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조세정의와 재정건전성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와 법인세 인상을 두고 논란이 많다. 양극화 해소라는 면에서 정당성은 있지만 과도한 세율은 일에 대한 동기를 꺾는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근로자 2명 중 1명은 소득세 면세자라는 것도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2014년 기준으로 볼 때 48%나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 세금을 납부할 수 없는 저소득 근로자 때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런데 법인도 마찬가지다. 법인세를 내지 않는 비율 역시 47%를 넘는다. 그러다 보니 증세와 면세범위 축소 간 형평성 논란이 생기게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물론 양도 및 임대소득도 고려해야 하고, 직·간접세 간 비중도 따져봐야 한다. 조세제도에서 단순한 일도양단식의 접근이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얄팍해진 지갑을 감안하더라도 적은 금액의 세금이라도 내는 것이 맞다. 납세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의식을 갖게 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의미에 비하면 징수비용 대비 세입 효율성은 부차적인 문제다.



논란 속에서도 큰 진전이 없는 것이 있다. 탈루하거나 은닉한 세원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간 조세부담은 이미 노출된 세원에 집중되었다. 월급쟁이들의 불만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자영업자, 특히 전문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은 여전히 부진하다. 최근에는 가족기업을 통해 경비처리를 하거나, 자산거래시 계약가격을 낮게 신고하여 양도세나 상속세 등을 축소하는 등의 탈루도 이어지고 있다. 지하경제를 양지로 이끌어내 재정을 확충하고 공평과세를 실현하겠다는 이야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소득이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국민연금도 건강보험도 왜곡됐다.



Outlook

세금을 걷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있다. 걷은 돈을 제대로 쓰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복지비용의 증가, 지속적인 인프라 투자, 연금충당금 등 기본적으로 돈을 쓸 곳이 많다. 잘못된 장비의 구입, 과도한 국제행사의 개최, 지역 선심성 사업 등 불필요한 지출도 많다. 석유공사의 해외자원개발 투자실패, 국책은행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대우조선 사태 등은 재정에 더욱 부담을 주는 일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경(追更)이 안 되면 경제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의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추경이 가을에 일상화된 추경(秋更)이 되었다지만 제대로 돈을 쓰면서 손을 벌리라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생소한 이름의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재정건전화법이다. 재정의 건전성을 위해 얼마 이상의 빚과 적자를 지지 못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재정준칙이라고 하는 것인데, 과거에는 법이 아닌 가이드라인에 불과했다. 재정당국에서는 굳이 법이 아니어도 재정계획을 통해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향적 입장을 취했다. 저출산과 고령화, 성장률 둔화에 따른 세입감소 등이 원인이다. 내년도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법률안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GDP(국내총생산)의 45% 이내로, 재정적자는 3% 이내로 억제하기로 하였다. 대신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와 같은 변수가 생기면 예외로 하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EU) 및 독일의 재정준칙과 닮아 있다. 독일 기본법(헌법) 제115조의 국가채무제한조항은 ‘채무브레이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독일 역시 자연재해나 경제위기시 준칙 위반을 허용한다. 다만 위반을 해야 하는 위기상황인지 아닌지를 의회 표결로 통제한다. 추상적 표현의 해석에서 정치적 자의가 개입될 수 있어 이를 절차적으로 통제하기 위함이다. 구체적인 상환계획도 요구한다. 재정에 부담을 주는 사안은 헌법소송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리스 사태 때 유럽안정화기구(ESM) 판결이 바로 그것이다.



그간의 가이드라인에 구속력을 부여하고자 법률로 만들었다는데, 법률을 살펴보면 뚜렷하게 구속력이 발휘될 만한 조항이 없다. 이론적으로 해당 업무를 주관하는 국무위원이 법률을 위반한 것이므로 의회에 의한 탄핵사유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결국 의지의 문제라는 말이 나온다.



재정건전화법의 또 다른 핵심사항이 ‘페이고(pay as you go)’이다. ‘번만큼 써라’는 뜻이다. 국가가 돈을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법안을 발의할 때는 반드시 재원조달방안을 첨부하도록 한 것이다. 그간 비용추계서만을 제출하면 됐던 의원입법이 주된 대상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무력화될 수 있다. 재원조달방안 자체가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재량적 평가과정에서 정치적 압력으로 법률이 통과되는 경우다. 페이고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존의 의무적 지출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그동안 선심성으로 만들어 놓은 의무적 지출의 옥석을 가리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구조조정이 꼭 필요한 복지를 사냥하는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국회를 중심으로 치열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건전재정을 지켜내는 최적의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최대의 적이 될 수도 있다.



공동체가 주는 이익은 내 것이지만, 의무는 남의 것이라는 도식은 정의롭지 않다. 이익의 사유화와 책임의 공유화는 사회의 균열을 야기한다.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도 정의다. 당장 빚이라도 져서 쓰고 나면 지금은 좋겠지만, 갚아야 할 사람은 우리의 자녀들이다. 앞으로는 성인 1명당 부양해야 할 사람이 지금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수준보다 훨씬 많아질 텐데, 거기에 빚까지 덤으로 얹어주는 것은 세대 간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래서 건전재정은 한 정부를 넘어서 이어지는 약속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후세대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 최소한 빚은 남겨주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최승필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태그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