회했다. 그 학생은 “뇌전증 환자를 격리해야 한다” 등의 극단적 댓글에 상처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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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는 직장 여성(26)은 뇌전증 수술을 받고 약을 먹으며 문제없이 살고 있다. 그런데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부모님이 반대한다”며 돌아섰다. 그녀의 아버지마저 “결혼해도 괜찮을까”라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병 때문에 저런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남들보다 두세 배 노력했는데, 그게 물거품이 됐다. 부산 사고의 범인이 뇌전증인 것처럼 알려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황희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뇌졸중·뇌종양 등을 앓고 나면 뇌전증이 오기도 한다. 60세가 넘어가면 누구나 걸릴 수 있다”고 말한다. 수술받거나 약을 먹으면 완치된다. 70%는 약물로 잘 조절돼 운전에 지장이 없다. 약을 잘 먹지 않는 게 문제일 뿐이다. 대한뇌전증학회 홍승봉(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회장은 “미국의 콜로라도 등 상당수 주에서 의사 소견서가 있으면 운전을 허락한다”고 말한다.

뇌전증 환자는 30만~40만 명. 중증(5~10%)이라도 수술하면 약물로 관리가 된다. 암·뇌질환은 수술비의 5%만 부담하지만 뇌전증은 이런 혜택이 없어 1000만원가량 내야 한다. 5월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때 조현병 환자가 도매금으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이번에는 뇌전증 환자가 당했다. 이런 ‘사회적 폭력’이 너무 싫다.

신성식 논설위원·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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