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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 가치에 대가를

일러스트 강일구



지난달 서울 가로수길의 ‘우장창장’이란 곱창집에서 세입자인 가게주인이 쫓겨나는 장면을 TV에서 보았다. 낯이 익어서 보니 몇 번 간 곳이었다. 곱창이 손질이 잘 돼있고, 김칫국물이 시원해서 친구들과 즐겨 찾던 곳이다. 나는 주로 1층을 찾았는데, 그곳이 문제의 주차장 자리인 줄은 몰랐다. 수년 전 권리금 2억 7000만원에 인테리어비 등을 투자해 가게를 열었는데, 모 가수가 건물을 구매한 후 주차장과 지하를 사용하다가 이번에 가게를 비우게 됐다. 문제는 권리금에 대한 입장차이였다. 권리금은 상권에 대한 권리를 돈을 주고 사들인 것인데, 건물주가 바뀐 다음에는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상권이란 상인들의 부단한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보상은 권리금을 통해 부분적으로 얻을 수 있다. 반면 건물주가 상권의 발달에 기여한 바는 뭔지를 생각해봐도 도통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럼에도 가게가 장사가 잘 돼 지역 가치가 커지면 그 과실은 눈에 보이는 부동산을 가진 건물주에게 돌아가는 구조는 참 불합리하다. 그런 현실이다보니 ‘조물주 위에 건물주’란 말이 나온다.



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이런 관행은 사실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나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정신과는 정신요법료란 상담비를 진료비 외에 따로 받는다. 문제는 약이나 검사를 처방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얘기만 했을 뿐, 약 처방을 받은 것도 아니고, 피도 안 뽑았는데 왜 돈을 더 받느냐는 항의를 하는 환자가 종종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주고 받을 때 비용을 지불한다는 선험적 믿음 때문이다. 다른 진료과도 마찬가지다. MRI와 같은 검사는 기계설치비와 운영비용이 반영돼 검사비가 책정된다. 반면 진료비는 5분을 하든 1시간을 하든 동일하고, 선택진료가 아니면 전공의나 나 같은 20년 차 전문의나 똑같다. 보이지 않는 시간과 전문성과 경험이라는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구조다. 컴퓨터를 사면 소프트웨어는 공짜로 다 깔려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줄어든 것도 몇 년 되지 않았다. 마음속에는 소프트웨어 가격은 비싸다는 인식이 강하다. 나 역시 이렇게 툴툴거리면서도 소프트웨어를 구매할 때는 망설여지니 ‘내 것이 아닌 남의 노하우’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데 익숙치 않은 것은 분명하다.



장사를 하면서 만들어 낸 상권,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에 기반한 노하우, 인력을 투입해 개발한 소프트웨어와 같은 기술은 보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무형의 가치는 유형의 물건에 종속되는 이런 통념을 바꾸지 않는 한 사회의 변화는 요원하다. 우리부터 먼저 무형의 가치에 대한 존중을 시작하고 그 댓가를 치르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불필요한 곳에 비용을 치르는 것 같고, 비싸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기반이 만들어져야 눈에 보이는 것만 가치가 있다는 물질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선진적 사회일수록 저작권을 포함한 지적재산이 보호받는 것이 그 증거다.



우리들이 지금 시급히 되살려야하는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가치의 인정이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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