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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줄이는 제도 vs 일할 의욕 꺾는 징벌



전기료 누진제가 결국 단두대에 올랐다. ‘누진제 완화=부자감세’라며 버티던 정부는 들끓는 비난 여론에 전기료 요금 체계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정부만큼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게 또 있다. 누진세(제)다. 누진세는 거의 모든 나라가 100년 넘게 유지해 온 조세 시스템이다. 더 많이 벌거나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게 누진세다. 누진세는 나쁜가? 공방은 여전하다. 중앙SUNDAY는 『정치경제학원리』에서 누진세를 반대한 사회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과, 칼 마르크스와 함께 쓴 『공산당선언』에서 소득에 고율의 누진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했던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가상 논쟁을 통해 ‘누진세의 역사와 의미’를 짚어봤다.



[가상 논쟁]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존 스튜어트 밀 ‘누진세는 나쁜가?’

 



존 스튜어트 밀(이하 밀)=한국은 전기료 때문에 난리가 났다지?



프리드리히 엥겔스(이하 엥겔스)=한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전기료를 전기세로 불렀어. 일종의 세금으로 인식한 것이지. 특히 올해는 이례적인 폭염으로 가정용 전기 사용량이 많았는데, 누진제 때문에 요금 폭탄을 맞게 됐다며 불만이 터진 거지. 2007년부터 시행해 온 요금 체계인데 말이야.



밀=아무리 그래도 누진율에 따라 전기료가 최대 11.7배 차이가 나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닌가?



엥겔스=누진제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전기료 체계가 문제지, 누진제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잖아? 전기료 때문에 누진제가 뭇매를 맞고 있는데, 내가 『공산당선언』에서 10대 강령 중 하나로 주장했던 누진세는 현대 거의 모든 국가에서 시행하는 조세체계로 자리를 잡았단 말일세.



밀=그건 인정하네. 그런데 자네는 각 나라가 누진세를 도입한 이유가 정말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것으로 믿나? 자네는 『공산당선언』에서 고율의 누진적인 소득세가 혁명의 초기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로부터 자본을 탈취하고 생산수단을 국유화하는 수단이라고 하지 않았나.



 미 황금시대엔 누진율 높았지만 고도 성장엥겔스=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서구 국가들이 누진적인 소득세를 도입한 목적이 재정 충당이었다는 것은 인정하네. 그러나 결과적으로 누진세는 소득이 최상위층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불평등이 완화되는 역할을 했네.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 더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누진세는 정의로운 조세 체계지.



밀=문제는 누진세가 정치적으로 악용됐다는 것일세. 1900년대 초 누진적 소득세를 도입한 미국이나 영국·독일의 누진세율은 2~7%였지. 그런데 미국은 1918년 최고세율을 77%로 올렸고 2차 대전 후에는 94%까지 오르기도 했지. 프랑스 역시 1차 세계대전 후 72%까지 높였고 독일과 영국도 2차 세계대전 후 90%까지 누진세율을 올렸어. 정부가 재정 마련을 위해 약탈적으로 세금을 걷어들인 것 아닌가?



엥겔스=고율의 누진세가 왜 문제지? 자네도 『정치경제학원리』에서 상속세에 대해선 고율의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나?



밀=상속은 기회균등의 권리를 침해하고 상속받는 자녀에게는 불로소득이기 때문에 고율의 세금으로 제한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네. 그러나 소득세는 다르지. 고소득자에게 더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것은 근로 의욕을 꺾고 결국 그 피해는 저소득층이 입게 되거든. 부자들을 세금으로 처벌한다고 분배가 이뤄지는 것은 아닐세.



엥겔스=과도하게 높은 누진세가 시장 참여자의 이윤과 소득을 세금으로 가져가 새로운 자본 축적을 막고 일할 의욕도 떨어뜨려 결국 경제성장을 제약한다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준 것이 자네였군. 그러나 역사적으로 누진세율이 높을 때 경제가 더 성장하고 불평등이 완화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밀=예를 들어 보게.



엥겔스=미국의 황금시대(Golden Age)로 불리는 1947~79년은 역사적으로 누진세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야. 그런데 이 기간에 미국 하위 20%에 속하는 이들의 소득은 116% 증가했고, 중간층 20%는 111%, 상위 5%는 85% 늘었지. 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이자 불평등이 완화된 시대였네.



밀=자네, 래퍼곡선(Leffer-Curve)을 알지? 만약 세율이 0%이면 세수는 0원이겠지. 그리고 세율이 증가하면 세수도 같이 증가하겠지만, 세율이 100%에 달하면 사람들은 아무도 일을 하지 않을걸세. 번 돈을 다 세금으로 내니까. 그러면 세수도 다시 0원이 된다는 것이 래퍼곡선이지 않나?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래퍼 교수의 이론을 신뢰하고 이를 토대로 과감한 감세 정책을 폈네. 최고세율을 35%로 내렸지. 감세를 통해 미국경제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잠재적 공급 능력을 증대시킨다는 게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였네. 그리고 레이건 집권 시기는 바로 미국의 최대 전성기였다네.



엥겔스=그러나 그 이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소득·자산 불평등이 심한 나라로 전락했지. 미국 의회예산처가 1979~2013년 계층별 소득과 세금을 조사했는데 내용이 충격적이라네. 이 기간 상위 1%의 소득은 188% 증가했는데 중산층과 하류층 소득은 18% 증가하는 데 그쳤지. 최근 에마뉘엘 사에즈라는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1% 가구의 실질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22%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어. 또한 하위 99%의 소득이 3.9% 오를 때 상위 1%는 두 배인 7.7% 증가했다고 하네. 불평등이 더 확대됐다는 얘기지.



 



『21세기 자본』 논란 핵심은 누진세밀=나도 그 리포트를 봤네. 그런데 전체 소득에서 상위 20%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 조금 넘었지만 이들이 낸 세금은 전체의 3분의 2에 달했어. 고소득층일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이지. 부자들은 지금도 충분히 세금을 내고 있네.



엥겔스=그런데 말일세. 부자들이 실제로 내는 실효세율은 명목세율을 늘 밑돌지. 워런 버핏이 자신의 소득세율은 15% 정도였는데,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여직원은 35%의 소득세를 냈다고 폭로한 것도 같은 맥락 아닌가. 비과세·감면 같은 제도로 세금을 덜 낸 것이지.



밀=이쯤 되면 자네 친구 마르크스가 쓴 책 제목을 본뜬 『21세기 자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군. 토마 피케티가 그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결국 소득 상위 0.5~1%에 80~90%의 몰수적 누진세를 물리자는 것 아닌가. 그게 가능하다고 보나?



엥겔스=물론 이상적인 측면이 있네. 그러나 피케티 주장의 요체는 강한 누진세가 불평등을 줄인다는 것이지. 그는 책에서 ‘과세 제도에 있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혁신은 누진적인 소득세의 도입과 발전이다. 이 제도는 지난 세기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오늘날에는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했어. 이는 한국에도 적용되는 말일세. 한국 사회가 왜 그렇게 피케티에 열광했겠나?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고, 최상위 1% 소득 집중도는 외환위기 이전 6%에서 12%까지 치솟았네.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가져가는 나라가 한국일세.



밀=그런데 말이야. 한국의 고소득층은 이미 과도한 세금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자료를 보니 2014년 기준 소득 상위 1.5%인 24만 명이 전체 소득세의 40.9%를 냈어. 또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의 80% 가까이 내고 있단 말이야. 반면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월급 생활자는 48%나 되지. 이런 상황에서 누진율을 더 높이면 사회 갈등만 심화할 거야. OECD 회원국의 절반 이상이 45% 이상의 최고세율을 부과하고 있지. 그런데 한국도 최고세율 38%에 지방소득세 3.8%를 추가하면 최대 41.8%야.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결코 낮지 않지. 더욱이 상속·증여세 세율은 10~50%로 세계 최고 수준이고 법인세 최고세율(22%)도 높은 편 아닌가?



엥겔스=아니. 적어도 한국은 소득세 최고세율을 더 높일 여력이 있네.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고소득층은 저소득층보다 7배 정도 더 소득세를 낸다네. 그러나 OECD 회원국은 평균 30배 차이가 나지. 또 소비세 대비 소득세 비율은 OECD 평균이 81%인데, 한국은 44%야. 소득세 누진율은 5단계(6~38%)로 매우 누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38%의 세율을 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가 많아 실효세율이 낮기 때문이지.



 



IMF·OECD는 누진제 강화 지지밀=그래서 한국에선 소득세 누진율을 더 올리려는 움직임이 있기는 한가?



엥겔스=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소득 5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40%대 중반의 세율을 적용하는 것을 당론으로 내세웠어. 법인세 최고 세율도 22%에서 25%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네.



밀=문득 로빈 후드가 생각나는군. 로빈 후드는 귀족과 부자의 재산을 훔쳐 서민들에게 나눠줬지. 그런데 재산을 빼앗긴 귀족과 상인은 서민들에게 세금을 더 받고 많은 상인이 로빈 후드를 피해 마을을 떠났어.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어. 불평등 해소를 위해 세금을 올렸지만 오히려 사회 전체적으로 부가 축소되는 부작용도 생각했으면 하네. 이를 로빈 후드 효과(Robbin Hood Effect)라고 한다지.



엥겔스=IMF가 2014년 발표한 ‘재분배, 불평등, 그리고 성장’ 보고서를 봤나? 재분배가 불평등을 완화하고 성장률을 올린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야. 이 보고서를 쓴 조너선 오스트리는 재분배 정책이 성장 잠재력을 훼손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네.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도 누진세 강화를 강조하면서 불평등 해소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핵심 요소라고 했네. 한국에서는 전기료 때문에 욕을 먹고 있지만 누진세에 담긴 정신마저 훼손돼서는 곤란하네.



밀=결국 선택은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몫이겠지. 자네와 나는 지하에서 지켜보세나.



엥겔스=굿 럭!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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