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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누구는 글 쓰고, 누구는 양궁 선수가 됐을까

양궁



시사상식 사전 설명이 필요한가? 4년마다 새로운 ‘신궁’을 낳는 대한민국 올림픽 금메달의 동의어.



이윤정의 공감 대백과 사전

그녀의 사전 어쩌면 내가 했어야만 할지도 모르는 일. 있는지도 몰라서 가지 않은 길. 아직은 발견되지 않은 내 안의 보물섬. 그러므로 지금 내 길에 만족하지 않을 때 든든한 보험처럼 꺼내어 상상해보는 직업.



 



올림픽 양궁 경기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왜 이렇게 활을 잘 쏘는 걸까. 그런데 그때마다 잇달아 떠오르는 또 하나의 생각. 저 사람은 어쩌다 양궁 선수를 하게 됐을까.



왜 양궁이었을까. 농구나 배구도 아니고, 달리기 권투 레슬링도 아니고 왜 하.필. 양.궁.이.어.야.만. 했을까. 양궁이 아니라 수영이나 야구를 만났다면 저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달리기나 권투, 레슬링은 어린 시절 몸싸움이나 운동회만 몇 번 해봐도 누가 소질이 있는지 금방 드러난다. 수영이나 농구만 해도 흔한 동네 스포츠 센터에 간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을 수도 있다. 그럼 양궁은?



지금처럼 ‘한국 1위=세계 1위’라서 엘리트 체육 조기 교육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부모가 열심히 찾아 나선 경우를 제외한다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해볼 기회를 갖기조차 힘든 일 같다. 주변에 양궁 센터나 양궁 학원을 본 적은 거의 없지 않나. 그러니 우연히 양궁을 접했다가 숨은 소질을 발견하게 되어 직업으로 그 일을 하게 될 확률이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혹시 금메달을 딴 선수의 어머니는 태몽을 꾸듯 어느 날 “네 화살이 금화살이냐 은화살이냐”라고 묻는 아폴론이 등장하는 꿈을 꾸었던 건 아닐까. 잠에서 깬 어머니는 곧바로 장난감 화살이나 다트 판을 사왔고, 귀신같이 과녁 한가운데만 맞추는 아이의 손을 잡고 금메달 선수를 배출한 학교를 찾아 세 번을 이사하고 집을 팔고…뭐 그런 스토리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한편에는 운명이나 하늘이 내린 재능 같은 것은 똑같이 있는데 어머니가 아침에 일어나 그 꿈을 깜박 까먹어 버렸거나 장난감 화살을 살 형편이 되지 못해 결국 육상부나 배구부로 가는 바람에 평생을 뭔가 아쉬워하며 사는 인생도 있는 것 아닐까.



게다가 또 다른 사람은 육상부나 배구부도 못 가보고 글을 쓰는 일로 인생이 귀결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시 그게 바로 내 경우가 아닐까. 우리 어머니한테 여쭤봐도 분명 꿈에서 한석봉이나 황진이 같은 명필이나 명문가를 만난 적이 없다고 하시고, 나도 분명 ‘글을 써야만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은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글을 쓰는 직업을 택하게 됐고 그게 평생 일이 되어버렸다. 왜 그 사람은 결국 양궁 선수가 되었고 나는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누군가는 양궁 선수를 하게 되고 누군가는 글 쓰는 일을 하게 되는 그 과정의 미스터리란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그 사이에 놓여있는 운명과 재능, 우연과 필연, 선택과 같은 엄청난 변수들이 교직하면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란.



알파고 같은 똑똑한 인공지능이 그 복잡한 알고리즘을 시원하게 밝혀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내가 무슨 직업을 택해야 하는가’라는 인류 공통의 고민을 해결하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정체 모를 미련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불행히도 나는 그런 인공지능이 개발될 때까지 살 것 같지는 않으니, 상상만 계속 할 뿐이다. 양궁을 보면서 나는 늘 내 몸속 깊숙한 어딘가에 숨겨진, 그러나 아직 내가 발견해주지 못한 ‘양궁 DNA’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활을 잡았다면 올림픽 금메달은 아니더라도 국가대표 선발전 정도는 나갔을 수도 있다고, 아니 적어도 이렇게 끙끙대며 글을 쓰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오늘밤엔 내 몸속의 양궁 유전자가 아폴론으로 변신해 금화살을 들고 나오는 꿈을 꿀지도 모른다. 울면서 말할 것 같다. 수십 년을 살면서도 아직도 그걸 모르느냐고, 내가 니속에 있는 걸 모르느냐고. 아, 더 게으름 부리지 말고 가까운 양궁장을 검색해 봐야겠다. ●



 



 



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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