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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열대에 피어난 배려와 존중

태권도 여자 67㎏급 오혜리가 20일(한국시간) 하비 니아레(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 발차기 공격에 성공한 뒤 환호하고 있다.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선배 황경선에게 밀려 ‘2인자’ ‘국내용’이란 평가를 받았던 오혜리는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대표팀의 여덟 번째 금메달이다.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어떤 의미로는 리우 올림픽이 21세기적 올림픽의 출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올림픽은 힘을 보여주는 잔치가 돼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일산화탄소로 뒤덮인 거짓 열기, 죽음의 열기를 보여줄 뿐이다. 삼바의 축제가 지향하는 ‘열기’, 즉 열대는 생명을 탄생시키고 기쁨을 나누는 조화로운 상태를 말한다.” 지난 7일자 중앙SUNDAY에 기고한 글에서 성기완 계원예술대학 교수는 리우 올림픽에 거는 기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막 내리는 리우 올림픽이 남긴 것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남미 대륙에서 열린 2016 리우 올림픽이 22일(현지시간 21일) 폐막한다. 17일간 대회를 밝혀준 성화도 곧 꺼진다. 개막식에서 마라카낭 주경기장 성화대에 점화한 사람은 반데를레이 지 리마(47)였다.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37㎞ 지점까지 선두로 달리다 종말론자에게 떠밀려 넘어졌다. 3위로 처졌지만 그는 활짝 웃으며 골인했다. 리마는 “메달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조국 브라질에 동메달을 바친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아테네 올림픽 폐막식장에서 리마를 만난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내게 “사고가 없었다 해도 내가 우승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번 일로 누구도 비난받아선 안 된다”고 했다. 태극무늬 부채를 선물로 주자 “나한테 주는 것 맞나. 내가 받아도 되나”라고 몇 번이나 물어보던 그의 선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리마가 보여줬던 ‘올림픽 정신’은 리우에서 구현됐을까. 성기완 교수가 썼던 것처럼 지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돈의 열대’가 만들어낸 ‘위기의 올림픽’을 향해 리우는 경종을 울렸을까. 지구촌민들에게 ‘리듬 속에서 하나 되어 조화롭게 사는 세상’을 제시했을까. 그것을 위한 조그마한 씨앗이라도 심었을까. 꺼지는 성화를 바라보며 되짚어보자.



풍선처럼 부풀어 터지기 일보 직전인 올림픽의 상업화와 비대화. 이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 있다. 내셔널리즘(국가주의)과 미디어 스포츠다. 이 두 개의 기둥이 흔들리면서 ‘상업주의 올림픽’에도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올림픽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둠으로써 특정 국가·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내셔널리즘은 뿌리가 매우 깊다. 내셔널리즘은 필연적으로 승리지상주의, 물량주의로 흐른다. 그 정점에 ‘도핑’이 있다.



리우 올림픽은 ‘반(反)도핑’이라는 맑은 흐름이 내셔널리즘이라는 탁류를 씻어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국가가 조직적으로 도핑에 관여해 온 러시아는 리우에서 ‘국제 왕따’가 됐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올림픽 개막 전에 “러시아 선수단 전체를 출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각 국제경기단체에 공을 슬그머니 넘겼다. 육상, 역도, 조정 등 3개 종목만 러시아의 출전을 막았고 나머지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출전을 허용했다.



리우에 온 러시아 선수들은 곳곳에서 야유를 받았고 혹시 약물을 쓰지 않았나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견뎌야 했다. 육상 단거리 스타 저스틴 게이틀린(미국)도 ‘도핑 전력’ 때문에 환호만큼 거센 야유에 시달렸다.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우승자인 맥 호턴(호주)은 전 대회 우승자인 쑨양(중국)에 대한 질문을 받자 “금지약물로 속임수를 쓰는 선수에 대해 할 말 없다”고 말했다. 호턴의 도발적 발언은 양국 간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우여곡절 끝에 리우에 온 ‘마린보이’ 박태환도 민망해졌다. 금지약물 복용으로 WADA의 징계를 받은 박태환은 “리우에서 명예회복을 하겠다”며 소송전 끝에 가까스로 출전을 허락받았다. 그러나 그는 출전한 세 종목에서 모두 예선탈락했다. “4년 뒤 도쿄 올림픽에도 나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리우에서는 선수가 도핑 감시자가 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예컨대 내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각국 선수들이 “러시아가 참가하면 우리는 불참하겠다”고 보이콧을 선언한다고 치자. 그럼 러시아에서도 “A나라, B나라 선수도 도핑을 한 정황이 있다”며 치고 나올 수 있다. ‘딱 보면 아는’ 선수들끼리 상호 견제를 통해 도핑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종목 패권주의’의 강고한 아성도 흔들리고 있다. IOC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종목과 메달 수를 멋대로 바꿔 왔다. 대표적인 게 수영이다. 마이클 펠프스(31·미국)는 이번 대회 5개를 포함해 무려 23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수집했다. 그는 “나중에 아들이 학교 발표 시간에 필요하다고 하면 한 개 빌려줄 생각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우사인 볼트(30·자메이카)가 3개 대회 연속 단거리 3관왕(100m, 200m, 400m계주)의 위업을 달성하고서 딴 금메달이 9개다.



올림픽 수영은 거리별·방식별로 종목을 세분화하며 팽창했다. 다이빙·수구 등을 빼고 경영(競泳)에만 32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비판론자들은 ‘미디어 스포츠’가 종목 패권주의를 조장했다고 주장한다. 미디어 스포츠는 매스미디어에 의해 중개된(mediated) 스포츠를 말한다. 방송·중계·위성 기술이 발전하면서 올림픽을 포함한 모든 스포츠는 미디어에 의해 완벽히 통제되고 있다.



미디어는 스포츠의 룰과 복장과 경기시간을 바꾼다. 대신에 올림픽과 월드컵 등에 거액을 낸다. 미국의 NBC가 리우 올림픽 독점 중계권료로 IOC에 낸 돈이 1조4000억원이라고 한다.



미국과 유럽의 미디어는 육상·수영·체조를 선호했다. 전통 깊은 이 종목들에는 미학적인 공통점이 있다. 경기 내내 관전자의 눈이 경기자의 신체를 좇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수의 신체적 탁월성에 감탄하고 미묘한 표정과 동작의 변화를 즐긴다. 반면 구기 종목을 보는 관전자는 결정적인 순간 신체에서 공으로 시선이 옮겨가게 돼 있다.



NBC는 리우 올림픽 시청률이 2012 런던 대회의 절반으로 뚝 떨어져 울상이다. 국내 지상파 3사도 저조한 시청률과 광고 수주 부진으로 고민이 크다. 올림픽을 즐기는 방식이 디지털과 SNS 등으로 옮겨가고 있는데도 ‘미디어 공룡’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엉켜 넘어지고도 함께 완주한 육상 여자 5000m 선수들(왼쪽)과 태권도 남자 68㎏급 8강전에서 요르단 선수에게 패한 뒤 상대의 손을 들어주는 이대훈. [리우 로이터=뉴스1],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이번 대회에는 유난히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딴 나라가 많이 나왔다. 펠프스를 누르고 접영 100m에서 우승한 싱가포르의 조셉 스쿨링을 비롯해 베트남(사격), 피지(럭비), 코소보(유도), 푸에르토리코(테니스) 등이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이는 전 세계에 스포츠 보급이 활발하게 이뤄졌고, 작은 나라들도 스포츠가 갖는 힘을 자각하고 투자한 결과다. 이들은 지구촌 스포츠 제전의 구경꾼에서 당당한 주역으로 올라서는 기쁨을 누렸다. 비유하자면 장터에서 공연장 주위를 기웃거리며 뻥튀기나 사먹던 사람이 어느 순간 무대에 올라가 노래도 부르고 장기자랑도 하게 됐다는 얘기다.



또 이번 대회에서는 히잡을 쓴 여성 선수, 뚱뚱한 체조 선수, 동성애자임을 밝힌 커플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편견과 차별을 딛고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어느 정도 용인은 됐지만 공인받지 못했던 주체나 행위, 또는 관계들이 올림픽이라는 광장을 통해 열린 공간으로 뛰쳐나왔다. 이는 올림픽이 ‘엘리트 스포츠의 경연장’을 넘어 ‘지구마을의 공론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리우에서는 승리지상주의를 타파하는 장면도 많았다. 가장 감동적인 건 육상 여자 5000m에서 쓰러진 선수를 기다렸다가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한 미국과 뉴질랜드 선수였다. 태권도 종주국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 이대훈이 8강에서 탈락한 뒤 자신을 꺾은 선수의 손을 들어올려준 장면도 훈훈했다.



이 같은 액션은 올림픽이 아니면 어디서도 보기 어렵다. 인간의 가장 정직한 면모인 신체의 탁월성을 겨루는 자리에서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가치인 배려와 존중이 발휘되는 것이다. 언어, 정치체제, 빈부의 차이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몸이고 땀이다.



그렇다면 리우 올림픽이 초기 올림픽 정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는가. ‘참가에 의의를 두는’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해 ‘스포츠를 통한 세계평화’에 기여할 인류의 제전을 되찾게 되었나. 그렇지 않다. ‘도핑 제국’ 러시아는 아직도 반성할 줄 모른다.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편파 판정은 스포츠 약소국의 억장을 무너뜨린다. 중국계 탁구 선수, 아프리카계 육상 선수들이 돈 많은 나라의 국기를 달고 메달을 향해 뛰고 있다. 올림픽은 순수성을 되찾고 있다기보다는 외연을 확장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코드로 분화하고 연성화(軟性化)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어차피 올림픽에는 세속과 이상이 공존한다. 올림픽은 1회 대회부터 지금까지 국제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악용된 사례도 수없이 많다. IOC는 지구에서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는 스포츠·엔터테인먼트 그룹이다. 호주는 금메달 1개당 평균 60억원을 투자한다. 각 국가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선수를 키워낸다.



올림픽이 순수하지 않았기에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다. 별로 깨끗하지는 않지만 크고 튼튼한 올림픽이라는 그릇이 있다. 그 안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 2년 뒤 평창에서 겨울올림픽 손님을 맞게 될 우리에게 떨어진 숙제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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