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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 모르겠다” 무념무상 뒤차기 오혜리, 10년 2인자 설움 날렸다

오혜리는 ‘만년 2인자’의 설움을 딛고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20일 열린 태권도 여자 67㎏급 결승에서 니아레에게 뒤차기를 날리는 오혜리.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



지난 18일(한국시간) 리우 올림픽 태권도 여자 49㎏급 결승전이 열린 브라질 리우의 카리오카3 경기장. 김소희(22·한국가스공사)가 시상대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관중석에서 그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태권도 대표팀의 맏언니 오혜리(28·춘천시청)였다.



첫 올림픽서 금메달 딴 태권도 맏언니

오혜리는 후배 이대훈(24·한국가스공사)과 나란히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김소희가 티야나 보그다노비치(18·세르비아)의 공격을 막느라 실점 위기에 몰리자 오혜리는 “안 돼, 안 돼!”라고 소리쳤다. 김소희가 1점 차로 승리하자 함께 기뻐했던 오혜리는 이내 침묵에 빠졌다. 이제는 오혜리의 차례였다. 그는 텅 빈 팔각 매트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금메달을 목에 건 채 손으로 하트를 만든 오혜리.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이틀 뒤 오혜리도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20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여자 67㎏급 결승에서 그는 세계랭킹 1위 하비 니아레(23·프랑스)를 난타전 끝에 13-12로 눌렀다. 결승전은 극적이었다. 1라운드 종료 38초를 남기고 오혜리는 니아레의 왼발에 머리를 맞아 3점을 내줬다. 오혜리는 2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반격에 나섰다. 적극적으로 덤비다 몸통 공격을 허용해 1점을 내줬지만 뒤차기로 3점을 따라붙은 뒤 연달아 머리 공격을 적중해 7점을 보탰다. 10-4 역전.



3라운드에서는 니아레가 거세게 반격했다. 11-10까지 쫓겼지만 오혜리는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차분하게 몸통 돌려차기로 1점을 더했고, 니아레가 네 번째 경고를 받아 13-10으로 스코어를 벌렸다. 경기 막판 시간 지연에 따른 경고를 받아 1점 차로 추격을 당했지만 승패는 바뀌지 않았다. 오혜리는 한국 선수단에 리우 올림픽 8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오혜리는 “상대 상체가 누워 있는 자세여서 내 앞발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뒤차기를 했는데 그게 적중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만 28세 4개월의 오혜리는 한국 태권도 선수로는 역대 최고령 메달리스트가 됐다. 이전 기록은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남자 80㎏급 금메달을 따낸 문대성(당시 27세11개월)이 갖고 있었다.



오혜리는 기적 같은 순간을 믿지 못했다. 결승전에서 승리하고도 그는 “지금 (경기장으로) 들어가서 한 게임 더 뛰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취재진에게 되물었다. 오혜리는 “최선을 다해 올림픽을 준비했다. 과정부터 결과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실 늘 열심히 했지만 2등을 하고 좌절도 많았다. 그래도 항상 최선을 다했다. 오늘도 그랬다”고 덧붙였다. 말을 잘하다가도 그는 생각에 잠기길 반복했다. 오랜 기다림, 힘든 과정들이 생각나서였을까.



세계선수권 은메달이 최고 기록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전까지 오혜리는 ‘조연’이었다. 전국체전 73㎏급 3연패를 달성한 최강자였던 그는 국제대회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오픈 대회나 그랑프리 대회 성적은 괜찮았다. 그런데 규모가 큰 대회에서는 이상할 만큼 약했다. 2011년 경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것이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이었다. 올림픽은 물론 아시안게임에도 나가지 못했다.



오혜리 앞에는 ‘태권도 여제’ 황경선(30·고양시청)이라는 거대한 벽이 있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황경선은 10년 넘게 여자 태권도 최고의 스타로 활약했다. 두 살 많은 황경선에게 오혜리는 번번이 밀렸다.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황경선에게 패한 오혜리는 속상한 마음을 꾹 누르고 선배의 훈련 파트너(훈련 상대)로 나서기도 했다.



오혜리는 런던 올림픽을 별렀으나 최종 선발전을 앞두고 허벅지 근육 파열로 쓰러졌다. 이어 2013년 멕시코 푸에블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을 앞두고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세상의 불운이 모두 그에게 몰리는 것 같았다.



오혜리는 또다시 툭툭 털고 일어났다. 작은 것부터 착실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에게는 ‘2인자’ 또는 ‘국내용’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래도 묵묵히 인내하며 기다렸다. 극적인 반전은 없었지만 그의 기량은 계속 발전했다. 오혜리는 지난해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후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랭킹 포인트를 쌓은 그는 세 번째 도전 만에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오혜리를 리우 금메달 후보로 꼽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한 번도 지지 않고 우승까지 내달렸다.



오혜리가 그토록 단단해진 건 지옥 훈련을 이겨낸 결과다. 올해 초 대표팀 훈련 때는 근력 강화에 집중하기 위해 8주 동안 한 번도 발차기를 하지 않았다. 체력 훈련만 하다 몇 번씩 한계에 부딪혔어도 오혜리는 다 참고 이겨냈다. 태권도 선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파워와 스피드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정광채 태권도대표팀 코치는 “오혜리는 독한 여자다. 한번 마음을 먹으면 목표한 훈련량을 다 해낸다”고 했다. 정 코치는 “맏언니지만 훈련을 게을리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쉬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정말 대단한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큰 키 이용한 앞발찍기 화려하면서 정확오혜리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올림픽 무대에 섰다. 다르게 말하면 그는 누구보다 많은 준비를 한 것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박종만 태권도대표팀 총감독은 “나이가 많다고 불리한 건 아니다. 경험이 풍부해 남들이 보지 못하는 빈틈을 볼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오혜리는 1등을 노린다. 올림픽에 참가했다고 만족하지 않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박 감독 말대로 오혜리는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다. 1m82㎝의 큰 키를 이용해 내리꽂는 앞발찍기는 화려하면서도 정확했다. “받아차기를 하면 오히려 실점이 많아진다. 뒤로 빠지는 게 내게 유리할 게 없을 것 같아 후회 없이 경기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 전략이 주효했다.” 오혜리는 스스로를 공격적인 스타일로 분류했다.



금메달을 목에 건 오혜리는 “2인자라는 말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언론이 만든 것이다. 이제는 좀 바꿔줬으면 한다”며 크게 웃었다. 해설위원 자격으로 리우 올림픽을 찾은 황경선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 오혜리가 자랑스럽다”며 기뻐했다.



오혜리는 “아버지가 분명 나를 지켜줄 것으로 생각했다”고 웃었다. 그의 아버지는 오혜리가 처음 태권도복을 입었던 초등학교 2학년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혜리는 올림픽을 앞두고 아버지 묘소를 찾았다. 그는 “아버지께 ‘도와 달라, 용기를 달라,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아버지가 많이 도와주신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리스 신화에는 피그말리온(Pygmal ion)이란 키프로스 왕이 등장한다. 독신주의자였던 그는 뛰어난 조각 솜씨를 발휘해 여인상을 만들었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에 반한 피그말리온은 아름다움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에게 “여인상 같은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기원했다. 아프로디테가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은 덕분에 피그말리온은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심리학에서는 긍정적인 생각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른다.



올림픽에 참가하기 전부터 오혜리는 메신저 프로필에 ‘피그말리온’이라고 써놓았다. 그는 간절히 소원했고 최선을 다해 자신을 조각했다. 마침내 오혜리는 진짜 금메달을 갖게 됐다.



 



 



리우=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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