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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은 미친 폭군’ 쿠데타로 집권한 주나라의 프레임

중국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미친 폭군’의 대명사였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들고 포락지형(?烙之刑)으로 신하들을 고문했다. 하지만 이 스토리는 갑골문 발견으로 날조임이 드러났다. 쿠데타 정권인 주(周)나라가 민중의 지지를 받으려고 퍼뜨린 유언비어라는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은 이런 설화들을 집대성해 『사기(史記)』로 완성한다. 여기에 주왕의 상아젓가락(象箸玉杯)도 등장한다.



아직 제정신이던 어느 날 주왕은 나무젓가락을 버리고 상아젓가락을 사용한다. 이를 본 기자(箕子)는 상아젓가락을 쓰면 흙그릇과는 어울리지 않으니 옥그릇을 찾게 될 것이고, 옥그릇은 채소와는 어울리지 않으니 미식을 찾게 될 것이며, 미식을 하면 거친 베옷이나 소박한 궁전이 싫어질 것이라고 예견한다.



동양학 가라사대

예상대로 주왕은 미식을 시작했고 궁궐을 중건했으며 화려한 치장을 하고 진귀한 물건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에 기자는 재앙을 예감하고 주왕에게 “소신은 결과가 무섭기에 시작이 두려운 것입니다”라 간언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은나라는 망했고 기자는 북쪽으로 가 기자조선을 세웠다고 한다. 엉성한 플롯의 흑색선전이다.



주지육림은 주왕이 만든 게 아니라 궁정이면 갖추어야 할 기본 시설이었다. 주나라 궁정에도 주지육림이 있었고 신라의 서라벌에도 있었다. 경주의 포석정이 그것이다. 주지육림이란 왕과 신하가 술잔을 돌리며 담소를 나누던 곳의 은나라식 이름이었다.



은나라는 500년을 이어온 왕조로서 주나라보다 뛰어난 청동기 기술을 자랑하던 곳이다. 오랜 세월 쌓인 왕궁의 법도도 확고했다. 왕의 식기는 법도에 따라 제작된다. 나무젓가락, 상아젓가락 타령은 촌구석 주나라나 할 발상인 것이다. 그저 기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주왕을 비루한 폭군으로 그리려는 악의에 찬 소설이었다.



기자와 같은 현인(賢人)이 작은 조짐을 보고 문제의 본질을 알아내는 일을 ‘견미지저(見微知著)’라 한다. 이게 주나라 주공(周公)과 사마천의 플롯이었다. 그런데 ‘소설’의 악영향인지 경직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견미지저를 주장하는 기자의 후예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소설 속 가치관을 사실이라 우기고 개인적 견해를 역사의 진리라고 떠든다.



‘기자(箕子)의 후예 기자(記者)’ 들은 청와대 파티에 송로버섯과 샥스핀이 나온 것을 비난하고 대통령 의상의 가격을 따져 사치를 질타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복장은 의상담당 몫이고 식사는 요리사가 한다. 젓가락과 그릇까지 정해진 공무원법을 따른다. 이는 기본 상식이다.



정작 대통령의 일은 젓가락이나 옥그릇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책의 시비를 가리는 일은 옳으나, 곁가지를 뻗고 뻗어 이런 식의 허무맹랑한 비판을 하는 일은 기자로서의 낭비적 행태, 또는 허영이자 사치가 아닐 수 없다. 역사의 탈을 쓴 소설과 이념이 무섭다.



 



이호영



현 중앙대 중앙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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