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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전 베를린 올림픽…손기정과 함께 고개 떨구던 남승룡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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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열린 베를린 하계올림픽 마라톤 시상식에서 남승룡(왼쪽)과 손기정(가운데)의 모습. 남승룡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독립기념관]

2016 리우 올림픽이 22일(한국시간) 폐막한다. 올림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마라톤 대회는 한국시간으로 21일 열릴 예정이다. 리우 올림픽이 열리는 올해는 고(故)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지 꼭 80년이 되는 해다.

손기정은 1936년 8월 9일 열린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 29분 19초로 우승했다. 손기정은 메달 수여식에서 히틀러에게서 받은 화분으로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가렸다. 그해 한국 대표단은 마라톤 대회를 휩쓸었다. 화분으로 일장기를 가린 손기정의 옆에 선 남승룡은 손기정과 같은 마라톤 종목에 출전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3등 자리에서 서서 고개를 깊이 떨구던 남승룡은 일장기를 가릴 수 있는 손기정이 부러웠다고 회고했다.

남승룡의 동메달은 손기정의 금메달에 묻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올림픽 선발전에서 남승룡은 손기정보다 앞섰다. 남승룡은 1936년 5월 21일 열린 올림픽 마라톤 파견 최종 선발전에서 2시간 36분 05초로 1위를 차지했다.

남승룡은 1912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일본 아사부(麻布) 상업학교를 거쳐 메이지(明治) 대학 졸업했다. 순천공립보통학교 6학년 때 조선신궁대회 마라톤에 출전해 2위를 차지해 장거리 육상 선수로서의 자질을 드러냈다. 그가 주목받은 건 1934년 열린 일본건국기념 국제마라톤 대회에서다. 남승룡은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남승룡은 올림픽에 이어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일제로부터 독립한 이후인 1947년 미국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전해 10위를 기록했다. 서른 여섯이란 젊지 않은 나이에 다시 출발점에 다시 선 건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를 달고 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코치를 맡은 서윤복 선수는 1위로 골인했다. 남승룡에게 등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남승룡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코치를 끝으로 육상계를 떠났고 2001년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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