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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문학상] ③ 미당문학상 예심위원들의 릴레이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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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눈물, 어둠의 긍지
문학비평은 작품에 대한 평가를 기록하는 몫을 전담하고 있지만, 그 평가가 작품을 저울질하는 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심사과정이었다. 한 해 동안 시인들의 잉크로 쓰인 숱한 페이지 사이를 거닐며, 다른 그 어떤 명명도 아닌 ‘시인’이란 이름으로 동시대를 감당하는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새삼 했다. 시대의 축이 절망을 향해 기우뚱할 때, 제 몸을 지렛대 삼아 어떻게든 견디려는 이들의 세상을 향한 응시와 분투, 망가지고 거칠어진 숨결들로부터 조금도 떠나지 않으려는 고집. 그 자리에서 시가 쓰이고 있었다. 나는 그게 감사하면서도 미안했다.

한 해를 살면서, 시로부터 힘을 얻었던 독자들의 소회 역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문학작품에서 현실의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일만큼 우매한 짓도 없지만, 삶의 진실을 길어 올리는 방식으로서의 참과 거짓에 한하여 얘기하자면, 거짓을 꾸며 말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시의 곁으로 우리는 걸어갈 수밖에 없다. 심사과정에서도, 가지고 있는 게 언어가 전부라는 남루한 사실을 결코 화려한 의장으로 가리지 않고 오히려 그를 빛의 눈물로 또는, 어둠의 긍지로 빚어내고자 하는 몸짓에 절로 눈길이 갔다. 그 중 두 명의 시인을 메모한다.

김소연의 시를 읽을 때 독자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동그란 흙’) 어떤 일에 온전히 몰입하게 된다. 시인의 어조가 침착히 독자를 인도하는 덕분이겠지만, 그 침착이 전하는 바가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사실에 부합하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바로 그 일’, ‘바로 그 행위’에 집중하지 않으면 세계의 전부가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 균열에의 슬픈 예감이 김소연의 시에는 있다. 그리고 그것을 “고개를 돌려가며 영원히 지켜보게 되었다”(‘동그란 흙’)는 시의 하루.

한 치의 가호도 허락되지 않는 세계에 노출된 이들은 앞뒤 재지 않고 주어진 일, 지금 행위만을 경배하게 되는데(이를테면 “부추를 먹는 동안엔 부추를 경배할 뿐”(‘경배’)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시에서는 신비롭게도 바로 그 순간, 그 일의 동심원이 만들어진다. 동심원이 만드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돌아와 “조용히 오래오래”(‘손아귀’) 진행된다. 시인이 겪는 참담의 깊이가 비단 시인의 것만은 아님을 이즈음의 우리는 깨달아버린 게 아닐까. “징그럽고 억척스럽고 비대해진”(‘손아귀’) 삶이 조만간 두 동강이 날 화분 같은 세계에 갇혀 있는 날들을.

한편, 이제니의 시에서는 단 하나의 장면을 그냥 넘어서는 법 없이 세계 구석구석에 잡혀있는 주름을 하나하나 짚는 일이 벌어진다. 이 작업은 너무나 곡진해서, 모든 사물을 이루는 언어의 벽돌을 하나씩 집어 제단을 만드는 작업과 닮았다(마침 이제니의 최근 시를 지면 위에 놓인 겉모양만을 두고 볼 때면, 독자의 손에 한 장의 벽돌이 주어지는 것 같기도).

이제니의 두 번째 시집을 통해 언어적 움직임 자체가 ‘무한’을 향한 열림이 가능한지를 겨루는 일이 취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던 독자가 있다면, 이제 그 인상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독자는 ‘무한’이 닫힌 입구에서 “빛과 그림자가 혼합된 백일몽의 연속”(‘떨어진 열매는 죽어 다시 새로운 열매로 열리고’)을 겪으며 일일이 “주변을 맴도는 불확실한 움직임”(‘네 자신을 걸어둔 곳이 너의 집이다’)을 순간순간 찾아내는 일에 더욱 힘을 할애하는 시인을 본다. 시인이 “서 있는 자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그제야 우리는 “아직까지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네 자신을 걸어둔 곳이 너의 집이다’). 그제야, “무엇 하나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당연하지만 잊히기 쉬운 진실도(‘돌을 만지는 심정으로 당신을 만지고’) 밀려와 닿는 것이다.

삶에서의 경험이 고스란히 섞이면서 새로운 미학적 지형을 만들어가는 시인들에 박수를 보내며 총 열 명의 시편들을 본심에 올렸다. 분량 상의 이유로 더 적지 못한 마음을, 시인들과 독자들 모두 헤아려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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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언
1985년 제주 출생.
2011년 ‘현대문학’ 문학평론 부문에 ‘참된 치욕의 서사 혹은 거짓된 영광의 시 : 김민정론’이 당선되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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