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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년 時空 뛰어넘어 중국인들과 소통하다

지난 1일 중국 저장(浙江)성 싼먼(三門). 최부(崔溥·1454~1504)라는 조선 성종 때의 관리를 기념하는 광장과 그의 상(像), 기념관을 짓는 손길이 분주했다. 민간에서는 그의 행적을 영화로 제작하고 있다. 한국이 아닌 중국 땅에서 500여 년 전 조선의 인물을 기리기 위한 사업이 진행 중이라니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중국에서 ‘동양의 마르코 폴로’라 불리는 최부는 ‘조선의 하멜’ 격이다. 그는 528년 전인 1488년 다른 42명의 일행과 함께 제주에서 배를 타고 나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났다. 일행은 14일 동안 표류하다가 싼먼에 도착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들은 표착 지점인 중국 대륙의 남부에서 출발해 대운하(大運河) 노선을 따라 저장과 장쑤(江蘇), 산둥(山東), 톈진(天津)과 베이징(北京), 이어 산하이관(山海關)과 만주를 4개월 반 동안 이동한 뒤 조선으로 귀환했다. 그가 그곳에서 경험하고 목격한 명나라 시대의 사회상을 상세히 기록한 『표해록(漂海錄)』은 지금도 중국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로 쓰이고 있다.



중국서 영화화되는 ‘동방의 마르코 폴로’ 조선인 최부

중국인들이 최부를 기리는 것은 한국과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싶어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다른 요소도 있다. 최부에 대한 존경심이다. 싼먼에서 만난 정부 관리들은 최부를 “위대한 인품의 소유자”라고 칭송하는 데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최부가 당시 뭍에 올라와 생사의 고비를 겪으면서도 잃지 않았던 지조(志操)와 절개(節槪) 때문이다.



또 그가 보여준 원칙과 명분에 입각한 진정성, 나라에 대한 충성심, 부모를 향한 효성을 느꼈던 까닭이다. 최부는 그런 덕목으로 528년 전의 시공에서 중국인들과 크게 소통했던 인물이다. 이를 테면 삶의 방향을 옳게 이끄는 인문적인 ‘가치(價値)’를 두고 중국인과 정신적으로 통했다는 얘기다.



명(明)대에 나눈 한·중 대화가 지닌 의미는 지금도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동북아 평화와 번영에 함께 나서야 할 한국과 중국의 미래를 생각할 때 더 그렇다. 올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최부가 표착한 싼먼에서 가까운 항저우(杭州)에서 다음달 열린다. 초록(抄錄)과 현지 기행(紀行) 형식을 통해 최부의 당시 자취를 좇아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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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먼=유광종 뉴스웍스 콘텐츠연구소장ykj33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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