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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알 수도 있는 사람 #3. 프리터 족(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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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은 사무실 쪽엔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노트북 모니터에 코를 박고 있는 용주의 중얼거림이 열린 문틈으로 줄줄 흘러나왔다.

“……안개의 왕자, 번트로즈마이어. 아우디의 전신인 아우토유니온의 레이서다 이거지. 시야 10m를 확보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짙게 낀 날 독일 정부에서 주최한 레이싱에 나섰다. 자유로의 안개에 비할까. 폭이 좁고 노면이 미끄러워 브레이크를 잡아도 쉽게 밀리고 커브길 또한 심하게 꺾인 도로가 많아 험난하기로 유명한 에펠 그랑프리? 칠흑 같은 안개를 뚫고 질주해 우승을 차지. 안개의 왕자라는 호칭은 이때 생긴 거겠네.……”

1930년대 후반 많은 레이싱에서 우승을 하던 번트로즈마이어는 1938년 봄 독일 정부가 후원하는 세계기록 단축 레이싱에 참가해 아우토유니온에서 개발한 신유선형 차를 몰고 시속 400km로 질주한다.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에서의 레이싱이었다.

70도를 오르내리는 운전석의 한증막 같은 온도 속에서 운전자는 쉴 새 없이 브레이크와 엑셀 페달을 밟으며 기어 조작을 해야 한다. 경주용 자동차에는 에어컨이나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ABS 같은 편의 장치가 없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 오로지 다리의 힘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달리는 속도와 차량의 무게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는 힘은 100kg에 육박하는 거구를 들어 올리는 힘과 맞먹는다. 커브 길을 돌 때면 자신의 몸무게에 몇 배에 이르는 원심력을 감당해야만 한다. 시속 400km라면 몸의 뼈만 남기고 살이 탈수되어버리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400km/h, 용주는 머리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긴장을 놓으면 순식간에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 운전자는 운전석 안에 앉아 있지만, 경기 내내 100m 달리기를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듯한 체력 소모와 심장 압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현대와 달리 1930년대 경주용 차에는 안전벨트나 헬멧 등 운전자를 보호하는 장치들이 전무했다. 번트로즈마이어는 물론 당시의 모든 레이서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어마어마한 속도를 내는 차를 몰았다.
 
번트로즈마이어가 속도 경쟁을 위해 아우토반 출발점에서 출발한 지 불과 몇십 초 만에 느닷없이 발생한 돌풍을 만난다. 돌풍을 견뎌내지 못한 그의 차는 도로에서 튕겨져 나가는 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로 번트로즈마이어 역시 차에서 튕겨져 나가 주변 가로수 가지에 걸린 채 죽음을 맞이한다.
 
용주는 거기까지 읽은 후 몸서리를 쳤다.

기성은 박살 난 스쿠프의 백미러를 가는 동안 용주를 계속해서 힐끔거렸다. 부품실이며 기성의 숙소이기도 한 사무실은 한가했다. 기성은 안개등에 쓸 전구를 가지러 사무실로 들어왔다가 웹서핑에 몰두하고 있는 용주의 등 뒤에 섰다. 용주는 번트로즈마이어의 이야기를 다 읽은 후 방금 위험한 커브 길을 돌고 난 레이서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속 400km라···.
 
“번트로즈마이어? 레이서 하게?”

 
용주는 마우스를 놓고 몸을 뒤로 젖혔다. 천정과 붙은 벽 모서리를 따라 빽빽하게 걸려있는 액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성이 엔진 튜닝을 해 준 차들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포츠 카들의 사진이었다. 수인이 타고 나타났던 차는 없었다.
 
“레이서는 돈 없으면 꿈도 못 꿔.”
 
“레이서가 운전만 잘하면 되지 별거 있어?”

 
용주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기성은 코웃음을 쳤다.
 
“돈 있어? 연습하는 데만 매달 수천만 원씩 들어. 알바족이 무슨 수로 감당해. 게다가 그 세계 일찍 시작했어야 그나마 이름이라도 알릴 수 있어.”
 
“스폰서들 있잖아.”
 
“그건 유명한 선수가 된 다음의 이야기지. 독일 F3 대회에서 우승한 우리나라 선수가 있었는데 연습할 돈이 없어서 레이서를 그만두는 게 현실이야. 레이싱 실력 좋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건 그 세계에선 허무맹랑한 얘기란 말이야. F1이라도 나가야 제대로 대접을 받는 데 F1에서 뛸 수 있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될 것 같아? 세계적으로 22명밖에 없어. 쉽게 말해서 그 수준에 들어간다는 건 운전 하나만큼은 신의 경지에 이르러 있어야 그나마 꿈이라도 꿀 수 있는 거야. 도로에서 추월하는 거랑 달라.”
 
“랠리 같은 건?”

 
기성은 견적서 철을 들다 굳어버린 듯 멈추었다.
 
“우리나라에도 몇 개 있지. 그래도 돈 많이 들어. 우리가 쳐다볼 수 있는 세상이 아냐.”
 
“그런 거 말고 사막 같은 데 막 달리는 거 있잖아.”
 

“꿈도 야무지네! 그건 돈도 어마어마하게 들지만 죽을 각오를 하고 출전하는 거야. 거리에 한 번 나갔다 오더니 너 가지가지 한다. 낼모레가 서른인데, 철들려면 멀었다.”
 
“철들면 학교 때려치우고 카센타를 하는 거냐?”
 

기성은 용주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은 채 작업장으로 나갔다. 그는 안개등 커버를 떼어낸 후 전구를 갈았다. 그리곤 기름때에 전 장갑을 벗어 잘 포개어 공구함 위에 올려놓은 후 카센터 곳곳에 걸려있는 사진들을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이서들이 레이싱 걸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들, 레이싱 장면들, 스포츠카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사막 위를 달리는 포드 익스플로러. 먼지가 돌풍처럼 자동차의 뒤에서 피어올랐고 사막 저 너머에는 푸른 하늘만 펼쳐져 있었다. 기성은 오랫동안 그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용주는 컴퓨터 전원을 끈 후 작업장으로 나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용미만 아니었어도…….”
 

용주는 얼결에 누이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누나?”
 
용주는 대답 대신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누나가 왜?”

 
용주는 거리를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엄마와 용희가 한동안 미친 듯 찾아다녔다. 한 계절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다. 차가 많이 다니는 곳이면 어김없이 플래카드를 걸었다. 아버지는 허구한 날 제보한 사람을 만나러 다녔다. 하지만 용주는 찾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비밀 말해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실은 비틀즈의 ‘헤이 쥬드’야. 슬픈 노래일지라도 즐겁게 불러보세요. 내가 이 노래 좋아한다는 거 아무도 모를 거야. 고통을 느낄 때, 쥬드여, 무리하지 말아요 세계를 짊어져서는 안 돼요. 슬픈 노래일지라도 즐겁게 불러보세요.‘
 
15년은 지난 일인데, 잊혀진 줄 알았는데, 안개를 만나도 떠오르지 않았는데, 지난밤에는 안개 곳곳에 누이가 숨어 있었다.
 
“용미가 뭐냐, 용미가. 너 업어 키웠잖아.”

 
누이가 사라진 건 벌써 15년 저쪽의 일이었다. 살아 있을까. 너무 많은 걸 담고 있는 머리와 깨질 것만 같았던 몸을 가진 여자가 10년의 세월을 견뎌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럼에도 용주는 그녀가 살아 있을 것만 같았고 기이한 건 요즘 들어 그녀가 몹시 보고 싶었다.

기성은 용주의 얼굴을 힐끔 쳐다본 후 가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도로는 차로 채워졌다. 신호에 걸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차들의 지붕 위로 은행나무의 그늘이 내려앉았다. 바람은 따뜻했고 햇살도 부드러웠다. 겨울 동안 앙상한 팔을 내민 채 떨던 은행나무 가지에도 푸른 싹이 돋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운전자들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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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삼삼오오 짝을 이룬 젊은 사람들로 붐볐다. 여자들은 주로 짧은 치마를 입었고 남자들은 대부분 청바지 차림이었다. 게 중에는 요란한 복장의 사람들과 외국인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대부분 건너편 술집 거리로 향하는 발걸음이었다. 대로 건너편 술집 거리에선 금요일마다 카니발이 열렸다. 술집들이 마주 보고 있는 거리공원에선 퍼포먼스가 열렸고 술집들은 일찍부터 문을 열고 손님을 받았다. 금요일엔 술값도 저렴했고 밤새 춤을 출 수 있는 곳들도 널려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도 저 속에 있었는데···.”
 
어느새 용주가 기성의 곁으로 다가오며 허튼소리를 해댔다. 용주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떨어트린 후 발로 비벼 껐다.
 
“1등은 누가 했냐?”
 
“나도 몰라. 여자라는 거 밖에.”
 

“차는?”
 
“SR이 미친 짓이라며?”

 
용주는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던 영미의 빨간 헬멧이 떠올랐다.
 
“2002년식 티뷸런스.”

 
기성은 용주의 대답에 호응해주지 않았다. 그의 눈길은 멀리서부터 빠르게 차선을 바꿔가며 앞 차를 추월해 나오고 있는 까만색의 스포츠카에 박혔다. 차의 옆면 가득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듯한 문양이 수놓아져있었다. 헤드라이트 사이에는 주광색의 불빛이 반짝거렸고 전면 유리창 밑에는 스티커로 붙여 고정시키는 장식품들이 빽빽이 세워져 있었다. 운전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최소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SR을 하는 거 같아. 매번 SR의 조건이 달라. 생각 있으면 다음에 한 번 같이 가. 그나저나 이거 튜닝은 제대로 된 거지?”
 

용주는 스쿠프의 앞바퀴를 발로 찼다.
 
“넌 튜닝하면 스피드나 올리는 걸로 알고 있는데 튜닝은 적극적인 안전수단이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냐?”
 
“어쨌든 제대로 튜닝이 됐으면 2등이 아니라 1등이었다는 거지.”

 
용주는 자신을 쳐다보는 기성의 눈길을 피한 후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안개 속에서 레이스를 하는 놈들이 미친놈들이지. 너 그러다 끝장나는 수가 있어. 그것도 도박이야.”
 

용주의 귀에는 필사적이었다던 수인의 말이 뱅뱅 돌아 기성의 말이 들어오는 걸 막았다. 기성이 작업복 주머니에 들어있던 스쿠프의 차키를 꺼내 들었다.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끝장이잖아. 다른 거보다 세상이 날 알아줄 거라는 환상에 젖어 살았다는 게 미친 짓이지.”
 
용주는 담배꽁초 끝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래도 어디 아무 데라도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용주는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껐다. 그 아래 침도 뱉었다.
 
“알면서 헛소리 하냐. 요즘 대학 나와서 갈 데가 어딨냐. 알바 자리도 구하기 힘들어. 다른 거 다 포기해도 꿈은 포기 안 될 줄 알았는데……. 꿈이고 나발이고 진즉 포기하고 그냥 하루하루 산다.”
 
“그래서 미친놈처럼 도로를 달려?”
 
“그런 짓이라도 안 하면 돌아버리겠는데, 그렇게라도 안 하면 미쳐버리겠는데!”

 
용주는 기성을 노려보며 악을 쓰듯 말했다. 가게 앞을 지나던 남녀가 두 사람을 힐금거리며 지나갔다.
 
“그만하자. 안개등 값하고 계기판 수리 비용은 안 받을 테니까 지난번에 빌려 간 돈하고 타이어, 점화플러그, 백미러 값이나 내.”

용주는 기성의 손에 들린 차키를 잽싸게 낚아챘다. 기성의 손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우승 한 번은 해봐야 하잖아!”
 
용주는 날름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는 시동을 건 후 엑셀을 강하게 밟았다. 소리는 요란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머플러에서 그동안 참고 있었던 방귀를 뽑아내듯 검은 배기가스가 쏟아져 나왔다. 카센터 앞을 지나가는 여자들이 코와 입을 막았다.
 
“딱 한 번이면 돼.”

 
기성이 운전석 창틀을 손으로 짚고 서서 허리를 숙였다.
 
“너 그 짓 계속할 거야?”
 
“이제 맘 졸이며 사는 데 지쳤어. 나도 이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거야. 얼른 놔, 빨리 가야 돼. 잡지사에서 급하게 들어와 달라고 연락 왔어.”
 
“언제까지 그렇게 간당간당 살래?”
 
“그럼? 지난주에만 거의 예순 곳이나 이력서 넣었어. 그런데 연락해 주는 놈 한 놈 없더라.”
 
“눈높이 좀 낮춰봐. 다들 그냥저냥 살잖아.”
 
“눈높이 바닥이더라도 아무 데라도 가고 싶지. 이력서 넣었더니 면접에서 오래 버틸 수 있겠냐고 묻더라. 열심히 하겠다고 그랬지. 그런데 연락이 없어. 쎈 데는 스펙 딸려서 안되고 작은 데는 오래 못 있을 거 같다고 안되고.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나도 답답하다고.”

 
용주는 도로에 가득 메운 차들을 보았다. 차 안에 앉아 있는 운전자들이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들처럼 큰 눈을 더 크게 뜬 채 어서 한 방향으로 달리는 이 대열에 합류해 그냥저냥 흘러가라고 묵언의 시위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무언가에 끌려가듯 사는 걸 견디지 못했다. 누이가 사라진 뒤 반년 후에 아버지가 죽었다. 누구보다 누이를 애달파 했던 아버지. 서울에서 내려온 누이는 한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했다. 며칠 앓듯 잠자리 보전하고 누웠다가 일어난 후에야 어머니를 찾고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딸은 바보가 되어 돌아왔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견디지 못해 날마다 술을 마셨다.
 
“이제 우리 서른이다.”
 
용주는 운전석 창문을 닫으려고 윈도우버튼을 올렸다. 기성이 강제로 창문을 잡았다.
 
“서른이 뭐 대수냐?”

 
용주는 도로로 차를 진입시킨 후 중앙선을 넘어 거칠게 유턴을 했다. 하얗다 못해 시린 스쿠프의 지붕이 늘어지는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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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 추계예술대학교 문예 창작학과 졸업
· 상명대 대학원 소설 창작학과 재학 중
· 2012년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그 외의 작품
·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 ‘불의 기억’
· ‘13월’
· ‘9일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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