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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제8요일의 남자] #5. 엠, 월요일을 싫어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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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서른다섯, 한창 젊고 아름다운 한 여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한명도 아니고 두 명도 아니고, 일곱 명의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이야기다.
월요일은 엠, 화요일은 튜즈, 수요일은 더블, ..쥬디, ..에프, ..쌈디, 일요일은 썬, 여자는 남자들을 그렇게 부른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완전한 1이 될까 두려워 여자는 7분의 1로 마음을 나누어 놓았다.  그 정도 지분이라면 사랑에 온전히 자신을 바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변질되고 추해진다는 걸, 온전히 바친 사랑의 결과는 상처투성이라는 걸 어린 시절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자는 이 세상에 온전한 사랑 따윈 없다고 믿는다.
그런 여자 미주에게 어느 날, 어떤 일이 일어나는데…

벨타워 지하 주차장에서 올라온 승강기는 3층 로비에서 멈추었다. 아트리움 형식으로 중앙이 오픈된 건물이라 로비라운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엠의 모습은 금방 눈에 띄었다. 엠이 자리 잡은 곳은 전면이 유리로 된 2층 창가 자리였다. 짧은 틈만 있어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엠은 웬일인지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더운 날씨임에도 하얀색 드레스 셔츠에 짙은 푸른색 슈트를 차려입고 가벼운 미소까지 띤 엠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산뜻한 모습이었다.
무언가에 사로잡힌 것 같던 두 달 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게 일찍 올 줄 알았으면 주차장에서 기다릴 걸 그랬나?”
 
의외라는 듯 그는 몸을 일으키며 나를 향해 활짝 웃었다.
 
“오, 원피스 멋지네? 밥 먹고 어디 드라이브나 갈까?”
 
그러곤 하얀 커프스에 금박버튼이 달린 긴 팔을 내 밀었다.

“회의가 덜 끝나서... 식사만 하고 바로 들어가야 해요.”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그가 어떻든 내 마음은 두 달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손을 거둬들이는 엠의 얼굴엔 벌써 미소가 지워지고 있었다.
 
“무슨 의미야?”
 
“....”
 
“집으로 찾아갔던 날도 양보했는데 오늘도 점심만 먹고 헤어지자는 말이구나.”
 
“일이 좀 많아요. 바빠요.”
 
“내가 미주보다 더 바쁠 걸? 그래도 미주한테 쓸 시간은 항상 최고 우선순위야.”
 
“....”
 
“내가 미주한테 최우선이 아닌 이유가 있나? 그건 미주한테 책임이 있는 건데?”
 
“늘 똑같은 대사만 하시네요. 드라마라면 벌써 채널 돌아갔을 거예요.”
 
엠은 무슨 말인가 하려다 잠시 말을 삼켰다. 목을 감싸고 있던 반듯하게 다림질이 잘 된 하얀 셔츠 깃이 바르르 떨렸다.
 
“그 사이 새 애인이라도 생겼나? 하긴 미주 같은 여자를 가만 두지 않겠지.”
 
“....”
 
“답을 하지 않는 건 무슨 의미야? 내가 생각 좀 해보겠다는 사이에 새 애인이라도 생겼다는 거야?”
 
“그거 확인하려고 수소문해서 내 집을 찾아왔던 거구요.”
 
엠은 무표정한 내 얼굴을 한참 쳐다보더니 종업원에게 손짓을 했다.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종업원이 테이블 세팅을 하는 동안 그도,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문전박대 당하고 돌아오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어.”
 
패브릭 냅킨을 무릎에 단정히 펼쳐 놓으며 그가 말했다.
 
그날, 샤워 실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커다란 바구니를 현관 앞에 놓고 웃고 서 있었다. 한 달만 생각할 시간을 갖겠다며 문자를 남겨놓고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지 두 달 만이었다.
 
젖은 머리를 대충 말아 올린 수건에선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호기심이 잔뜩 담긴 미영의 시선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엠과 나에게 고정돼 있었다. 미영이 아니었다면 들고 온 과일바구니도 와인도 집 안에 들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갑자기 찾아가면 어떨 것 같아요?”
 
“언제? 어머니 댁에 찾아간 거? 아니면 얼마 전 이사한 미주 집에 찾아간 거.”
 
“어떤 거든.”
 
“난 가정이 있으니 곤란하지.”
 
“나는 괜찮구요?”
 
“연락을 하면 바로 답을 줬어야지. 그게 아니니 그런 일이 일어난 거잖아. 물론 결론은 내가 잘못한 게 됐지만 원인제공은 미주가 한 거야. ”
 
엠은 내게 문자나 전화를 했을 때 바로 응답이 없으면 금세 우리 관계가 붕괴된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어떻게든 내게 연락을 취했다.
 
엠은 모든 걸 거짓이란 가정에 놓고 거기서 출발하는 사람이었다. 거짓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어야만 진실이었다.
 
그 외에는 진실을 증명하는 방법은 없었다. 역의 논리를 가지고 진실임을 증명하는 건 그 반대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내가 엠을 처음 본 건 심리학회에서 운영하는 심포지엄에서 였다. 학회의 모바일 홈페이지 만드는 일에 합류하고 있던 터라 가벼운 호기심으로 참여했었다.
 
엠은 심포지엄에서 역의 방식으로 프로이드의 대상관계 이론을 분석한 리포트를 발표했다. 프로이드의 대상관계 이론을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 분석 방식은 신선했고 아주 매력적이었다.
 
거짓이란 가정 상태에서 출발해 결국 거짓이 아님을 끌어내서 참에 이르게 하는 엠의 논리는 많은 사람의 찬사를 받았다. 물론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그가 신학을 전공한 교수며 또 한 목회자라는 것에 놀랐고 그게 특이한 논리를 이해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개인적으로 친해지면서 그와의 교류는 마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거쳐야하는 가시밭길처럼 느껴졌다. 몸이 찢기고 피를 흘려야만 하는 가시밭길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선 인정받고 존경받는 교수며 목회자였지만 내겐 떼를 쓰거나 막무가내로 짜증을 부리는 아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와 가까워지면 질수록 핸드폰 벨 소리나 문자소리가 점점 강하게 내 목을 죄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사랑하는 하나님은 어떠세요? 기도를 하면 바로 응답이 오나요? 응답이 바로 오기 때문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으시는 거예요?”
 
엠은 무슨 말이냐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나님이 응답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거냐구? 어떻게 그런 어린애 같은 질문을 하지?”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나를 향한 조소의 눈빛이 잠시 그의 얼굴을 스쳐갔다.
 
“.... 그러니까요.”
 
“그게 무슨....?”
 
“....”
 
“아....! 내가 미주한테 그러고 있다는 거구나.”
 
엠은 한참 고갤 끄덕였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야 이해했다는 것에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 수저를 들었다. 그러곤 며칠 굶주렸던 사람처럼 말없이 음식 먹는 데만 열중했다.
 
나는 도저히 음식 맛을 알 수 없었다. 엠과 만나면 늘 그랬다. 처음 알아가던 얼마간 후론 늘 좋아하느냐 아니냐, 어떤 행동은 좋아하는 것이다 아니다, 관계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잣대로 상대를 재단하고 통제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같았다.
 
내가 그를 마음에 담았던 건 정말 그가 신학자였기 때문이었다. 남자와 여자라는 관계를 떠나 종교적인 차원에서 그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가 원했던 것 역시 위안이었다. 종교적인 계율로 똘똘 뭉쳐진 사람들의 틈 속에서 숨이 막힐 것 같다고 했다.
 
생각보다 점심 식사는 일찍 마쳤다. 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화가 난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내게 어떤 마음의 동요도 일게 하지 않았다. 더 이상 피 흘리며 가시밭길을 걸을 자신이 없었다.
 
“미안하다고 말 해주면 안 될까?”
 
“미안하지 않아요.”
 
“나를 무안하게 한 건?”
 
“뭔지 모르지만 사과 받고 싶다면 사과드릴게요. 전 이만 가봐야 해요.”
 
“여기서 이렇게 일어서면 우리 끝인 거지?”
 
“두 달 동안 많은 생각하셨을 거예요. 저도 많은 생각했어요.”
 
“미주가 아름답고 똑똑한 멋진 여자지만 내 주변엔 그 정도 되는 여자들 많아.”
 
“그렇겠죠. 언젠가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좋은 여자들이 많다고 했어요. 알고 있어요.”
 
“내가 미주랑 헤어지고 그런 여자들을 만나도 괜찮다는 거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들에게 내가 포기한 가시밭길을 대신 가라고 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었다.
 
“저 이제 가야해요.”
 
“그래. 이렇게 헤어지면 우린 끝인 거지?”
 
“....”
 
“그래. 나가지.”
 
엠은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 나보다 몇 걸음을 먼저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마지막인데 식사값은 내가 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정말 그가 화를 낼 것 같았다.
그가 식사 프론트에서 계산을 하는 동안 나는 먼저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엠이 내게 나쁜 기억만 남긴 건 아니었다. 심리학적으로 느끼는 행복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봤고 내가 나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일에도 관심을 쏟았었다.
 
“칼 융이 그랬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원형적 그림자는 우리 무의식의 내용이다. 그 그림자는 엄청난 파괴력의 에너지를 가지고 내면의 부정적인 부분을 투사하면서 죄책감이란 걸 만들어 낸다. 죄책감이란 결국 내 내면의식의 잘못된 반응이다, 라고. ”
 
언젠가 내가 죄책감에 대한 신학자적 생각을 물었을 때 그는 심리학적 대답만 내게 들려주었다. 이제 더 이상 신학자인 엠의 생각을 들을 기회는 없어졌다.
엠을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면 종교적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회사에 돌아오니 튜즈로부터 꽃바구니와 구두 한 켤레가 퀵으로 와 있었다. 다음 주 화요일은 외국 출장일정 때문에 만날 수 없다는 연락은 이미 받았었다. 선물 상자를 여니 튜즈의 아쉼이 가득 느껴졌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말이나 글이 아니라 그저 느낌으로 전달되고 느낌으로 알게 되는 것이었다.
 
저녁회의를 마치고 나니 이미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있었다. 실장과 팀장이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지만 그냥 빨리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매일 출근을 하는 시스템이 아니라선지 회사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는 날은 특별한 일이 없어도 지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실장과 팀장과 함께 저녁을 먹었으면 좋았을 날이었다. 오피스텔로 혼자 차를 타고 들어오지 말았어야할 날이었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승강기 앞에 서 있는데 누군가 비틀거리며 내 앞을 막았다. 엠이었다. 낮의 그 반듯하고 수려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옷매무새가 엉망이 된 한 남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나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되니? 한 번만 안아주면 다시는 너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 아니 니가 하라는 대로 할게. 나 잘할게. 나 용서해주면 안되니?”
 
엠은 승강기 벽으로 나를 밀치더니 두 팔로 내 목을 옥죄었다.
 
▶ 제8요일의 남자 더 보기
#1. 화요일의 남자, 튜즈
#2. 7분의 1을 넘나드는 남자, 에프

#3. ‘당신의 어둠 속에 나도’
#4. “그날, 당신에게 주고 싶었던 것”

 <목요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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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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