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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문학상] ③ 황순원문학상 예심위원들의 릴레이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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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성석제 ‘믜리도 괴리도 업시’(‘창작과비평’ 2015년 겨울호)/ 김애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21세기문학’ 2015년 가을호)

소설 읽기는 곧 마음공부라는 말이 있다. 소설을 읽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과정이라는 뜻이리라.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은 어딘가 비어 있다. 같은 소설을 읽고 소감을 나누어 보면, 인물의 행위를 전혀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겉으로 드러난 것마저 그러한데, 어떻게 인물의 마음을 간단히 이해할까. 물론 소설 뿐만은 아니다. 나날의 삶에서도, 타인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무척 어렵다. 너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그 말이, 듣는 이에게는 무심(無心)한 폭력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안다고 믿은 너의 마음은, 내 마음의 편리한 반영에 불과할지 모른다. 과연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이해한 것일까?

언젠가 나에게 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이 아니라, 타인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뿐이라고. 그러나, 마음 읽기는 바로 그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그 말들이 내게는 가슴에 남아 이상한 위로가 되었다. 지금 너의 마음을 나는 단정할 수 없지만, 네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는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가능성이, 너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지인에게서 얻은 그 말들을 조금 단호히 옮겨볼 수도 있겠다. 타인의 문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문제가 공유될 때에만, 비로소 마음도 나눌 수 있다고. 그러지 않은 채 던져지는 이해라는 말만큼, 빈 말은 없다고.

올해 황순원 문학상 후보작인 '믜리도 괴리도 업시'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읽다보면, 문득 서사의 맥을 다르게 짚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알다시피, 성석제 소설의 제목은 고려가요 '청산별곡'에서 왔으며, 김애란 소설의 제목은 ‘시리’(Siri, 애플 음성인식 인터페이스)에서 왔다. 저 시간의 간극을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것이 문학의 일이려니와, 두 소설의 이야기는 공히 타인을 이해하는 데 바쳐진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성석제 소설은 5년 만에 다시 만난 게이 친구 이야기이며, 김애란 소설은 졸지에 남편을 잃은 젊은 아내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라는 이야기이겠구나 싶어 독법이 그려지던 순간엔, 아직 읽지 않은 페이지들까지 넘겨짚었던 듯도 하다. 하지만, 좋은 소설이 대개 그러하듯이, 두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는 이내 골똘해져버렸다.

'믜리도 괴리도 업시'는 성석제 소설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나’와 ‘너’의 긴 세월을 감칠맛 나는 너스레에 실어 편력하는 소설을 보라. 성석제의 애독자라면, 소설 속 ‘너’의 자리에 조동관('조동관 약전')이나 이치도('도망자 이치도'), 아니면 황만근('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을 넣어 보고 싶은 유혹과 싸워야 할 것이다. 성석제의 다른 인물들처럼, ‘너’ 역시 중독과 탕진의 유전자를 지녔는데, 이 소설에서 그것은 ‘나’를 향한 끊임없는 베풂의 형태로 드러난다. 소설의 한 대목에서 “네 핏속에 들어 있는 ‘무상(無償)의 베풂’ 유전자”가 상기될 정도로, ‘너’는 ‘나’에게 한결같이 다정하고, 그런 만큼 아낌이 없다.

성석제 소설의 인간학이 남성 동성애자에게까지 이르렀구나 싶어 흥미로웠던 순간, 글쎄 어딘지 이상했다. 쉽게 말해, 소설의 제목에는 ‘너’의 이름(이현수)이 없다. 제목이 지시하는,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는’ 그이는 대관절 누구일까? 이 의문과 마주하면, 소설의 내러티브가 두 인물 중 누구의 ‘문제’를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소설에서 문제의 편에 있는 이는 ‘너’가 아니다. “내 대답은 이래. 나도 눈이 있고 수준이 있거든?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내 취향이 아니야.” ‘나’의 의혹과 불안은, 그것의 절반은 독자의 것이기도 할 텐데, ‘너’의 통쾌한 직설로 인해 결국 걷힌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후에, ‘너’와, ‘너’의 애인 아르놀트와, ‘나’가 이루는 기묘한 트라이앵글의 장력이 더 팽팽해졌다는 사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와 다른 여성들의 교류가 단발성 쾌락에 가깝게 묘사되고 있다는 점, 그에 비하자면 훨씬 더 감성적이고 지속적인 교류는 ‘너’와의 사이에 있었다는 점, 그러면서도 ‘너’와의 역사 갈피마다 그녀들이 강박적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점은 징후적이다. 다시 말해, '믜리도 괴리도 없이'는 소설에서 타자의 기표로 명명된 ‘너’를 이해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상성의 규범에 갇힌 ‘나’를 탐구하는 이야기로 읽을 때 결이 더 풍성해진다. 선입견을 걷고, 소설에 흩뿌려진 이야기 조각을 다시 조립해 나가면, 놀랍게도 그때껏 ‘너’에게 몰입하고 있었던 ‘나’를 재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게는, “사랑이야? 사람이야?”라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어떤 사람인가를 따지느라 사랑의 다른 형태는 자성하지 못한 이의 혼돈으로 다가오던 순간이 있었다.

민감하다면 민감하다고 할 수 있는 테마임에도, 흥겨운 마음으로 기꺼이 이 소설의 탐구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소설의 유머에 빚지고 있다. 아량과 깊이가 느껴지는 보기 드문 유머는 그런데, 성석제뿐 아니라 후배 김애란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즈음 김애란 소설에서는 웃음기가 가셨다. 우울이 깊다, 너무 깊다. 예심 테이블에 나란히 놓였던 김애란의 다른 작품 '건너편'만 해도 그렇다. 별 것 아닌 장면 같지만, 이별을 결심한 인물이 잠든 연인의 얼굴을 바라볼 때, 김애란은 독자가 그 여자의 마음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되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어디로 가고 싶으신 가요?'에서도 여지없이 그런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소설 말미, 남편과 함께 세상을 떠난 학생의 누나가 ‘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권도경 선생님이 우리 지용이의 손을 잡아주신 마음”을 생각하면 그저 눈물이 날 뿐 “그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할 때, 재차 이런 감상을 적는 것이 허락된다면, 울컥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이후 소설의 마지막 한 단락을 읽으며, 그때껏 나는 소설 속 인물의 마음을 정말 이해하고 있었던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었어야 했다. 내 대답은 아니다였고, 그것이 이 소설이 내게 준 의외의 순간 중 하나라고 말할 차례다.

처음에 소설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한 여성의 마음에 다가가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계곡에 빠진 지용을 구하려던 남편이 죽은 후, ‘나’는 사촌의 배려로 이국의 도시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안식이 찾아들 리 만무해서, ‘나’의 몸은 퍼져나가는 반점으로 뒤덮인다. 피부를 앓아본 사람은 안다. 그것만큼 원인을 알기 힘든 것도 없어서, 결국 고장난 마음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을. 허물이 마치 새살마냥 돋는 것에서, ‘나’가 죽음 위에 피어나는 죽음을 떠올리는 것도 놀랍지는 않다.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고, 그녀는 그 죽음을 통과하고 있으니까.

그런 ‘나’의 고통은 “당시 내 주위 인간들에게선 찾을 수 없었던” ‘예의’를 차라리 ‘시리’의 응답에서 찾는 대목에서도 짐작된다. 사람의 살갗에서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소설은 이렇게 섬세한 필치로 한 마음의 무늬를 그려 나가지만, 정작 나를 흔들리게 한 것은 마지막 순간이었다. ‘나’가 끝내 헤아릴 수 없었던 것은 남편의 마음이었고, 그것이 그녀가 풀어야 할 문제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어떻게 타인을 향해 몸을 던질 수 있느냐는 잔혹한 의문, 누구와도 나눌 수 없지만 자신만은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 의문. ‘나’는 편지를 읽고서야, 그 역시 혼자가 된 지용의 누나를 떠올리며, 지용에게 손을 내밀었던 남편의 마음에 가닿으려 한다. 4월의 그날 이후, 한국소설이 탐구하는 마음은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것이 사람의 응답이라고, 허물 위에 떨어지는 그녀의 눈물이, 죽음이 아니라 삶 편의 응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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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미령
문학평론가.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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